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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猫を捨てる)일상/book 2022. 11. 14. 17:26
얼마전 서점을 헤매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현장에서 곧바로 책을 구매했다. 채 100페이지가 안 되는 에세이고 행간까지 넓어서 정말 부담없이 읽었다. 게다가 대만 출신 작가 가오옌(高妍)의 삽화가 들어가 있어서 읽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 짧은 에세이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함께 출발한다. 몇 번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걸 짐작하기는 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러질 대로 틀어진 채로 평생에 걸쳐 나아지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그런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부채의식처럼 마음 한켠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버지가 생전에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상세하게 문헌조사를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기 전까지 줄곧 꺼림직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난징(南京) 침공으로 악명 높았던 보병 20연대에 아버지가 소속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고 (문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에 착오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후술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학살극에 참여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평생 극복하지 못한 그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 말을 아꼈지만, 징집된 학도생들에게 살생에 무뎌지는 법을 가르치던 당시 일본군의 광기를 생각해보건대 아버지가 살생에 관여했는지 아닌지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일본사람들의 글을 읽거나 말을 나눠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자국이 경험한 집단적 트라우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데, 사실 일본 바깥에 놓인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들의 시각을 이해하기가 참 까다롭다. 하물며 공산권 확장을 저지하고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겠다며 1960년대 베트남전을 개전한 미국에서조차, 당시 여러 학살 정황이 드러나고 네이팜탄의 오남용이 문제되자 자국 안에서도 거센 비판과 함께 반전 운동이 격화되었다. 그런 걸 떠올려본다면 일본인들의 시각은 극도로 내부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역지사지를 해본다면 전쟁에 가담한 가족의 이야기를 꺼낸 용기만 해도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입장에서 내가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수필이라곤 하지만 문헌에 등장하는 여러 역사적 사실들과 유년 시절의 개인적 기억이 교차되고 있어서 다른 수필들과 엮어서 출간하기도 어려운 글이었다고 한다.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와의 순탄치 않았던 관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 두세 페이지에 집약되어 있다. 도가(道家)의 설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의 앞 세대가 지나온 시간은 지금 세대의 시간과 얽혀 있고, 그 모양은 비내리는 풍경을 이루는 하나의 빗방울과도 같다. 빗방울은 낙하하는 동안 그 자체로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지만, 집합을 이루어 빗줄기를 만들어내고 그 빗줄기는 거세지기도 잠잠해지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보통의 존재로서 빗방울들과 같다. 때문에 역사적 체험을 통해 되돌아보건대, 무자르듯 피아(彼我)를 나누는 것보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든 보통의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해진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가 두 번째로 소개하는 고양이—야무지게 소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한 고양이—를 통해서는 결과와 원인이 주객전도된 상태를 경계하는 그의 관점이 엿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때로 어느 한 면에 함몰되어 이면(裏面)을 바라보지 못하는 착오를 범하곤 한다. 아버지와 함께 바닷가에 떠나보낸 고양이가 집에 먼저 돌아와 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의 어떤 대목들에서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다른 연결고리와 어떤 방식으로 맺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상(頂上)을 향해 오르는 과정이 지금 당장은 의미 있어 보이지만, 실은 정상에서 내려와야 할 순간이 되었을 때 조심히 내려오는 일이야말로 더 힘들다는 것, 우리는 그런 보통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 것과 마찬가지로. [終]
父の心に長い間重くのしかかってきたものを—現代の用語を借りればトラウマを—息子であるぼくが部分的に継承したということになるだろう。人の心の繋がりというのはそういうものだし、また歴史というのもそういうものなのだ。その本質は<引き継ぎ>という行為、あるいは儀式の中にある。その内容がどのように不快な、目を背けたくなるようなことであれ、人はそれを自らの一部として引き受けなくてはならない。もしそうでなければ、歴史という物の意味がどこにあるだろう?
—p. 52~53
僕は手を動かして、実際に文章を書くことを通してしかものを考えることのできないタイプの人間なので、こうして記憶を辿り、過去を眺望し、それを目に見える言葉に、声に出して読める文章に置き換えていく必要がある。そしてこうした文章を書けば書くほど、それを読み返せば返すほど、自分自身が透明になっていくような、不思議な感覚に襲われることになる。手を宙に翳してみると、向こう側が微かに溶けて見えるような気がしてくるほどだ。
—p. 89~90
結果は起因をあっさりと呑み込み、無力化していく。
—p. 94
我々は広大な大地に向けて降る膨大な数の雨粒の、名のなき一滴に過ぎない。固有であるけれど、交換可能な一擲だ。しかしその一滴の雨水には、一滴の雨水なりの思いがある。一滴の雨水の歴史があり、それを受け継いでいくという一滴の雨水の責務がある。我々はそれを忘れてはならないだろう。たとえそれがどこかにあっさりと吸い込まれ、個体としての輪郭を失い、集合的な軟化に置き換えられて消えていくのだとしても。いや、むしろこういうべきなのだろう。それが集合的な軟化に置き換えられていくからこそ、と。
—p.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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