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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III여행/2021 한여름 세 도시 2021. 7. 16. 15:35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한다면 낙화암이 바라다보이는 백마강변이 아닐까 싶다. 규암마을을 빠져나와 내가 향한 곳은 낙화암 바로 맞은편에 있는 나루터였다. 지도만 봐서는 차를 세울 수 있을 만한 곳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원하는 위치로 이동했다. 다행히 지도에서 확인해 두었던 나루터 옆 길목은 한적한 공간이 많았고, 잡초가 우거진 공터에 차를 세우고 길로 나섰다. 길가를 따라서 드문드문 캠핑장비를 갖춘 새하얀 차량들이 보인다.
지난 여행에서는 부소산성을 거쳐 낙화암에 올랐다. 부소산성의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르면 길은 다시 낙화암의 가파른 절벽을 따라 전망대까지 아래로 이어진다.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무더운 날씨였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은 상황과 흐름에 따라 모양을 바꿔가니 확실하다고 할 수 없다. 부소산성 끄트머리에는 강변과 맞닿은 널따란 들판이 있는데, 지난번 여행을 왔을 때에는 이곳에 대규모로 천막을 설치해 놓고 백제 문화제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사람들로 깨나 붐볐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구부러지지 않고 올곧게 난 자갈길을 걸으며 꿈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백마강변으로 싱그러운 나무들이 여름빛을 한껏 발산하며 잎새를 나부낀다. 바다 같은 색깔을 한 백마강 위로는 눈에 익은 황포돛대가 관광객들을 싣고 미끄러져 나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낙화암이 정면으로 바라다보인다. 역사와 이야기와 삶의 덧없음이 느껴진다. 언젠가는 백제의 마지막 왕이 나라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했을까 생각해본다. 의외로 그 모습은 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자신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왕은, 비록 왕일지라도 아주 평범한 인간이었을지 모른다. 단순한 손가락 동작과 예상할 만한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원래 구상했던 부여 일정은 낙화암까지였지만 이후 궁남지까지 가보기로 했다. 점심에 들렀던 식당의 직원—아마도 이곳 주민으로 임시로 일을 돕는 것 같았다—에게 이곳에서 더 둘러볼 만한 곳이 있는지를 물었었다. 사실 내가 말한 '이곳'은 규암마을이었는데, 직원이 이해한 '이곳'은 부여군 전체였다. 직원은 내게 궁남지를 추천해주었다. 꽃이 핀지 일주일째인데 그래도 가서 볼 만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직원이 덧붙인 두 번째 말의 의미를 그냥 흘려들었는데, 나중에 궁남지에 도착해서 보니 꽃봉오리가 올라온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 활짝 핀 연꽃을 보지는 못할 거라는 의미였다.
궁남지는 부여 안에서 가본 곳 중 가장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었다. 가족 또는 연인끼리 나들이 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정림자시 안에 작은 연못에 핀 연꽃을 보면서도 지금이 연꽃 필 무렵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사실 연꽃은 주변에서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다. 궁남지에는 중앙의 맑은 연못을 에워싸고 연꽃이 가득한 못이 해자(垓子) 형태로 동심원을 그리며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도보여행이었던 지난 여행에서 궁남지는 커버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서 들르지 못했었다.
아직은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은 연꽃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꽃잎이 벌어진 연꽃이 없나 살펴가면서 산책했다. 지금은 거의 옛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궁남지의 연원은 백제 무왕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이렇게 또 다시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시계방향으로 궁남지를 한 바퀴 크게 돈 뒤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왔다. 한낮의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궁남지 안의 버드나무마다 햇빛이 누렇게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여유롭게 식후경을 마친 내 머릿속에는 벌써 다음 행선지에 대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향할 곳은 부여의 동쪽으로 대전이다. 부여만큼 방문한지 오래된 대전은 도대체 얼마만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