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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의 일기: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11. 20:49
# 아침에 일어나 아침 식권을 구매하면서 1박을 더 걸어두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는 어려렵겠다 싶었다. 아침을 먹고 발 드 루아흐 지역 일대를 좀 더 둘러볼 생각이었다. 오늘은 엉부아즈(Amboise)에 가보기로 했다. 루아르 강의 지류인 셰르 강(Le Cher) 위에 지어진 슈농소 성과 달리, 엉부아즈는 루아르 계곡에 곧바로 인접한 도시다. 이곳은 아우스터리츠 역으로 잇는 직행 열차가 있어 슈농소 지역에 비해서는 파리와도 교통이 훨씬 편리한 편이지만 우선순위에서 일단 미뤄둔 상태였다.
엉부아즈 시를 택한 이유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엉부아즈 성과 클로 뤼스 성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의 후원을 받아 말년을 보내고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사실 나도 이곳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기 전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발 드 루아르 지역에는 셩보르 성과 이 일대의 도시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에 관여했다고 알려진 곳들이 적지 않다. 실제 이곳의 많은 고성들은 대체로 이탈리아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오전 엉부아즈 성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슈농소 성에 비해서는 성도, 정원도 규모가 작지만 아기자기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엉부아즈 시의 가장 높은 곳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성에 올라 바라보는 시내와 루아르 계곡의 풍경이 볼 만하다. 해가 질 때 피렌체 정원 방면에서 바라보는 엉부아즈 성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물론 요즘처럼 해가 긴 때에는 폐관 시간이 다 되어도 그런 풍경을 보기는 어렵다.
# 엉부아즈를 나와 왼쪽 길을 따라서 400미터 정도 걸어가면 클로 뤼스 성이 나온다. 성(Château)이라는 명칭을 붙이고는 있지만 대저택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로부터 하사받은 주거공간이자 작업공간이다. 실내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틀리에가 재현되어 있고, IBM사와 합작해서 구현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명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인지 엉부아즈 성보다도 더 사람이 많았다. 오전 동안 엉부아즈 시에서 고성들을 둘러본 뒤 1시 40분 열차를 타고 다시 투르로 되돌아 왔다.
# 숙소에서 쉬다가 늦은 오후 무렵—그렇다고는 해가 아직 한창이다—열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아제르히도(Azay-le-Rideau) 지역에 다녀왔다. 이곳에는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래된 성이 있다. 해는 길고 숙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싫어서 밖을 나선 것 말고는 아제르히도로 향한 것에 다른 이유는 없다. 다만 성은 문을 닫을 시각이어서 성내를 둘러보지는 못하고, 성 일대의 공원을 둘러보다 나왔다. 화려한 귀족 생활은 이미 많이 둘러본 상태였으므로 공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대형견을 데리고 성 주위에 산책을 나온 주민들도 보인다. 슈농소 성에서도 그랬지만, 이런 유명 유적지에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 것 같다. 획일적이지 않고 (내 기준에서) 조금은 제멋대로이지만, 타인에게 무관심하다고 해야할지 그렇다고 타인의 자유를 해치진 않는다.
# 루아르 계곡에 있는 도시들을 다니다보면 ‘Site troglodytique(혈거(穴居) 지구)’라는 표현을 접하게 된다.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하면 흙이나 바위 틈에서 사는 걸 말한다. 실제 엉부아즈에는 절벽 바로 밑 동굴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꽤 보인다. 도로변으로는 일반 주택가가 늘어서 있지만, 골목 안을 들여다보면 막다른 길, 막다른 절벽 아래에 주소명이 적힌 집이 들어서 있다. 아제르히도에도 이런 안내판이 있는 걸 보면, 이 일대에도 혈거 방식으로 사는 주민이 있는 모양이다.
#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 선진국이라 느끼는 순간은, 작은 니즈에도 꽤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걸 발견할 때다. 아제르히도를 걷나가 최면 요법(hypnosis)으로 치료를 행하는 작은 사무실을 발견했다. 랭스를 갔을 때에도 ‘~의학박사’ 사무실이라고 해서 개인 사무실을 열어두고 다양한 의료행위를 행하는 걸 보고 신기했었다.
그밖에 특정 장르의 고서점들이 그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가면서 파리 시내에 문을 열고 있는 것이나, 우즈베키스탄 풍의 고급 소품들을 취급하는 가게가 마레 지구의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 있는 것이나 모두 신기한 일이다. 이런 틈새(niche) 시장이 굴러간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도대체 이런 수요는 어디에 존재하며, 이런 공급망은 어떤 식으로 갖추는지 궁금하다.
# 투르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 맞은 편 플랫폼 벤치에 앉아 통화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Voilà'를 과할 정도로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잠시 후 도착한 열차를 타고 투르로 되돌아왔다. 오늘 하루 엉부아즈, 클로뤼세, 아제르히도 세 곳을 둘러보았는데 이제서야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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