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를 봐도, 제목을 봐도, 시놉시스를 봐도 어떤 내용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 이 영화를 보겠다고 퇴근 후 시간에 맞춰 사당역을 찾은 게 이번 주의 일이다. 사당역을 빠져나오는 좁은 통로에는 퇴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가득했고, 지상에는 광역버스를 타기 위한 두 줄짜리 대기행렬이 갈길을 뚫기 어려울 만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영화를 보겠다고 퇴근 후 이만큼 애쓰는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상영관이 몇 군데 남지 않아 더 미룰 순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증을 일으킨 건 미세리코르디아(miséricorde)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그 의미를 영화를 보고난 뒤에야 찾아보았는데, 검색엔진의 ai 요약 기능도 믿을 수 없어 르로베르(Le Robert)에서 사전적 정의와 옛 용례를 찾아보았다. 그 내용은 이하와 같다.
Grace, pardon qu'un superieur, un Juge accorde à un criminel. La misericorde de Dieu est infinie. David a dit, qu'il chantera éternellement ses misericordes, pour dire, ses graces, ses faveurs, Ps. 88 : 1. Un Juge doit estre sans misericorde pour punir les scelerats. On dit chez les Cath : Rom : en priant pour un deffunt, Dieu luy fasse misericorde. Quelques Prelats disent dans leurs qualitez, Evesque par la misericorde de Dieu, pour dire, par sa grace.
MISERICORDE, signifie aussi, compassion, charité qu'on a envers le prochain pour soulager ses miseres. L'Eglise divise les oeuvres de misericorde en sept spirituelles, & sept corporelles ; donner à manger à ceux qui ont faim, &c. enseigner les ignorans, &c. il y a plusieurs Hospitaux bastis sous le titre de la misericorde.
MISERICORDE, signifie aussi, secours & vengeance que demande le foible opprimé par un plus fort. Un crime enorme crie misericorde, demande vengeance à Dieu. Ce pauvre homme crioit à l'ayde, misericorde, imploroit du secours. Fauchet fait mention de petits poignards que portoient les Chevaliers, qu'ils appelloient misericorde, parce qu'ils en tuoient ceux qui ne vouloient pas crier misericorde. Dans un inventaire des armes du Roy de l'an 1316. qui est à la Chambre des Comptes, il est fait mention de huit espées de Thoulouse, & de deux misericordes.
On dit proverbialement, à tout peché misericorde, pour dire, qu'il faut pardonner à ses ennemis, quelque offense qu'ils ayent pû faire.
The Hollywood Reporter
여전히 알쏭달쏭한데, 아주 기본적으로 연민, 동정, 자비, 용서의 개념을 동반하는 건 알겠다. 이 낱말의 의미가 아리송해지기 시작하는 건 부차적인 의미와 어원을 살펴보면서부터인데, 이 단어에는 자비를 베푸는 복수 또는 처치라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 실제로 미세리코르디아(miséricorde)의 시각화된 검색자료들을 보면 좁고 날렵한 단검이 주로 발견되는데, 중세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기사가 고통 없이 숨을 거둘 수 있도록 갑옷 틈으로 꽂을 수 있는 칼을 지칭했다고 한다.
연장선상에서 좀 더 넓게 '미세리코르디아'의 의미를 다듬어보자면 '자비로운 마음에서 취하는 행위' 정도가 될 텐데, 필리프 신부가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제레미에게 나타나 용서의 말을 건네는 것과 제레미가 괴팍한 성정을 지닌 벵상의 숨통을 끊은 것을 동일한 연속선상에서 볼 수 있는 일일지 고민스러워졌다. 나는 그 세세한 의미를 곱씹고 싶어서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필리프 신부가 제레미에게 고해(告解)하는 장면―에서 오고간 대사를 다시 읽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여기서 상상을 좀 더 보태어, 고대에 '내장(內臟), 애(gut)'라는 의미를 지녔던 'corde'라는 글자를 ‘미세리코르디아’에서 걷어내본다. 그러면 단순히 'misère'만이 남는데 고대에 연민, 동정을 뜻하던 이 단어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 말하듯 근대를 거치는 동안 비참한 상태, 가엾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처럼 한 낱말 안에 시간에 따라 여러 뜻이 엉겨붙어 있는데, 애당초 말이라는 게 그 뜻을 하나하나 구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복수와 용서, 긍휼(矜恤)과 비루(鄙陋)가 대비되는 우리말의 틀 안에서 '미세리코르디아'라는 말이 뜻하는 바를 짚어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뱃속으로 자비심을 느낀다는 건 무엇일까. 연민과 동정심이 머리로 느끼는 게 아니라 오장육부로 느끼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물며 때로 그것이 어떠한 행위로 발현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 행위가 심지어 살생이나 응징일 수 있다는 건 무엇일까. 성(性)에 관한 요소요소들이 가미되어 이야기는 코믹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미세리코르디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 지루하거나 힘들진 않다. 어딘가 나사 풀린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위적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유쾌하고 편안하다. 그렇지만 희희낙락하며 괴짜들이 던지는 심대한 질문, '미세리코르디아'는 무엇일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