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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12. 15. 17:03
# 간밤에 남쪽에서 올라온 먹구름이 이른 아침부터 눈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어젯밤 하늘이 구름에 서서히 흐려져가는 걸 목이 빠져라 바라보았다. 한밤중 20분 남짓 쌍둥이자리 근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쌍둥이자리 근처에서 둘, 오리온자리 근처에서 하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몇 백 년만에 찾아온다는 우주쇼를 소개하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봐도, 내게는 그저 수많은 인간사와 스캔들 사이에 끼어든 작은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 밤사이 유성우가 있을 거라는 글을 우연히 접한 순간, 곧장 점퍼만 둘러입고 밖을 나섰다. 마침 우주쇼가 있을 것으로 예정된 시각이었다. 최근 본가 근처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집 앞에서 눈에 들어오는 하늘의 면적은 반의 반토막이 났고, 겨울 밤하늘에서 내가 아는 별자리라곤 오리온 자리와 북극성 정도였기에 과연 이 이벤트를 잘 볼 수 있을까 싶었다. 휴대폰으로 별자리 지도를 대충 확인한 뒤, 내가 아는 오리온 자리를 출발점으로 더듬더듬 서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모든 섭리를 집어삼킬 듯한 서울의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짚어나가는 일은 참 호사스런 일이지만, 그것도 내 착각이었는지 오랫동안 밤하늘을 응시하다보니 희미한 별들도 제법 시야에 들어온다.
좁은 하늘 사이로 별똥별을 찾기 위해서는 목을 젖혀 올려다봐야 하는데,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행여 나를 이상하게 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추운 날씨에 밤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가장 먼저 오리온 자리의 남동쪽에서 새하얀 뭔가가 미끄러지는 것이 얼핏 보였는데, 별똥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나는지라—아마도 군대 야영훈련 때였던 것 같은데 그러면 벌써 8~9년 전쯤 된 이야기다—방금 전 시야의 가장자리를 스쳐지나간 게 별똥별인지조차 긴가민가했다. 얼마 안 있어 아파트의 꼭대기에 걸친 하늘의 가장자리에서 또 다른 별똥별 하나가 서쪽으로 맹렬히 미끄러지는 게 또렷하게 보인다.
세 번째 별똥별은 쌍둥이 자리 한가운데에서 떨어졌다. 앞선 것과 마찬가지로 전진함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빙판 위를 긁는 스케이트날처럼, 먹빛 하늘에서 별똥별은 날카로운 선을 긁어낸다. 하지만 그것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선(線)이라는 것밖에는 어떤 형태도 색깔도 느낌도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곧은 선이었다고 하기에는 그것은 너무나도 곧은 선이었고, 새하얗다고 하기에 그것은 너무나 새하얬다. 점이 선의 궤적을 그리며 이동한 거리와 속도를 가늠해볼 수 없어서, 이게 정말 실재했던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단지 그 별은 딱 한번 단말마를 토해내듯이 일순간 무섭게 작열했고, 그 순간을 목격했다는 가벼운 느낌만이 남았을 뿐이다. 막상 별똥별을 볼 때에는 내가 본 것이 별의 죽음이라는 생각도, 별똥별에 실어보낼 바람도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그처럼 찌를 듯이 예리했던 흔적은 하늘에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어느새 남쪽으로부터 물결치듯 짙은 구름이 몰려왔다. 암운들 사이에서도 가시지 않는 별빛을 보며, 우주공간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별의 덧없는 죽음과 나의 치열한 삶이 병치되었다. 주저없이 하늘을 잘라내는 별의 궤적 안에서, 무수한 선택지들 틈에 더듬더듬 앞을 헤아리는 나의 궤적이 겹쳐진다. 지난밤 참 간결했던 별의 움직임에 비하자면 내 삶의 경로는 한없이 불완전하고 방향도 일정치 않다. 그럼에도 별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며 내뿜던 빛의 일렁임은 내 안의 어떤 강렬한 기다림과 닮아서, 나를 집어삼키려던 의심을 옆으로 미뤄두고 다시 나의 궤도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덧 한 해도 가고 내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마음 한켠에는 두려움도 있지만 한 번 더 용기를 갖고 앞을 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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