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안도 타다오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권투 선수로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다. 고졸 출신의 권투 선수가 독학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는 서사는 20대의 나에게 큰 감명이었고, 한동안 그의 건축물이 소개된 비싼 잡지(el croquis)를 구하려고 중고본을 기웃거리던 것이 기억난다.
하루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책하기 좋은 장소가 있다며, 엄마를 포함해 세 개의 티켓을 예매했다는 동생의 연락이 있었다. 바깥 활동이 께름칙한 여름의 초입이었지만, 운전도 전적으로 동생에게 맡겨 놓은 채 실려가다시피 나들이에 동행했다.
도착한 목적지에 지어진 건물들이 안도 타다오의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도 타다오 스타일의 건물들은 볕을 받을 때 더욱 담백한 느낌이 든다. 콘크리트에 내리꽂히는 여름의 뙤약볕은 담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는 과한 면이 있었지만, 흐린 것보다야 쨍쨍한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나의 욕심으로 원래는 동생이 기본 입장권을 예매해 놓았던 것을, 내가 추가비용을 지불해 가면서 특별전시관까지 둘러보았다. 착시 효과를 이용한 공간 전시 몇 편은 우리에게 과분했지만, 예술이란 한 가지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인지라 육감(六感)을 활용해보겠다고 애를 써본다. 이날도 나는 엄마의 충직한 사진기사였고, 어느덧 철이 든 동생과 보낸 시간은 스냅사진처럼 하나의 선명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걷기’에 대한 나의 애착이 퍽 시들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도보 여행하기, 미술관 둘러보기, 서점까지 산책하기, 공원 거닐기. 앞뒤 돌아보지 않고 좋아하던 것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것은 계절의 영향 때문인가, 아니면 취향의 변화 때문인가. 반면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거나 집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점점 편하게 느껴진다. 나의 생활 패턴이 바뀌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