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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المتحـــف)주제 있는 글/Théâtre。 2024. 10. 26. 10:21
우리나라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감독의 현대극을 관람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있었다. 예년처럼 SPAF 연극의 리스트를 살피다가 뒤늦게 눈에 들어온 작품, <뮤지엄>. 우리나라에 거의 소개된 적 없는 아랍권에서 연극이 들어왔다는 점, 사형수와 형사간의 심리극을 그리고 있다는 점, 그러한 난해한 주제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극을 예매하게 되었다.
연극에서 맨처음 나를 사로잡은 건 무대 위에서 카랑카랑하게 울려퍼지는 아랍어 대사였다. 미디어에서도 접하기 힘든 이들의 언어는, 마치 살면서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박자와 운율을 들은 것처럼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실험적인 도구들이었다. 삼각대 위의 카메라는 인물을 클로즈업하고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면서 인물의 육체와 심리를 낱낱이 해부한다. 끝으로 깨달았던 것이 마침내 개별 감각이 아닌 연극의 내용(논리구조)에 관한 부분으로, 유려한 아랍어 대사가 이어짐에 따라 이들이 어떤 '테러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사실 연극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면으로부터 작위적인 시각의 변화가 필요했다. 흔히 테러는 불온부당한 행위고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은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곤 하지만, 감독은 테러 행위에 내재된 폭력성과 공권력에 내재된 폭력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단지 테러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국가의 폭력성을 폭로하기 위해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극이 제기하는 질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연극 안에서 죽음은 끔찍하고 두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환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죽음은 개인과 국가, 선과 악, 영원과 찰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성립되고,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삶에 의해 유예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삶과 죽음의 교차는 마치 실수의 연발처럼 연극의 줄거리를 채운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수많은 무고한 죽음들은 인간이 인간에게 범하는 것들이다. 신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살육의 현장을 우리는 오늘날에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러한 행위에 함부로 기표를 덧붙이고, 그렇게 무고한 죽음이 몰고온 파동은 또 다른 파동에 가려 서서히 가라앉는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에게는 마지막 순간 십수 차례의 의약품과 독극물이 주입된다. 이어지는 의사의 사망선고, 사망 사실을 확인하는 증인들, 이를 공문으로 남기는 속기사, 엄격한 죽음의 절차. 다른 한편에는 아수라장이 된 테러의 현장, 피비린내, 짓이겨진 살코기, 형해화된 죽음의 돌출. 여기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인간의 폭력성이 지닌 중력과도 같은 성질이다.'주제 있는 글 > Théât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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