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은 근 10년 내에 가장 봄다운 봄이 아닌가 싶다. 날씨의 변덕스러움도 어디까지나 봄이라는 계절 고유의 특성이니만큼 불만스럽지 않다. 올봄이 유달리 봄답다고 느끼는 건, 5월까지도 제법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년 같았으면 5월은 시작과 동시에 더위가 찾아왔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봄이 실종됐다는 상투적인 푸념을 하곤 했다. 봄철이면 골머리를 앓던 미세먼지가 거의 없었던 것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온화한 올봄 날씨를 특히 체감하게 되는 건, 강아지 산책에 있어서다. 긴털에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우리집 강아지는 약간의 더위에도 쉽게 지친다. 추위보다 더위를 싫어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여름철을 전후로 녀석을 운동시키기 어렵다는 점은 난감한 부분이다. 매일 산책을 하고 싶어하는 녀석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바깥 날씨를 알 리가 없다. 비가 오는 날에도 푹푹 찌는 날에도 산책을 가자고 낑낑대는 녀석은, 덥고 습한 날 막상 밖을 나서면 아연실색한 듯 혀를 길게 늘어뜨린다. 그런 녀석과 늦봄이 되도록 무탈히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다행스런 일이다.
# 요새 들어 자주 찾는 필름 현상소. 퇴근 후 시간을 쪼개서 가기도 여러 번이다. 현상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가게에 비치된 색색의 필름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번에 발견한 필름은 보관기간이 도래해 염가에 나온 후지 엑스트라 400. 가격은 1만 2천 원. 디지털 카메라라면 애당초 발생할 일 없는 지출인지라 누군가에게는 사치재로 보일 테지만, 감도 400에 이 가격을 그냥 지나칠 수 야 없다. 기름값 올랐다 관세를 매겼다 뭐다 해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필름 가격이 싸게 팔려서 혹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써본 적이 없는 필름인지라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망설임 끝에 맨 처음 필름통 두 개를 집어들었다가, 계산 직전에 필름통 하나를 더 얹는다.
하루는 특별한 사정으로 보라매 공원에 갈 일이 있었다. 작년 뚝섬 일대에서 열렸던 국제정원박람회가 올해는 서울의 정반대편인 대방동 일대에서 열렸다. 절대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을진대, 싼 값에 샀다고 지난 주말 필름카메라로 야경 찍기에 도전해보겠다며 흥청망청 필름 한 롤을 거의 다 썼다. 그리고 남은 필름 대여섯 칸을 마저 쓰기 위해 보라매공원에 필름카메라를 들고 나온 것. 현상한 결과, 필름카메라로 찍은 야경은 많은 수가 버릴 것들이었고, 낮에 보라매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은 기존에 쓰던 필름과 비교해봐도 색감이 훌륭했다. 그리하여 초여름 날씨를 향해 달려가던 이날의 초록(草綠) 아래에서 담은 사진들 몇 장을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