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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여행/2021 한여름 세 도시 2021. 7. 24. 12:36
작년 안동과 영주를 여행하며 봉정사와 부석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산속의 사찰들을 다니며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사찰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많이 알려진 사찰 가운데에서도 가보지 않은 곳들이 많다. 보은의 법주사가 그렇다. 법주사는 전형적으로 한국사 책으로만 접했던 곳이었다. 법주사의 팔상전과 쌍사자 석등은 지면으로 접한 게 너무 익숙한 나머지 머릿속에 2차원 이미지로 고정돼 있다.
법주사는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속리산 또한 처음 와본다. 속리산(俗離山). 속세와 동떨어진 곳이란 뜻일까? 인간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둔 이곳에 법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법주사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여름철 수풀이 우거진 탐방로를 20분여 가량 걸어들어 가야 한다. 아주 무더운 날씨였지만 나무그늘이 성기지 않고 산바람이 불어와 덥다고 느끼기 어렵다. 머리 위로는 소나무들이 숙고 양옆으로는 조릿대들이 바스락거리며 나를 반기는 듯하다. 작년 여름 즈음 새로이 장만한 카메라로 풍경을 담아본다. 초록색의 색감이 마음에 들게 잘 나오는 카메라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법주사의 전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경내에 입장했을 때 곧바로 보이는 풍경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천왕문 앞에 웃자란 전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평탄한 경내에 불쑥 솟아오른 나무 한 쌍이 사찰에 색다른 입체감을 부여한다. 비스듬하게 맞은 편으로는 철로 주물된 당간지주가 높다랗게 서 있다. 이 세 기둥이 기묘한 삼각형을 이루면서 공간 전체에 수직적인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2차원으로만 익히 알고 있던 팔상전이 나타난다. 3차원으로 본 팔상전을 접하니 '예쁘다'는 형용사가 먼저 떠오른다. 우선 부여에서 보았던 정림사지 5층 석탑만큼 밉지 않은 비율로 건물이 잘 짜여져 있다. 중국의 전탑(塼塔)이나 일본의 목탑들보다 우아하고 균형잡힌 느낌이 있다. 아무리 봐도 정사각형으로 생긴 이 목조탑이 팔상전으로 불리는 까닭은 탑 안에 그려진 탱화 때문이다. 부처의 일생을 여덟 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八相圖) 역시 안에 들어가면 관람할 수 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팔상전을 나와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다보면 대웅전에 이르기 전에 쌍사자 석등이 나온다. 우악스럽게 포효하는 두 마리 사자가 양발로 땅을 디딘 채 윗돌을 떠받치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래된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보다 보면 옛사람들의 관념이 오늘날과 참 많이 달랐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보다 돌을 나르고 깎는 데 수고가 더 들였을 텐데,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실용적인 용도를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거꾸로 말하면 오늘날에는 '유적지'라며 가볼만한 곳으로 손쉽게 뭉뚱그려지는 것들이, 옛사람들에게는 큰 노동을 투입해야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던 세상을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보았을까?
법주사와 속리산을 빠져나와 약간 떨어진 곳에 정이품송을 보러 이동했다.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당시 소나무가 늘어진 가지를 들어올려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하자 지금의 이름을 붙여 소나무의 충(忠)을 기렸다고 한다. 나이가 6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견뎌낸 나무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이렇게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보면, 늘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크고 작은 인간의 참화도 땅 위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앗아가지는 못한다는 생각이다. 어딘가 퍼즐조각 하나가 빠진 것처럼 생긴 정이품송을 뒤로 하고 이제는 집으로 향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