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넘버 3 / 드라마 / 크리스티안 페촐트 / 라우라(파울라 베어), 베티(바르바라 아우어) / 86
"Ich studiere in Berlin. Ich hatte vor ein paar Tagen einen Autounfall. Mein Freund ist dabei gestorben. Ich bin unverletzt, und die Betty hat mich gefunden und mir erlaubt, hier zu bleiben. Betty meinte, dass Ihr Königsberger Klopse mögt. Ich hoffe, es schmeckt."
사실 이 영화는 <그저 사고였을 뿐>을 본 다음 영화관에서 연달아서 본 영화로 본지는 꽤 되었다. 감상이 부족하다보니 부산국제영화제의 소개글을 포함해 부득이 여러 글들을 찾아보았다. 상실을 경험한 두 여인이 서로 위로가 되어준다는 서사를 파악하기에는 어렵지 않지만, 영화에서 내가 놓친 것은 ‘상실이 상실을 경험한 이의 삶을 재구축해가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우리 대부분은 상실을 어떤 관계의 종료로 생각하지만, 삶의 재생 또는 관계의 재설정이 시작되는 출발점으로도 볼 수 있다는 관점. 그렇게 본다면 베티와 라우라의 만남과 관계발전은 단지 상실 후에 따라오는 것들이 아니라, 상실이 있었기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베티-라우라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아니라, 라우라가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열린 결말로 맺게 되면서 이 두 사람이 재생과 치유를 위해 이어온 가냘픈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번 더 숙고하게 된다.
‘바다 위의 작은 배(Une barque sur l'océan)‘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모음곡 <거울>의 3번째 곡. 영화 속에서 라우라가 연주한 이 곡을 찾아 다시 들어보는데, 이 작은 배는 찰랑이는 물결에 부딪쳐 무게중심이 끊임없이 바뀌지만 그 흔들림이 사뿐한 율동같아서 마냥 평화롭기만 하다.
상실이라는 것은 작은 배에 다가와 찰싹 부딪치는 단 한 번의 물결과도 같아서, 바다 위에서 보면 그 조각같은 물결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거대한 물살 속 점(點)으로 간신히 보일 뿐이다. 그렇게 일렁이는 점점의 물결 위에서 작은 배는 일렁일지언정 가라앉지 않고, 물살이라는 선(線)이 바래다준 물녘에서 끝내 새로운 면(面), 새로운 입체(立體), 새로운 의미(意味)를 얻게 될 것이다. 베티와 라우라는 다시 각자의 평온한 리듬으로 되돌아가더라도, 그들의 리듬으로 복귀하기까지 그들을 일으켜 세워준 조심스런 관계의 작용은 어디까지나 점점의 상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das 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