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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혁명(The long revolution)일상/book 2024. 1. 20. 10:17
우리 시대로 가까이 올수록 두 가지 점이 널리 강조되어왔다. 단순한 종류의 유물론에 대한 믿음이 증대하면서 대개는 초자연적 현실을 부정하는 경향이 수반되었고, 이에 따라 예술을 ‘현실의 반영’(모방), 혹은 좀더 세심하게 말하면 ‘현실의 조직’으로 볼 여지도 생겨났다. 반면에 프로이트와 융을 비롯한 새로운 심리학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어떤 현실이 있다는 주장을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되풀이해왔다. 인간은 통상적 방법으로는 여기 도달할 수 없는데, 여기가 새로운 과학과 예술의 입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p. 37
커뮤니케이션은 독특한 경험을 공동의 경험으로 만드는 과정이며, 무엇보다도 삶의 권리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나의 경험이기 때문에’라는 말이다.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성공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험을 묘사함으로써 관계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예술을 포함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체계는 말 그대로 우리 사회조직의 일부이다.
―p. 69
아주 일반적인 정의에서라도 우리는 문화의 세 가지 수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 시대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완전히 도달할 수 있는 특수한 시간과 장소에서 체험된 문화가 있다. 그리고 예술에서부터 가장 일상적인 사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기록된 문화가 있는데, 이를 한 시대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또한 체험된 문화와 시대적 문화를 연결해주는 요소로서 선택적 전통의 문화가 있다.
―p.82
자본주의의 성장과 그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변화는 ‘개인’을 그의 ‘자유로운 사업’을 통한 경제활동의 원천으로 보도록 했다. 이제 고정된 질서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활동을 시작하고 특정한 방향을 택하는가가 문제이다. 어떤 경우 이러한 변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지리적 이동성 때문에 개인—‘나는 무엇인가’—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내 노력으로 무엇이 되었는가’하는 정도까지 확장되어 재정의된다.
—p. 113
다른 사상 체계에서는 공동체가 당연히 공리이고 개인은 거기서 파생되어 나온 존재이다. 이에 비해 여기서는 개인이 공리이고 사회는 거기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이후로 자유주의의 전통 전체는 개인과 개인의 권리에서 출발하여, 사회를 이러한 추상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협정으로 판단하고, 그래서 대개는 필요한 최소한의 정부만을 요구한다. 분명한 것은 수많은 인간적인 선은 자의적이고 억압적인 체계에서 인간을 실질적으로 해방시킨 자유주의적 주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p. 115
개인적, 사회적 행동의 분석가로서 프로이트의 영향은 매우 크며, 우리가 검토했던 전통의 한 부분을 강화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개인과 사회의 기본적 구분, 곧 개인에게 작용하는 사회적 동인으로만 비치는 ‘공동체’나 ‘계급’이라는 매개적 형식과 개인 사이의 근본적 구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발가벗은 인간 존재’로서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인 근원적 충동도 지니고 있다. 사회의 이런 부분은 억제되어야 한다. 다른 부분은 정련하여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하고 가치 있는 통로로 방향을 바꾸어야만 한다. 사회는 억제와 전환의 기제이며 문명은 억제된 자연적 충동의 ‘승화’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그러므로 발가벗은 인간 존재로서의 인간은 근원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어서, 개인과 사회간의 서로 갈등하는 요구 사이에서 비교적 잘 적응된 균형을 유지하기를 바랄 뿐이다.
—p. 117
경제적 개인주의의 발흥……은 사회를 확립된 질서로 생각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시장으로 생각한다. 바로 그렇게 자유로운 시장은 엄격하게 규정된 모든 기존 질서와의 결별을 포함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시장의 개념은 그에 동반되는 민주주의 정신과 계속 겹쳐진다. ……이전의 목적이 기존 질서의 유지였고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처방을 제시했던 데 반해서, 새로운 목적은 우선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즉 사회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했다.
—p. 148~149
이미 삶은 경험되었고, 그것은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사고에서 물러나는 것은 나쁜 사회를 있는 그대로 놓아둘 따름이다. ……정치 경제 권력이 집중되어 있되 수요의 패턴에 기초하고 있으며, 선호도의 패턴에 기초한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고도로 효율적인 테크닉이 중앙에서 통제하는 사회 ……광범위한 대중의 준거와 좁은 영역에서 작동하는 권력 간의 결합은 실로 매우 중요한 모델이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몰개성적이라는 것이다.
—p. 154~155
우리가 물려받은 지배적인 사회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유사하다. 즉 사회를 정치(결정의 체계)와 경제(유지의 체계)라는 두 영역의 이해관계, 두 종류의 사고, 두 가지 해석의 사회관계로 환원시킨다. ‘그럼 어떤 다른 것이 있지?’라고 우리는 때때로 질문한다. 정치와 경제를 말하면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나머지는 개인적이고 우연한 것이다. ……결정의 체계(정치)와 유지의 체계(경제)를 연관짓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중요한 두 관계가 여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것은 첫째, 학습과 커뮤니케이션의 체계로서, 인간에게는 결정과 유지의 체계만큼이나 중요하다. 둘째는 삶의 생성과 육성이 기초한 관계들의 복합체로서, 여러 면에서 매우 다양하고 특수한 체계로 표현된다.
—p. 156~157, 159
우리는 점점 더 새로운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데,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확대라는 단순한 사실과 그에 따른 확장된 문화 경험에 의한 것이다. 일상의 언어가 보편적 학습의 새로운 채널이 되고, 이니쇄술과 무선 통신, 영화, 텔레비전이 등장한다. 철도, 고속도로, 항공 여행이 확대된다. 문자 해독률과 보편적 교육시스템이 성장한다. 이 모든 것이 사회 변화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들이 창조적 성장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낡은 체제를 조직화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아직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산업혁명과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둘 다 민주주의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온전히 파악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란 단순히 정치적 변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개방적 사회와, 실무 능력과 커뮤니케이션에서 변화의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자유롭게 협조하는 개인들을 내세우는 것이다.
—p. 167
토론의 기초로서 나는 교육을 받는 모든 정삭적 아동의 최소한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d) 회의와 협상, 민주적 조직에서 리더를 선출하고 운영하는 일을 포함한 민주적 과정에 대한 폭넓은 실습, 도서관,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 및 다른 정보, 의견, 영향력의 원천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폭넓은 실습
—p. 203
20세기의 대중언론은 1840년대에 시작되어 1890년대의 새로운 광고제도 이후로 빠르게 발달한, 하나의 특수한 신조를 표방하고 있다. 그 신조란 ‘대중’ 혹은 ‘대중들’이라는 신조로서, 이때의 대중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의 사회적, 산업적 조직에 상응하는 특수한 비개성적 집단들을 말한다. 20세기 대중 언론의 본질적 새로움은 이 공식을 발견하고 성공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며, 그 신조의 세부 장치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이에 관해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대중’ 공식과 우리 사회의 실제적 본성, 우리 문화의 확장, 그리고 사회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관련된 것이다.
—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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