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연극을 봤다. 군대동기이기도 한 J는 예대를 나와 일찍이 공연계에 몸을 담고 있다. 하루는 그런 J의 소개로 연희동의 한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업무를 하는 오후 내내 골머리를 앓고 기분마저 사나운 날이었다. 서둘러 퇴근했건만, 연희동행 버스를 코앞에서 간발의 차로 놓치고 택시를 한 대 잡았다.
사실 나는 국내에서 창작되는 연극을 본 적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 해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연극조차도 해외 초청 연극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 것’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나의 고루한 악취미를 뉘우치게 된다.
이머시브 공연을 표방하는 <아파트모멘트>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연극보다도 에너지 넘치고 생동감 있는 연극이었다. 공연장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모호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배우들이 관객 옆을 스쳐지나가거나 눈을 마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참신하다.
아파트모먼트는 ‘아파트(Apartment)’와 ‘순간(Moment)’의 합성어다. 극중 서우의 입을 빌려서 말하자면 ‘이 개연성 없는 연극’은 시작도 없이 ‘내던져’진다. 연극은 개연성 없이 흘러가지만, 관객이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되는 것은 배우들의 ‘던지는 행위’다.
배우들은 무엇을 던지는 것인지, 왜 던지는 것인지는 모르고 다만 꺼림직한 불안감을 안은 채, 마치 시한폭탄을 돌리듯 가방을 던지고 또 던지며 혈기 넘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극의 후반부에 가서야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꾸러미와 이를 던지고 달리고 숨기는 행위가 불확실한 세상에서 번민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연극은 그런 순간순간들에 대한 스냅샷과 같은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