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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의 일기: 삶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24. 18:04
"Le véritable voyage de découverte ne consiste pas à chercher de nouveaux paysages,
mais à avoir de nouveaux yeux.", Marcel Proust# 얼마전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자신의 수필집에 썼었다는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 뜬금없이 원효대사의 해골물 설화가 떠올랐다. 나는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다다른 이후에도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 다시 빠지곤 했다. 결국 문제는 갈증의 대상에 있었던 게 아니라, 그 갈증의 원인에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결국은 내 앞에 무엇이 있는가보다도, 그걸 바라보는 마음과 생각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런 지혜로운 눈을 기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전날 PSL 국제처를 갔을 때, 다음날에 오면 직원이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오늘 아침 전화를 걸어보았다. 어제 들었던 말과는 달리, 오늘은 모든 예약이 다 차 있기 때문에 다른 날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오늘은 반드시 업무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어제의 답변과는 전혀 다른 상황인데, 화가 났다가도 더 이상 신경쓸 겨를도 없어서 도서관에서 공부에 매진했다. 짬짬이 학교 국제처에 들러 학기 마지막에 점검해야 할 절차들에 대해서도 조금 체크를 해두었다. 어쨌든 공부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나는 내가 매일 똑같이 앉아서 공부하는 도서관 1층의 내 자리가 마음에 든다. 이 얼마나 모순인지, 터무니 없이 열악한 행정과 우수한 면학 환경, 언제부터 이 둘이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었던지.
# 오후 네 시를 넘겨 잠시 도서관을 나와 몽주 가를 가로질러 파리 식물원으로 향했다. 보통 내가 지내는 5구에서 찾게 되는 공원은 뤽상부르 공원 아니면 파리 식물원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큰 모스크에 시선을 빼앗겨 걷다보니 한 번도 이용해본 적 없는 출입문으로 식물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항상 일직선으로 쭉 뻗은 대로만 걸었었는데, 공원 북쪽에 또 다른 정원이 이만큼 크게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곳의 명칭이 왜 ‘식물원’일까 늘 궁금했었는데, 17세기에 지어진 아르누보 양식의 식물원 또는 박물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꽃과 수생식물을 심어놓은 야외 정원이야말로 명칭의 의미를 잘 말해준다. 아침까지 비가 왔다가 서서히 개이는 날씨여서 꽃과 나무, 풀을 구경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원래는 40분~1시간 정도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식물원을 크게 도는 바람에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걷는 방향을 가늠하면서 우왕좌왕 길을 걸어가는데 웬 할아버지께서 내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서는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은 흔치 않은지라 일단 놀랐고, 프랑스 할아버지가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서 또 한 번 놀랐다. 할아버지는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서는 식물원에서 둘러볼 만한 좋은 길목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놀란 건 내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었다는 점.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더니, 외모가 한국인이라고. 그러는 할아버지는 어디서 오셨냐고 하니까 프랑스라고, 그냥 여기라고 하셨다. 다만 부모님이 스위스에서 건너오셨다고 덧붙이신다.
여기서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봐주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은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보다. 보통 서양 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의 국적을 전혀 구별하지 못해서, 뭐만 하면 중국인인 줄로 안다. 어쩌다 아시안이 극히 드문 지방 소도시에 여행객 행색으로 가면 이번에는 일본에서 왔냐고 묻는 식이다. 중국인들은 이민자가 워낙 많기도 한 데다 여행객들 대부분이 무리를 이뤄 대도시에서 과시형 소비를 하는 편이고, 대도시를 벗어나 개별 여행을 하는 동양인은 대체로 일본인이 많은 편인가보다.
때문에 여기서 한국인을 구별할 줄 아는 프랑스인은 적어도 한국인을 꾸준히 상대하면서 눈썰미를 기른 사람이거나 아시아 문화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보통은 후자는 거의 없다. 아시아를 바라보는 이들의 세계관은 한국인이 유럽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어떤 면에서 매우 피상적이고, 우리나라보다도 세계화가 덜 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받을 때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유럽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들도 사실은 대단히 피상적인 것일 수 있겠다 싶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심지어 여러 번 왔던 곳에 숨겨진 널따란 구역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비갠 뒤 맑아진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음에 감사했다. 훌륭한 정원을 보고 싶다면 프랑스는 좋은 선택지다. 파리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를 가도, 아니 어쩌면 지방 소도시를 갈 수록 정원이 정성껏 꾸며져 있다. 서유럽 안에서도 기후가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지라 다양한 식생이 자라나기에 적합하다는 장점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늘 그렇지만 프랑스의 정원은 언뜻 보기에 야생적인 느낌이 들지만, 가만히 보면 볼 수록 치밀하게 조경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발 걸음을 하나씩 옮길 때마다 학명이 각기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파리에 이만큼 머물렀는데도, 심지어 학교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아직까지도 모르는 공간이 있었다니, 나는 여기에 와서도 너무 멀고 거대한 것만 쫓고 살았나보다.
# 이곳에 와서 조금 달라진 시선 중 하나는 세계화에 관한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무역망의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국경을 초월한 자유무역이 기본 질서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지만, 동시에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수주의적 움직임도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국수주의적 동향은 대개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 감지된다. 이번 대선에서 극우주의 후보가 크게 선전한 것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에서 이민자와 특히 무슬림 문제는 정치적 뇌관이 되었다. 이런 정치적 리스크가 경제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크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은 어느 정도 문턱(threshold)에 이를 때까지만 세계화를 바라고, 역치를 넘어서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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