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는 아마 지금쯤 많은 눈이 내렸을 것이다. 삽교천과 안성천이 커다란 하구를 만들며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이 일대는 예로부터 넓게 일컬어 내포(內浦)라고 불렸다. 지금의 예산, 아산, 서산, 홍성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그러므로 오늘날 홍성 지역에 만들어진 내포 신도시라 함은 상당히 좁은 의미를 띤다 하겠다. 여하간 두 물줄기가 만나는 아산만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구분짓는 지리적 경계인 동시에 문화적 경계이기도 하기에, 당진 부둣가를 활발히 메운 공업단지를 뺀다면 이미 서해대교를 지나는 순간부터 상당히 전원적인 풍경이 차창을 가득 채운다.
그 풍경에 하나의 이채로운 색깔을 덧입히는 것이, 이 지역에 스며든 카톨릭교회의 정취다. 당진은 한국사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서 내포라 말한 이 지역에는 유달리 성지(聖地)라 이름붙은 곳이 많은데, 약 200년 전 우리나라에 가톨릭교회가 처음으로 전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많은 성지의 수효(數爻)에 내심 놀라게 된다.
김대건 신부가 출생한 장소로 알려진 솔뫼성지를 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날 내가 향한 곳은 신리성지다. 서해대교를 건너 당진국밥이라는 곳에서 소머리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차를 몰아 당진 IC에서 상흑마을로 접어든다. 신리성지는 인터넷에 '당진 가볼 만한 곳'으로 검색하면 뜨는 곳 중 하나로, 사진 속 풍경과 실제 풍경은 늘 괴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선은 사진 속 평화로운 풍경에 매료되어버렸다. 공주를 찾았던 날처럼 소복히 눈이 쌓이고 하늘이 쾌청한 날씨였다면 풍광이 더 예뻤을 거라 상상해보지만, 이날은 진눈깨비가 되다 만 겨울비가 외투를 무겁게 만들 만큼만 가볍게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신리성지는 뜻밖의 장소에서 불쑥 나타나는데, 일대에는 검정 방수포가 씌워진 비닐하우스며 수확이 끝난 뒤 아직 갈아엎지 않은 논밭이 헐벗은 채로 펼쳐져 있다. 그 한가운데 벽돌로 된 신식 예배당과 노출 콘크리트로 된 아담한 첨탑이 교교하게 작은 터를 이루고 있다. 얕은 못에는 빼곡히 들어찬 갈풀이 바스락바스락 서로 부벼대고, 조용한 산책로를 따라 한국 가톨릭교회사에서 뜻깊은 인물과 사건을 기념하는 현대적인 조형물들이 눈에 띄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그 눈에 띄지 않음이 더 마음에 든다. 하늘에는 기러기인지 알 수 없는 날짐승들이 끼룩끼룩 꼭짓점을 그리며 냉혹한 겨울하늘을 가로지른다. 그들의 끼룩댐은 비명과도 같아서 나의 인간 된 한계를 일깨우고 꾸짖는 것만 같다.
성당 안의 미술관을 둘러보는 건 추위를 녹이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다. 이상종 화백이 봉헌한 거대한 캔버스 역사화는 시간적 구성에 따라 배열되어 있고 그림체도 따듯해서,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린이 만화책을 휙 읽은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쉽게 놓치고 가기 쉬운 곳이 첨탑의 꼭대기층에 마련된 수염고래 조형물이다. 은은한 라일락 빛깔을 띄는 은제 소재로 코바늘을 뜨듯이 한땀한땀 그물코를 걸어놓은 수염고래가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바라보면 보는 각도에 따라 발산하는 빛과 형상이 달라져, 그 몽롱한 색조 덕에 시끄러운 세상과는 다른 장소 안으로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필름카메라로 담기 어려운 조도임을 알면서도 좁은 공간 안에서 이리저리 화각을 만들어본다.
신리성지를 나오는 길에는 올 때와 달리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관람객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나타나는 것은 내 귀에 찢을듯이 일갈하는 겨울새들의 울부짖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