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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의 일기: TF1 그리고 France 4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28. 16:56
# 아미앵을 다녀왔다. 이전부터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도시 중 한 곳으로, 매번 열차표만 조회를 하다가 마음먹고 반나절 정도 시간을 들여 다녀오기로 했다. 아미앵은 피카르디(Picardie)라는 레지옹(Région)에 속하고, 피카르디는 다시 오드프랑스(Hauts-de-France)에 속한다. 칼레를 포함해 오드프랑스를 오가는 열차는 파리 북역에서 발착한다. 아침 뤽상부르 역에서 RER B 노선을 타고 세 정거장 지나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북역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역의 규모가 커서 다시 와도 길을 찾는 데 헤맸다. 파리에서 한 시간 걸려 아미앵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1시 반경이었다. 역에 내려서 처음 느끼는 건 춥다는 것이었다.
아미앵 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은 페레 타워(Tour Perret)다. 페레 타워는 아미앵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어딜 가나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좀처럼 고층 건물이 많지 않은 프랑스에서, 그것도 아미앵처럼 작은 도시에 솟아 오른 콘크리트 고층 빌딩은 꽤 이질적인 느낌이다. 건축가 이름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의 이름을 따서 지금과 같은 명칭을 얻게 되었는데, 솜강 유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침공을 가장 크게 겪은 지역이었고 전후 재건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건물이 지어졌다고 한다. 오귀스트 페레는 이후 르 아브르(Le Havre) 시의 재건 사업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2005년 르 아브르 시 전체가 전후 복구에 성공한 모범적인 사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어쨌든 페레 타워 자체는 프랑스에서 처음 지어진 고층 주거공간이라는 타이틀 치고는 건물의 미관 자체를 두고 현지인들 사이에 호불호가 나뉘는 모양이지만, 나는 사전에 알고 왔던 것보다 미관을 해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 아미앵을 올 때 크게 두 가지 목적지를 생각해두고 왔었다. 일단 아미앵 대성당이 있었고, 다음으로 메종 드 쥘 베른(Maison de Jules Verne)이 있었다. 열차 안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도시 북쪽에 오흐티요나지(Hortillonnages)라는 솜강을 연결하는 운하 겸 습지재배단지가 있는 걸 알고 기회가 되면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아미앵 대성당이었고, 가기 전 다니엘(Daniel)이라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참치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좀 샀다. 아미앵 대성당은 현존하는 고딕양식의 성당 가운데 가장 큰 성당으로, 1220년 착공에 들어가 반 세기 가량에 걸쳐 지어졌다.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에도 스테인드글라스 등 일부 시설이 파손된 걸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는 성당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대성당을 봐도 큰 감흥이 없기도 하고, 도대체 이 큰 건물들을 언제 다 지어올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통 도시마다 가장 대표적인 매우 커다란 성당이 하나씩 있고, 그 외에 부수적인 성당들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규모로 도시 여기저기에 있는 식이다. 아미앵 대성당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두 개 들어갈 정도의 크기라고 하는데, 실제로 가서 봐도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군다나 아미앵 대성당 앞 광장은 그리 넓지 않다. 센 강변 멀리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건물을 조망할 수 있는 각도가 좁아서 성당을 올려봐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성당이 크다고 체감하게 된다. 하지만 착시 현상만은 아닌 게, 아미앵 시 외곽을 돌아다니다가 성당이 시야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멀리서 봐도 건물이 정말 크긴 크다고 느끼게 된다.
# 오흐티요나지(Hortillonnages). 발음도 어려운 이 지역은 피카르디 지역의 솜강 유역에서 행해지는 습지재배 방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접두사 ‘horti-‘가 원예나 정원가꾸기를 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될 듯하다. 아미앵 대성당을 빠져나와 동북쪽으로 10분여 걸어가면 솜 강이 나타나는데, 거기서 5분 정도 더 걸어들어가면 마을을 얼기설기 가로지르는 운하가 나타난다. 이곳은 통통배를 타고 강을 따라 유람할 수도 있는데, 많은 경우 나처럼 큰 길가를 따라 도보로 여행하는 편을 택한다. 운하에는 센 강에서 볼 법한 유람선으로 관광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삼삼오오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300 헥타르에 달하는 방대한 습지대는 대부분이 사유지로 운하 구석구석을 걸어서 둘러보기는 어렵지만, 습지재배 방식이라는 게 무엇인지 둘러보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여기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두 시간 가량 운하를 따라 걸었다. 고니, 청둥오리가 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청정한 지역의 느낌이 난다.
#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메종 드 쥘 베른이다. 쥘 베른은 낭트에서 태어났지만—그래서 낭트에도 쥘 베른 박물관이 있다—인생의 종반부를 아미앵에서 보냈고 그의 묘 또한 아미앵의 마들렌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낭트 태생의 쥘 베른이 아미앵과 인연을 가지게 된 계기가 좀 독특한데, 아미앵에서 열린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미망인 오노린 드 비안느(Honorine de Vianne)를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에 이르렀다고. 그렇게 해서 쥘 베른이 아미앵에서 산 기간이 34년이라고 하니, 아미앵 시가 쥘 베른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한편 아미앵 시는 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고향이기도 하다. 에마뉘엘 마크롱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에 이르기까지 쥘 베른과 비슷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는 게 불현듯 오버랩되었다.
여하간 내게 쥘 베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80일간의 세계일주>다. 나는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만화책으로 처음 접했고 몇 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구의 자전 방향으로 여행을 이어간 덕분에 하루를 절약하고 미션에 극적으로 성공했다는 내러티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통해 <녹색광선>이라는 작품을 읽어보게 되었다. 공상과학 소설이므로 상상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더라도—어릴 때는 물론 상상과 현실 자체도 구분을 못했지만—책읽기를 멈출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메종 드 쥘 베른을 둘러보다보면 사실 어릴 적 책을 읽으며 충족시켰던 호기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그만큼 과학적 지식을 갖고 대중을 사로잡는 책을 썼다는 사실에 느끼는 놀라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좋은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훌륭한 작가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든든한 조력자, 편집자와 출판사가 있어야 한다. 그의 동료 헤젤(Hetzel)은 쥘 베른이라는 작가를 발굴하고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그 자신도 쥘 베른의 작품을 성공시키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오노레 드 발자크,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등의 작품을 출판했다는 걸 보면 대단히 잘 나가는 편집인이었던 모양이다. 메종 드 쥘 베른에는 헤젤 콜렉션에서 출간한 매우 앤티크하고 고급스런 양장본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방문객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 아미앵에 대한 개인적 인상은 대체로 밋밋하다는 것이다. 아기자기하고 정감있는 프랑스 소도시를 이곳저곳 다녀본 결과 가장 칙칙한(?) 도시로 먼저 셰르부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고, 아미앵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아미앵을 비롯한 오드프랑스는 프랑스의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지역이다. 산업화 시기 부흥했던 도시들이 지금은 옛날의 활력을 잃었고 이는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에도 반영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은 2차 결선에 70퍼센트에 가까운 몰표를 얻었지만, 1차 결선에서는 멜랑숑에 근소하게 뒤진 2위에 머물렀다. 여기에 마린 르펜도 적잖은 파이를 가져갔으므로 그의 고향인 아미앵에서조차 그에 대한 지지가 확실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오늘 도시 외곽의 운하 일대를 거닐면서 느꼈던 거는 불황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리듬에 따라 각자의 삶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운하 사이사이에 들어선 개인농장과 주택은 보기 좋게 가꿔져 있다. 파리로부터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라고 하면 사실상 수도권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파리의 영향권에 있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와 공간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작은 성(城)을 쌓아올리며 사는 이곳 사람들이 개인적이다 못해 폐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습지재배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유산을 오늘날에도 돈이 되게 운영하는 방식이 흥미로운 것 같다.
# 파리로 돌아온 뒤에는 늦은 밤 TF1에서 중계되는 챔스 결승전을 봤다.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는 파리 생드니 경기장에서 열렸다. 축구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France 4 채널에서 칸 영화제의 생중계를 봤다. 채널을 돌린 순간 딱 박찬욱 감독이 수상소감하는 장면이 나왔다. 75회를 맞이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작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티탄>에서 주연을 맡았던 뱅상 랑동이 심사위원장을 맡고, 비르지니 에피라(Virginie Efira)가 사회를 맡았다. 황금종려상은 루벤 외스툴룬트의 <슬픔의 삼각형>에게로 돌아갔는데 이번이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이다. 첫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더 스퀘어>도 재밌게 봤던지라, 이번 작품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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