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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의 일기: 슈농소(Château Chenonceau)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10. 18:38
# 이른 아침 몽파르나스에서 낭트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계획한지는 좀 된 여러 곳 중 한 곳으로 슈농소 성(Château Chenonceau)에 가기 위해서다. 잦은 열차 이동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49유로를 주고 뒤늦게나마 정기권(Carte Avantage Adulte)을 끊었다. TGV 열차는 투르의 생 피에흐 데 코흐(Saint-Pierre-des-Corps)에서 나를 내려줄 것이고, 다음에 TER로 갈아타 슈농소까지 들어갈 것이다.
발 드 루아흐(Val de Loire) 지역을 얼마나 둘러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발 드 루아흐 안에서도 교통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 슈농소 성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슈농소 성은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다. 어릴 적 내가 갖고 싶었던 수제 건축모형 중 슈농소 성 모델이 있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모델과 견주어 보면서 슈농소 성 모델이 더 가지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강 위에 지어진 청회색 건물이 프랑스의 슈농소 성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 어른이 되어서의 일이다.
루아르 지역에 유명한 고성(古城)은 무척 많다. 화려하기로는 셩보흐 성(Château Chambord)이 가장 유명하지만, 현재 지붕이 대대적인 공사중이어서 성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때문에 셩보흐 성은 일찌감치 계획에서 배제했다. 슈농소 역에 도착했을 때—역사(驛舍)가 따로 없는 간이역이다—내 앞으로 일본인 일행이 내렸다. 그리고 오늘 슈농소 성을 둘러보는 내내 마주치곤 했다. 도련님 귀공녀 같은 행색을 한 사람들이었다.
슈농소 성의 입장료는 12.5유로인데 둘러볼 거리에 비하면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타지마할 같은 곳보다도 오히려 볼거리가 알차다. 슈농소 성을 제대로 둘러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원을 둘러보아야 한다. 성내(城內)와 정원을 둘러보다보면 반나절이 금세 흘러가 있다. 입장을 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건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가 늘어선 오솔길이다. 눈대중으로 500미터는 훨씬 더 넘는 것 같은 이 길의 끝에 해자(垓子)가 나타난다. 이어서 마흐크 탑(La tour des Marques)이 수문장처럼 해자 입구를 지키고 있고, 그 뒤로 유유히 흐르는 셰흐 강(Le Cher) 위로 슈농소 성이 나타난다.
# 슈농소 성은 부활절(la pâque) 기간을 맞이해 약 2~3주에 걸쳐 꽃으로 성 안을 꾸며놓고 있다. 군데군데 소담하게 장식을 해놓은 게 아니라, 귀족들의 공간답게 정말 거창하고 화려하게 장식을 해놨다. 슈농소 성 안을 둘러보는 동안 침실이며, 집무실이며, 주방이며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꽃꽂이가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준비된 꽃의 양이 워낙 많다보니, 실내에 꽃 향기가 매우 강해서 노린내가 나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장식된 꽃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배치된 것 같으면서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계산되어 배열된 것들이다. 부활절 기간이니 만큼 달걀, 토끼, 오리 등 소품을 활용한 장식도 많이 보였다.
# 내가 투르(Tours)에 온 4월 10일은 마침 프랑스에서 첫 번째 투표(tour)가 진행되는 날이다. 숙소를 잡으러 투르 시내를 걷는데 학교 건물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번 1차 투표에서 투르의 경우 에마뉘엘 마크롱이 30.1%, 뒤를 이어서 멜렁숑이 29.9%로 거의 동률을 기록했다. 바로 옆 생-피에르-데-코흐(Saint-Pierre-des-Corps)의 경우, 멜렁숑이 39.1%, 마크롱이 21.1%를 기록했다. 프랑스 전역으로 보면 대도시를 중심으로 멜렁숑이 선전한 곳이 많이 보이는데, 특히 프랑스 남쪽으로 갈 수록 그렇다.
한편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파리 5구의 경우 마크롱이 38.8%, 멜렁숑이 26.1%를 기록했다. 파리는 물론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1위 후보는 모두 마크롱이거나 멜렁숑이다. 흥미로운 점은 흔히 알려진 소득 격차가 투표 결과에도 거의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파리 안에서는 1, 10, 11, 13, 18, 19, 20구 등 파리의 동부 지역과, 일-드-프랑스에서는 센느-생드니(Seine-Saint-Denis; (파리 북동부 근교)에서 멜렁숑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반면 파리의 나머지 지역과 오드-센느(Hauts-de-Seine; 파리 서부 근교) 지역에서는 마크롱이 우세했다. 발-드-마흔느(Val-de-Marne; 파리 동남부 근교)는 두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이 혼재된 양상이다. 한편 7, 8, 16구의 경우 투표 결과가 조금 더 독특하다. 보통 마크롱과 멜렁숑이 1, 2위를 점하는 가운데, 이들 지역에서는 제무르(E. Zemmour)나 페크레스(V. Pécresse)가 마크롱의 뒤를 이었다.
멜렁숑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마린 르펜이 전체 득표 23.2%를 기록하면서 결선 투표에 진출하게 된 까닭은, 마린 르펜이 지방 소도시나 농촌 지역에서 고르게 높은 지지율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판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프랑스 북동부 지역에서 마린 르펜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마린 르펜의 지지기반은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지지기반과 매우 닮아 있다. 다만 차이라면 경쟁자가 민주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와 달리, 마린 르펜의 상대 마크롱은 이미 중도를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1차 투표에서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후보들도 제무르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크롱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런가 하면 전통적인 기성 정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역시나 맥을 추지 못했다. 공화당 출신의 페크레스, 사회당 출신의 이달고 모두 한 자리수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 대선 시즌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투르 시내는 평화롭다. 투르 구시가지 앞까지 나가보았는데, 투르 시청사는 파리 시청사의 축소 모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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