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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나를.. (As if, I have missed myself)주제 있는 글/Théâtre。 2023. 10. 22. 22:31
10월 중순 가을밤의 혜화동은 퍽 추워서 겨울의 문턱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로니에 공원 옆 빨간 벽돌로 된 아르코 극장은 언제 봐도 고즈넉한 느낌이 있다. 해질녁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이제 유백색 가로등 불빛을 받아 생기 없는 암록색을 띠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간이 가판대 앞에 앉아 연극 티켓을 파는 사람이 부루퉁한 얼굴로 관객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낙산으로 접어드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혜화동(惠化洞)이라는 한자가 검은색 양각으로 새겨진 한 가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마치 내가 나를..(As if I have missed myself)>은 '나'라는 존재 안에서 쉼없이 충돌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이다. 소설도 그렇고 영화와 그림작품도 그렇지만 가끔은 클래식한 걸 즐기다가도 아예 아방가르드한 것에 관심이 간다. 흔히들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는 지금 이 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좀 더 쏠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연극이나 무용이 그러하다. 올해 늦봄 현대극을 한편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의 역동적인 무용이 기억에 남아 가을에도 현대극 한편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현대무용의 매력은 굉장히 불규칙적이고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서 오랜 연습으로 다져진 정제됨과 섬세함이 배어나온다는 점이다. 복장 또한 최소한의 형태는 갖추고 있어도 격식 있는 느낌이 아니어서, 연출되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배우가 빠르게 동작을 전환할 때마다 땀방울이 허공으로 튀어오른다. 그만큼 무질서해 보이는 모션들을 마디조차 가늠되지 않는 단조로운 음악에 맞춰 빠르게 이어나간다. 음악은 가벼운 박자가 되었다가, 웅성임이 되었다가, 이내 쇳소리가 되었다가 가끔은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연극의 전반부가 서로 자꾸만 미끄러져 나가는 자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온갖 정체성들이 하나의 자아 안으로 집약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연극의 후반부는 무대 위 두 배우 이외에도 조명을 통해 두 배우의 녹화된 영상이 영사(影寫)되어서 굴곡진 배우의 피부 위로 이해하기 힘든 울긋불긋한 상(像)과 색(色)을 만들어낸다. 그 장면이 꼭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평면 밖으로 뛰쳐나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마지막까지 엇나가던 두 배우들의 움직임은 연결될 듯 화해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데, 존재에 내재되었다고 일컬어지는 것들—그것이 자아로 불리든 에고로 불리든 초자아로 불리든지 간에—이야 말로 먼 우주에 탐사선을 띄워 보내는 것만큼이나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말하고픈 것일까. [끝]'주제 있는 글 > Théât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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