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당기던 하루는 저녁도 거르고 영화관을 찾았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영화관으로 가더라도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를 정도였다. 내가 고른 영화는 빔 벤더스의 <퍼펙트데이즈>.
하루하루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이야기는 어쩐지 영화 <패터슨>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히라야마가 어떤 경위로 지금의 화장실 청소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는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할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한다. 잠을 깨우는 동네의 빗질 소리, 문을 나서면 눈에 들어오는 하늘, 출근 전 들이키는 자판기 커피 한 잔, 운전할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스카이트리, 각양각색의 공중화장실과 청소, 일이 끝난 후 공중목욕탕에서 피로 풀기, 지하철역 누추한 식당에서 야구를 보며 간단한 저녁 요기하기, 잠들기 전에 문고판 책 읽기. 이렇듯 그의 하루는 대단히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변주들도 있다. 행위예술을 하는 듯 엉금엉금 동작을 취하는 노숙인, 신사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마주친 기묘한 표정의 은행원, 카세트 테이프 소리에 매료된 금발의 여성, 가출 후 삼촌을 찾아온 맹랑한 조카, 손님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기모노 복장의 여성,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하는 초로의 남성. 누가 보면 대단할 것도 없고 따지자면 누군가는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삶이다.
影. 그림자. 히라야마의 꿈 속에도 나타나고, 그림자밟기 놀이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나는 소재다. 그림자는 살아 있는 존재로부터 빚어지고, 그러한 존재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림자가 존재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말을 걸고 바라봐야 할 대상은 존재이지 존재의 그림자는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뒷이야기를 모른 채 그들이 감내해 나가는 일상만을 바라보게 된다. 히라야마가 여행의 마지막에 눈물을 머금는 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기쁨의 눈물도 아니고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매 순간 매 순간에 느끼는 애정과 삶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의 덧없음이 복잡하게 얽힌 눈물이 아니었을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