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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Crowd)주제 있는 글/Théâtre。 2024. 10. 30. 12:50
쓰레기가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흙바닥 위로 15명의 인물이 슬로모션으로 차례차례 입장한다. 청바지를 입은 사람, 하이힐을 신은 사람, 모자를 눌러쓴 사람, 가방을 메고 있는 사람, 생김새도 인상도 서로 모두 다르다. 이들의 동작은 너무 느려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다가, 마치 터널 안에서 암적응을 하는 것처럼 점점 이들의 리듬 속에 흡수되어 간다.
어떤 이는 흡연을 하고, 어떤 이는 바닥에 쓰러지고, 어떤 이는 입을 맞춘다. 이들의 느린 동작은 어느 순간 튕겨나온 것처럼 발작적인 동작을 취한다. 하나의 동작이 완결되기도 전에 다른 동작이 시작되고, 서로의 교감은 완성도 미완성도 아닌 채로 남는다. 이 무언극에서 침묵을 가끔씩 깨뜨리는 외마디 비명은 무대 위에 올라선 15명의 군상이 빚어내는 마찰음이다.
쓰러지고 일어서고, 외투를 벗었다가 입고, 서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개개인의 움직임은 마치 뇌 속 시냅스가 순간적으로 연결고리를 맺는 것처럼 활성화되었다가 비활성상태에 빠진다. 마치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찌꺼기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산물이 흙 위로 쌓여가는 동안, 기쁨, 놀라움, 슬픔, 굴욕의 표정이 군상들의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불규칙성과 간헐성, 피상성, 의외성, 여기로부터 파생하는 군중 속의 고독을 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fin]'주제 있는 글 > Théât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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