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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의 일기: 두 번째 인간혐오자(Le Misanthrope)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27. 19:14
# 점심 직전 PLS 국제처와 예정된 약속(RDV)에 다녀왔다. 진전이 없는 사회보장 가입 문제와 관련해서 조언을 받기 위함이다. 오늘 방문 이후로 이곳 행정에 더 이상 발을 담그지 않겠다 생각하고 사무실에 들렀다. 6구 마자린 가(R Mazarine)에 위치한 PSL 국제처는 건물 입구로 들어간 다음 작은 정원을 통과하게끔 되어 있다. 오늘 예정된 30분간의 약속에서 나를 도와줄 스태프는 BB라는 프랑스 남자였다. 결과적으로 귀국을 앞둔 상황상 사회보장 가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였고, 그럼에도 반려된 서류가 재검토될 수 있도록 서류를 재구비해주었다. 일단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임시번호라도 발급을 받는 걸 목적으로 했다. 만약의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니 임시번호 발급이라도 받아보자는 상황이 앞뒤가 안맞는다고 느꼈지만, 큰 기대를 하고 왔다기보다는 이곳 행정이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생각에서 왔던 거라,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된 것에 의미를 두었다.
# 늦은 밤에는 이브리 쉬르 센(Ivry sur Senne)에서 열리는 교내 연극을 구경하고 왔다. 고등사범학교 학생들이 연출한 몰리에르의 <인간혐오자(le misanthrope)>다. 이브리 쉬르 센은 파리 13구 바깥에 위치한 지역으로, 7호선을 타고 메리 디브리(Mairie d’Ivry) 역에 내리면 걸어서 7분 정도에 도착한다. 연극이 열린 엘 뒤엉드(El Duende) 극장은 극장 코앞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려운 작은 입구를 두고 있었다. 하늘색 문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가면 작은 안뜰(Cour)이 나오고 왼편으로는 매표소, 정면으로는 바가 있다. 상연 시각인 8시 반이 가까워져올 수록 사람들이 점점 불어났다. 이날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이 객석수로 어림잡아 볼 때 100명은 넘었던 것 같다. 연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앞서 백발의 여배우—전문배우이거나 연극 관련 종사자인 것 같다—가 무대에 올라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통화의 내용은 오늘밤 엘 뒤엉드 극장에서 대단한 연극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치있게 사람들이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연극은 시작되었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연출한 <인간혐오자>도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작품이었는데, 학생들이 연출한 <인간혐오자>는 더 일상에 가까운 느낌으로 재해석되었고, 젋은 학생들의 연출답게 발랄한 팝이나 샹송들이 가미되었고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었다. 또 소네트(Sonnet)를 매우 많이 쓰기도 했고, 멜로디를 포함한 뮤지컬적인 요소까지 들어갔다.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주인공 알세스트의 배역으로 여학생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나는 그래서 셀리멘느를 남학생으로 도치시키는 완전히 새로인가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셀리멘느 배역은 그대로 여학생이었다. 알세스트말고도 극중에서 셀리멘느를 시기하는 아르시노에(Arsinoé)도 극중 주인공과 배우의 성별이 바뀐 방식으로 연극이 진행되었다.
코메디 프랑세즈의 <인간혐오자>에 비하면 아마추어 느낌이 나는 게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톡톡 튀는 학생들의 연기가 그런대로 볼 만했다. 각자의 배역에 완전히 녹아든 느낌은 또 아닌데, 학생들의 개성이 묻어나서 풋풋한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연극에서 가장 눈길 끄는 연기를 보였던 건 셀리멘느 역을 맡았던 이름 모를 여학생이었다. 처음 무대에 등장했을 때는 다른 학생들보다 발성이 약한 게 먼저 눈에 띄었는데, 이후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나 능수능란하게 극중 배우들과 호흡을 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재미있게 보았다. 조금씩 학생 티가 났던 다른 배역들과 달리 셀리멘느 역을 맡은 배우는 뭔가 체화된 느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밖에 필랑트(Philante)와 엘리엉트(Éliante)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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