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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도에 개봉한 이 작품은 니콜라스라는 소년이 자신이 속한 가정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집 밖에서 배회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동선이 얼기설기 엮여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덧붙여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파리 시내의 풍경이 비교적 잘 담겨 있고, 이야기와 이야기의 매듭이 깔끔하지 않은 느낌이 있지만 그런 풋풋한 장면들 덕에 오히려 옛날 영화를 한 편 보는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아버지 역을 직접 맡기도 하는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감독은 원래는 구 소련 연방에 속했던 조지아 태생으로, 1934년생인 원로 감독이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작품 활동(2015년 <겨울노래 chant d'hiver>)을 했을 만큼 1958년 첫 단편 데뷔 이후 오랜 기간 왕성하게 작품을 내놓고 있다. 데뷔는 소련 치하에서 했지만 이후에 영화감독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어려워지자, 83년부터는 아예 프랑스로 망명하여 소련이 붕괴된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특징적인 점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부조리나 모순들을 심각하지 않게 담아내면서 그것들을 폭로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인 것 같다. (혹자는 그런 특징이 자크 타티의 작품과 닮았다고도 한다.) 사업 동업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엄마, 방안퉁수처럼 방에 콕 박혀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는 니콜라스로 하여금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그가 밖에서 어울리는 부랑자와 깡패들 역시 니콜라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일시적인 일상 속 해방구를 제공할 뿐 환멸감만 부추긴다. 이런 내용들이 코믹적 요소로 가볍게 다루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오히려 부담감 없이 삶의 또 다른 단편(斷片)들을 마주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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