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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だ単にそういう人だったと思うのが、難しいですか?
오랜만에 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작년부터 보고팠던 영환데 연말을 맞아 재개봉하면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딱히 이 영화에 배경지식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라는 감독의 이름만 보고 먼저 영화에 관심이 생긴 경우다.
영화의 오프닝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여자 없는 남자들(女のいない男たち)』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하나의 에피소드가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여러 편 읽어봤지만, 근래에 흥미를 잃으면서 집에 원서로 사다 놓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街とその不確かな壁)』을 읽기를 미룬지도 한참 되었다. 그의 글을 영화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오토(音)와 카후쿠(家福)의 무미건조한 톤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을 읊는 것인 동시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를 담담히 읽어내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 속에—이는 곧 영화의 원작인 하루키의 소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굉장히 다양한 소재들이 차용되고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가령 카후쿠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상연할 때 다양한 언어를 활용한다.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심지어 수화까지..) 상대의 언어를 몰라 서로 어느 지점에서 대사가 끝나는지 몰랐던 배우들이 연습을 거듭하며 호흡을 맞춰가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히로시마(広島)라는 배경 역시 매우 독특하다. 세토우치(瀬戸内)의 싱그러운 풍광은 와타리가 떠나온 눈의 고장 홋카이도와는 별세계다. 무엇보다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단편 자체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의 연기와, 배우의 정신세계, 그 중간을 메우는 여러 감정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이처럼 시각화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매우 입체적이다.
僕は、正しく傷つくべきだった
두 번째로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점은 미우라 토코(三浦透子)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미우라 토코가 연기하는 와타리(渡)는 첫 등장에서부터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와타리(渡)라는 이름 그대로 홋카이도를 도망쳐 히로시마로 건너온 인물이다. 매우 냉소적인 시선과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사가 미우라 토코를 위한 배역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잘 어울렸다.
私が怖いのは真実ではありません。真実を、見ないことです
끝으로 영화에서 얻게 되는 것은 작가와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보지 않는 것(私が怖いのは真実ではありません。真実を、見ないことです)이라는 오토의 말에는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삶에 임해야 한다는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다. 그 진실은 평생 나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일 수 있을지언정, 내게 끝없이 생채기를 내는 것일지언정 그대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ただ単にそういう人だったと思う) 그냥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그런 걸 운명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삶은 원래부터 그냥 그런 것일 뿐이다. [終]
生きて行きま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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