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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순수한 형태일상/film 2023. 5. 27. 16:56
이 작품은 내가 작년도 프랑스에 있을 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국내에서는 1년이 지나 상영관에 걸렸다. 영화는 크게 세 개의 연결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인 <칼과 야야>에서 모델들과 런웨이의 후경으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We’re equal)”는 문구와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라는 문구가 번갈아 화려하게 번쩍이며 이야기가 출발한다.
Socialism works only in heaven where they don't need it, and in hell where they already have it.
작중 인물들은 공평함, 평등함, 공정함을 수시로 입에 올리는데, 그들이 말하는 평등함은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면서도 묘하게 불편감과 위화감을 준다. 칼과 야야라는 두 주인공의 만남에 대해 소개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 <칼과 야야>에서는 성별에 따른 역할을 두고 두 인물이 팽팽하게 언쟁을 벌인다. 이 언쟁은 연인으로서 그들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생산적 논쟁이기보다는 언쟁 그 자체를 위한 언쟁의 성격을 띠며 이 영화가 앞으로 나아가게 될 방향의 전반적 방향에 대해 조명해준다.
영화에서 ‘평등’이란 단어는 흔하디흔하고 그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닳아빠져 있다. 사람들은 너무나 손쉽게 ‘eqaul’이란 낱말을 내뱉지만, 사실 그건 목구멍에서 새어나온 '소리'일 뿐 어떤 뜻을 함축한 '언어'는 아니다. 그 적나라함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두 번째 에피소드인 <요트>다. 초호화 선상 파티가 열리는 크루즈선에서 평등함을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가진 자들이다.
while you're swimming in abundance, the rest of the world is drowning in misery
That's not the way it's meant to be그들은 살상 무기로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탈세를 해서라도 축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휴대폰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값비싼 파스타를 먹는 시늉을 하고, 명품 시계나 보석으로 노골적으로 타인의 환심을 구하면서도 낯빛 한번 변하지 않는다. 비료를 팔아 큰돈을 벌었다는 러시아의 한 사업가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똥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위선적인 이들 부유층에 대한 감독의 경멸적 의미가 담겨 있다.
선상에서 흥청망청 돈을 쓰며 먹고 마시는 이들에게 일갈을 날리는 것은 토마스 선장이다. 그는 선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귀를 닫은 채 자신의 선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기상상태가 나빠진 목요일이 되어서야 선장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한다. 최고급 만찬을 즐기러 연회실에 모인 승객들은 배멀미를 견디지 못하고 속에 든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하는데 토마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선상에서 선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마이크 방송을 통해 자본주의의 민낯에 대해 읊조리기까지 한다. 여기에 공산주의의 치부에 대해 조롱하던 예의 러시아 사업가까지 맞장구치는 촌극이 벌어진다. 자본주의의 수혜를 입었던 자가 자본주의를 욕하고, 공산주의의 수혜를 입었던 자가 공산주의를 욕하는 점입가경이 펼쳐지는 와중에, 격렬하게 출렁이는 배 안에서 승객들은 배를 움켜쥐고 그들의 위선을 밑바닥까지 토해내듯 먹은 것을 게워내고 게워낸다.마지막 에피소드 <섬>에서는 종국에 외딴 섬으로 난파당한 승객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선상에서는 화장실 청소부였던 애비게일이라는 여자가 수완을 발휘해 섬의 선장이 되는 과정이 마치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보는 듯하다. 애비게일의 극적 등장은 이야기의 구도를 여러모로 도치시켜 놓는다. 첫째 빈자가 부자를 지배하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둘째 여성이 남성을 지휘하는 상황이 전개되며, 끝으로 유색인종이 백인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Never argue with an idiot, they'll only bring you down to their level and beat you with experience
하지만 이 낯선 구도는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애비게일이 주장하듯 자신이 자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선장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하지만, 과연 방금 전까지 향략에 젖어있던 조난 승객들이 수긍할 수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영화 속에서 야야가 애비게일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나가서 당신이 내 비서를 하면 어떨까요?―에 놀라게 된다.
허위(虛僞)의 완전무결한 순수함. 망망대해를 앞에 둔 해안가에서 자신에게 가까워져 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앞두고도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얘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 한바탕 난파 끝에 갖은 고초를 겪고도 돈에 기반한 주종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그런 야야의 무구함은 생존과 맞닿아 있지 않은 허식(虛飾)의 세계에 언제나 두발 딛고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자 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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