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연극 카테고리에 남길까 말까 고민한 건, 관람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한 꼬마와 이를 통제하지 않는 보호자로 인해 춤 공연의 3분의 2는 즐기지 못한 사정 때문이다. 요즘 들어 머리 꼭지까지 화날 정도로 무례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잡문(miscellaneous) 카테고리에 한번 생각을 정리해서 올려볼까 한다.
춤은 크게 세 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춤이 승무(부제:불佛)이고 두 번째 춤이 민살풀이(부제:신神), 끝으로 소고와 함께하는 나가는 춤이 있다. 그리하여 내가 집중해서 관람할 수 있었던 공연은 첫 번째 춤인 승무일 텐데, 각 춤에서 주로 사용하는 몸동작이 달라서 세 가지 스타일의 춤을 고루 온전히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질 없이 관람했다면 개인적으로는 아마 민살풀이를 가장 인상 깊게 봤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의 리듬과 가락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모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춤사위였기 때문이다. 조금은 세파(?)를 겪은 나이대가 되어서인지 춤꾼의 가녀린 들썩임이나 흐느낌에 가까운 몸짓에서 어쩐지 간파할 수 있을 것도 같은 애처로움을 발견하게 되는데, 요새 들어 내가 새로이 발견한 취향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아주 오래된 우리의 전통 안에서 서슬푸르게 서려 있는 시간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그것이다. 사찰의 이끼 낀 기와, 처마 뒤로 쩍쩍 벌어진 소나무, 춤꾼이 사뿐사뿐 옮기는 버선발까지.
오히려 첫 번째 춤인 승무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몸의 움직임보다는 소리의 흐름이었다. 들숨과 날숨으로 포문을 연 소리는 고요하지만 절절한 목울림으로 이어지고, 이내 풍경(諷經) 소리와 함께 구절이 담긴 노래로 옮겨간다. 동양의 소리는 체계가 없는 것처럼 들리면서도 무질서하다는 느낌은 없어서 생경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기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보광동(普光洞)’이라는 주제의식이다. 무용가가 생활하고 있다는 보광동이라는 장소가 뉴타운으로 개발될 상황에 처하면서 이 일대를 그린 일종의 기록영상을 만들었다. 영상 속 서정숙 무용가가 춤을 추며 이동하면서 보광동의 골목과 노포(老鋪), 언덕 위에서 바라다보이는 한강 둔치의 풍경이 펼쳐진다. 서정숙 무용가가 차려입은 새하얀 옷이 화면의 중앙에서 나풀댈 때마다 보광동이 거쳐온 시간을 선명히 기억하겠다는 담담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다.
새해를 맞아 기획된 공연이고, 막걸리나 입춘첩을 나눠주는 이벤트가 있어 건조한 일상에서 색다른 접촉같은 걸 느낄 수 있어 좋은 공연이었다. 공연 내내 소란을 피우는 어느 꼬마 옆에 앉는 바람에 그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담한 공간에서 소규모의 관객과 함께 한국무용을 본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기회이고,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 있어서도 뜻깊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