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락의 해부(Anatomie d'une chute)일상/film 2024. 3. 16. 11:20
MARGE
Quand un élément nous manque pour juger de quelque chose, et que ce manque est insupportable, la seule chose qu’on peut faire c’est décider. Pour sortir du doute, on est parfois obligé de décider de basculer d’un côté plutôt que de l’autre.
... Comme t’as besoin de croire à une chose, et qu’il y en a deux... tu dois choisir.
"어떤 걸 판단하기 위한 근거가 부족하다면, 그리고 이를 견디기 어렵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정"하는 거야.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끔씩 우리는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만 해."
DANIEL
Il faut inventer qu’on est sûr, c’est ça ?
"믿을 수 있는 걸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요?"
한동안 일에 몰입하다보니 체력이 고갈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무딘 신경이 예리해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뜨겁게 달군 쇠도 차가운 물에 담금질을 여러 번 해야 단단해지는 것처럼, 내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예전만큼 영화를 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보고 싶은 영화가 줄어든 건 아니다. 그렇게 내가 고른 영화가 <추락의 해부>다. 영화는 마치 대학교 1학년 글쓰기 수업에서 보았던 <라쇼몽>과 닮아 있다. 요는 우리가 밝혀내고자 하는 진위라는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관점을 투영한 믿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같은 사건 같은 사물도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영화 속 취재 장면이나 인터뷰 장면에 삽입되는 VCR 화면은 우리가 선택하고 편집한 주관적 관점에 대해 새삼 깨닫게끔 한다.
"주관(主觀)"이라는 단어에는 "보다(觀)"라는 행위가 담겨 있다. 세상을 어떻게 관조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수용하는 방식 역시 달라진다. 그리고 "주체(主)"로서 여러 개인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삶은 '나'가 바라보는 방식과 '너'가 바라보는 방식 사이에서 쉼없이 부대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된 오늘날 오히려 극단적 의견 대립이 심화되는 건, 오늘날의 '믿음' 체계가 여러 주관 사이의 부대낌을 완충하지 못하는 지극히 단세포적인 꼴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모레비(木漏れ日) (0) 2024.07.10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0) 2024.04.29 사랑은 낙엽을 타고(Kuolleet lehdet) (0) 2024.01.21 살아갑시다 (0) 2023.12.31 여덟 개의 산(Le otto montagne) (0) 202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