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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의 일기: 날씨 흐림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27. 00:09
# 며칠째 날씨가 흐리다. 한낮에는 날씨가 갤 것 같다가 밤이 가까워지면 다시 흐려진다. 오늘 아침도 무척 흐린 날씨다. 게다가 늦잠까지 잤다. 눈을 떠보니 아침 열 시 반이어서 깜짝 놀랐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승천일(Ascension), 그러니까 공휴일이다. 프랑스의 공휴일을 잘 모르다보니 이번 주 도서관에 게시된 휴관 안내를 보고서야 목금 공휴일이 껴 있다는 걸 알았다. 목요일이 승천일이고 금요일은 ‘Pont d’ascension’이라 해서 말 그대로 징검다리(pont) 휴일이다. 한창 시험 공부를 하다가 이번 주 공휴일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날 밥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었다. 학생식당에도 목금요일 배식 안내는 빠져 있는 걸 보니 학교 시설이 모두 멈추는 모양이었다.
# 며칠째 흐린 날씨는 오늘 겪을 곤경의 전조였던가. 전날 있었던 시험까지는 우선 아무 생각 않고 일단 공부만 하다가 목요일이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다음에는 목금요일 하루 파리 근교를 다녀올까도 생각했다. 아무래도 똑같이 끼니 고민을 하더라도 밖에 나가서 하는 편이 낫다. 이동하다가 검색해서 나오는 적당한 곳에 가서 식사하면 그만이니까. 다만 전날 밤 N이 급작스럽게 오후에 몽마르트 투어를 예약했다고 연락이 와서 퍽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날 뺄 수 없는 일정이라도 있었으면 어쩌려고 뜬금없이 시간을 못박아서 예매를 한 건지, 그것도 자비를 들여 예약을 걸어놓은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몽마르트는 이미 다녀오기도 했던 데다, 방문 당시 관광객도 많고 상업적인 느낌이 강해 별로 다시 찾고 싶지 않았다.
거절을 할듯 하지 못하고 결국은 몽마르트에 합류하기로 했다. 뒤늦게 퐁텐블로를 다녀오려다가 리옹 역에서 열차를 놓치는 우여곡절도 있었고, 아침에 늦잠을 잔 뒤 전반적으로 하루 일정이 엉성하게 흘러갔다. 이후부터는 착오의 연속이었다. N의 메시지를 아침 잠결에 확인한 나머지 몽마르트 투어가 시작하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라탕 지구로 돌아와 천천히 늦은 점심을 하고 있는데, N에게서 약속장소에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놀랐다. 이동경로를 찾아보니 어제는 버스가 파업이더니 오늘은 메트로가 파업에 들어가서 도착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급하게 점심을 먹고 40분 거리의 몽마르트 지구로 향하는데 밥 먹는 사이 웬 문자메시지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공용자전거 벨리브에서 온 문자다. 지금 두 시간째 자전거를 타고 있는 중이니 확인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안내문자였다.
이런 경험이 이전에도 두어 번 있었는데 이번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오후 한 시쯤 리옹 역 앞에 자전거를 세워둘 때, 자전거 거치대가 만차 상태여서 다른 자전거에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자전거를 거치해 뒀었다. 안내센터에 이런 상황을 말하니 다른 누군가가 내가 탔던 자전거를 이용한 다음 다른 거치대에 세워둘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하지만 리옹 역에 만차가 될 정도로 자전거가 많았다보니 내가 탔던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에 올바르게 정차해줄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결국은 몽마르트로 가는 91번 버스 안에서 N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하고 다시 리옹 역으로 돌아갔다.
도착해서 보니 내가 탔던 자전거는 아까 정차해둔 그대로 있었는데, 연장 케이블도 잘 고정되어서 빠지지 않는 상태였다. 왜 정차가 인식되지 않은 채 아직까지 운전 중인 걸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초과이용 시간에 대한 비용은 비용대로 청구된 상태라 어쨌든 안내센터에 다시 연락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전화 연락을 열 번 넘게 한 끝에야 안내센터에 닿을 수 있었다. 두 번은 전화 연결이 됐다가 통신이 불안정해서 전화가 중간에 끊겼다. 결국 오늘 자전거를 10분 남짓 타고 206분을 탄 것으로 기록되었고, 이에 대한 환불은 받을 예정이다.
이제는 약속시간에 완전히 늦어서 자포자기한 상태로 미납된 통신비라도 처리하려고 했지만, 공휴일이라 10분 거리의 통신사 지점에 도착했을 땐 문이 닫혀 있었다. 가는 길에는 질펀하게 개똥을 밟아 신발에서 냄새가 심하게 올라왔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신발 밑창에 단단히 낀 개똥을 긁어냈다. 그러고서 N에게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다고 연락하는데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약속시간을 잘못 인지한 내 부주의, 늦잠을 자고 약간 나사가 풀려 있던 것, 전산상 문제. 하지만 정말 문제는 뭘 해도 내 마음 한 구석이 늘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게 아닐까. 하루쯤 아무 생각 없이 편한 마음으로 쉬어도 될 텐데, 마음 속에 이런저런 구상을 늘어놓고 결국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답답함과 불만족스러움, 결국은 그게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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