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편의 프랑스 영화일상/film 2023. 6. 26. 18:06
모처럼 영화관을 찾았다. 한동안 보고 싶은 영화가 없기도 했고,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독서에 더 집중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는데, 결국은 둘 모두 챙기지 못했다. 한 번은 퇴근길에 영화관을 찾았고 한 번은 결혼식을 다녀오는 길에 영화관을 찾았다. 그 중 먼저 본 것이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라는 영화다.
컹탕 뒤피외의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는 시간을 되돌리는 통로를 발견한 알랭과 마리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발견하게 된 비밀통로는 젊음으로 시간을 되돌려주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파국을 초래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영화에는 회춘에 집착하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마리와 제라르이다.
마리는 젊음이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켜줄 거라고 믿지만, 젊음을 되찾은 뒤에도 자신의 꿈을 달성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며 히스테릭한 상태에 빠져든다. 제라르 역시 첨단기술을 통해 자신의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지만, 자신의 신체에 대한 훼손을 긍정하고 신기술을 제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젊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영화 안에서는 개미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상처가 난 자리에 나오는 것이 피가 아닌 개미인 것. 시간을 거꾸로 돌려 젊음을 되찾겠다는 것은 만국공통된 욕망이겠지만, 그 욕망이 얼마나 덧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듯하다.
"Je voudrais mourir pour ne pas avoir à vous perdre."
두 번째로 본 영화는 <홀리 모터스>. 레오스 꺄락스의 2012년도 영화다. 나는 이 영화의 정형화되지 않은 면 때문에 재밌게 보았다. 전형적인 등장인물의 성격과 배우의 연기, 이야기의 전개, 촬영방식 등을 모두 타파하는 영화적 실험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어떤 논리 안에서 풀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동진 평론가의 2시간 짜리 평론 영상을 보기도 했고.영화의 마지막에 셀린(에디트 스콥)이 마스크를 쓰는 장면으로 인해 영화에서 말하려는 내용이 상당히 단순화될 뻔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우리 모두가 나름의 가면을 바꿔써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평범한 얘기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1인 9역을 맡았던 오스카(드니 라방)의 연기가 그렇게 일축되기에는 너무나 극명하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참고로 에디트 스콥이 푸르딩딩한 가면을 쓰는 장면은 그녀의 초기작 <얼굴없는 눈>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이동진 평론가에 의하면 이미지의 생산과 조작이 용이해지는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이미지 또는 영상의 가치가 저하, 또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추락하는 세태에 대한 반동(反動)으로써 살아 있는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레오스 꺄락스가 초점을 맞췄다고 하는데, 어쨌든간 오스카라는 인물이 행하는 연기들은 손에 잡히는 가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해서 아홉 개의 자아로 된 조각조각들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 Qu'est-ce qui vous pousse à continuer, Oscar ?
— Je continue comme j'ai commencé. Pour la beauté du geste.
— La beauté... On dit qu'elle est dans l’œil... Dans l’œil de celui qui regarde.
— Alors, si personne ne regarde plus..
신선한 형식과 서사도 좋았지만, 어쩐지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아름답지 않음(醜)'의 미학이 영화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스카가 처음으로 연기하는 걸인 할머니나, 광인의 모습은 기괴하다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한다. 특히 한쪽 눈이 애꾸눈이 된 광인 연기는 레오스 꺄락스의 전작인 <퐁뇌프의 연인들>에도 연출된 바 있는데, 묘한 것은 인간 바닥의 본성을 드러내는 이 연기에서 좀처럼 시선을 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내 안에도 내가 인지하지 못한 저런 일부가 있는 것처럼 인력을 느끼는 것이다.'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덟 개의 산(Le otto montagne) (0) 2023.10.25 안녕, 나의 집 (0) 2023.07.18 평등의 순수한 형태 (0) 2023.05.27 독일의 가을(Deutscher Herbst) (2) 2023.04.10 나의 아저씨(Mon oncle) (2) 202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