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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는 목련보다도 벚꽃이 더 빨리 폈다. 그래서인지 땅바닥에 어수선하게 떨어진 두꺼운 목련잎이 더욱 처연해 보인다. 자신을 채 내보이기도 전에 주위의 변화에 휩쓸려버린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이 탐스럽고 도타운 꽃잎은 다른 나무에서 떨어진 것들보다도 목직해 보이는 까닭에 이 세상의 중력을 더 많이 감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슷썬 생감자를 닮기도 한 새하얀 목련잎에서 향기와 함께 알싸한 냄새가 올라온다. 커다란 꽃잎이 빨아들인 봄의 피. 낙화함으로써 생채기가 난 것처럼 선혈 냄새같은 것이 올라온다. 이 한 송이 목련 잎은 가장자리부터 피딱지처럼 메말라감으로써 이제는 여름으로 아물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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