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이 우리가 이 사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진을 보고 감동하는moved by 즉시 이 사진을 잊어버린다move on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진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동원된 모든 요소는, 이 사진을 얼마나 무심하게 또는 신중하게 보는지와는 관계없이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느껴지는 단 한 단계의 의미로 수렴된다. 우리의 관심이나 참여 따위는 필요 없다. —p.63
모든 사람이 자기가 보여 줬으면 하는 모습이 있지만 그와는 다르게 보이게 되고, 사람들이 보는 것은 바로 그 모습이다. 거리에서 누군가를 보면 우리는 기 본적으로 그 사람의 결점부터 잡아낸다. 우리가 이런 특이한 점을 갖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겉모습은 세상에 게 우리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라는 신호를 주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알기를 바라는 것과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것 사이에 있다. —p.84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피부를 뚫고 나와 다른 사람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게 이 모든 것이 조금이나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은 당신의 불행과 같지 않다." 그렇지만 동시에 "모든 차이점은 닮은 점이기도 하다." …"우리보다 훨씬 더 먼 곳에 있는 비유처럼 보이는 그들은 끌려온 것이 아니라 불려 온, 믿음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며 각각이 우리의 용기와 지혜를 시험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진정한 꿈속의 작가이자 영웅"이라고 묘사했다. 그녀는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하고 필연적이며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될 수 있는 누군가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궁금해진다“고 했다. —p.87~88
Wall Street by Paul Strand
당신이 거리에 있을 때 그리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 한 여자가 길모퉁이를 돌아 떨어져 간다. 짧은 순간 당신은 그녀의 옆모습, 어깨의 몸짓, 몸매를 얼핏 본다. 그리고 당신은 완전히 빠져든다. …당신은 순간 사랑에 빠진다. 아니면 당신의 감각이 순간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람은 사라지고 영원히 당신에게서 자취를 감춘다. 당신이 그 순간, 손에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잠깐 본 그 순간 느낀 것이 당신 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말한다. 느낌이다. 거기에 있는 그것이 나의 육체적 등가물이다. 잠시 동안 그녀는 항상 열려 있는 공간, 순간 감각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채운다. —p.167
뒷모습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더 알아보려고 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확인해 주면서 부가적인 요구를 차단해 버린다. 얼굴은 미소 짓고 적응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형용사에 순응한다. 반면 등은 해당되는 형용사(긴, 넓은)가 엄격하게 축소된 명사다. 얼굴은 다른 사람과, 세상과 관계 맺는 사람을 드러낸다. 어떤 사진은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 -과의 관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등은 그냥 있는 그대로다. —p.168
우연은 우연이 아닌 게 될 때까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나? 우연은 순간적이어야만 하는가? 얼마 동안이 순간이고, 지속되는 순간인가? —p.191
사람들은 사진에 찍히고, 죽는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와 다시 다른 사람의 사진에 찍힌다. 일종의 환생이다. —p.199
Migrant Mother by Dorthea Lange
계단의 가장 낮은 형태인 갓돌은 결국 가장 기본적인 단계의 의자다. 모든 의자는 흔들의자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흔들의자는 공화국의 왕좌이자, 여유의 상징(성취한 것이든 물려받은 것이든)이며, 존 버거가 다른 맥락에서 이름 붙인 "앉은 채 머물러 있는 권력"의 상징이다. —p.201
의자는 환경에 맞춰 적응할 수 있다. 벤치는 폭풍우를 견뎌내고, 살면서 닥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인다. 세상을 보는 벤치의 관점은 고정되어 있고 단호하게 변화를 거부하지만, 거기에 저항할 힘도 없다. 가끔 벤치가 구경꾼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처음 보는 일조차도-이미 목격했다. —p.216
벤치에는 본질적으로 슬픈 면이 있다. 버스 정류장의 벤치는 버스에 앉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억지로 앉아 떠나기를 기다리며 느낀 좌절과 초조함이 남긴 여파 그리고 체념을 받아들여 왔다. 벤치의 본질적인 특징-그 절대적인 부동성-은 버스나 기차역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좀처럼 앉아서 쉬려고 하지 않는다. 차라리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잘그락거리며, 절대 변하지 않지만 믿을 수도 없는, 어쩐지 수상한 시간표를 계속해서 바라보며 앉아 있다. 벤치에 앉는 것은,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실상 상황의 참을 수 없는 ‘벤치성’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p.219
백 년도 넘는 시간 전, 이 순간이 현재이던 때가 있었다! 망토를 두른 그 남자도 '현재'가 '과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남자는 길을 건너와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을 지나치면서 분명히 어떤 사진이 찍혔는지 보려고 뒤를 돌 아, 그 순간을 사진으로 만들어 준 바로 그것-그 남자 자신-이 더 이상 없음을 보았을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는 왔다가 사라졌고, 그의 발자국만 남았다.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또는 사진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뒤를 돌아보는 시점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여전히 거기 있는 대기 중인 말과 건물들만큼 끈기있게, 일시적이면서도 영원해지는 것이다. —p.247
당신의 정신을 흐려 놓을 다른 것이 없다면, 벤치가 공원의 일부인 것처럼 이런 것들이 인간 조건의 일부라는 것이 삶의 진실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신이 좋아하는 벤치를 찾아 공원에 갔는데 벤치가 부서져 있다면, 그 경험은 개인적인 실망인 동시에 당신이 이미 거의 체념한 무언가의 확증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부서진 벤치를 바라보며 거기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이를 얼마나 개인적으로 받아들일지, 그리고 운명과 우연 사이에 다른 점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p.250
스티글리츠는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맞설 수 없다면 이 안에 있는 것은 존재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 밖에' 있는 것이 이 안에' 있는 것에 도전했다가 제압에 실패한다면, 전자가 후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경쟁은 미적이고 상징적이며 추상에 가깝고, 그 결과로 건축과 사진은 자체 보완하는 동맹을 맺는다. 바깥 세상의 확고부동한 힘은 이를 바라보는 스티글리츠의 인내심을 반영한다. —p.257
그의 사진에는 빼앗겨 버린 자기 부정적 서정성, 즉 은 전혀 드러날 기회를 제대로 가져 본 적 없는 거친 갈망도 느껴진다. 누군가가 지나간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운명을 의식하도록 만들고, 그들의 체념이-비록 결코 실행에 옮기지는 못할지라도-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흔들리고 불안해지도록 한다. 결국 움직인다는 것은 절망이라는 오명, 즉 버려진 사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저주받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남긴다. —p.269~270
우연적 구도의 대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게는 현실의 혼란을 정리하는 것만도 충분히 복잡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것에 더해 색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아라.“ 1969년 워커 에번스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색은 사진을 망쳐 놓는 경향이 있으며 완전한 색은 사진을 완전히 망쳐 놓는다.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은밀하게 전달해야 하는 말이 있다. 컬러 사진은 저속하다." —p.299
The Steerage by Alfred Stieglitz
그 물건들은 낯설어 보이는 동시에 단서로 가득해 보였다. 나는 방 한가운데 서서 엄지와 검지로 만든 구멍 사이로 그의 책상 위에 있는 작은 물건 더미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걸 볼 수 있다는 게 낯설었다. 다른 누군가의 물건일 수도 있다. 이 물건 더미를 30년 동 안 바라보고도 한 번도 보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자신의 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이것을 보자 탐구가 가능해졌다. —p.311
…그 사진을 찍을 때 사진가는 알 길이 없었다. 그게 의미가 있을지, 사진이 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기회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다시 말해, 그 장면이 사진으로서 어떻게 보일지는 알 수가 없다. 내 말은, 그가 보는 것을 사진으로 만들리라는 것은 완전히 알면서도 여전히 사진으로서 어떻게 보일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사진으로 무언가를 찍는다는 사실이 ...바꾼다. —p.317
도로road와 거리steet는 무엇이 다를까? 크기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도시의 거리는 시골의 도로보다도 크다.) 도로는 마을 바깥으로 향하지만 거리는 그 안에 머문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거리가 아니라 도로를 보게 된다. 만약 거리가 도로로 이어지면 마을 밖으로 나가게 된다. 도로가 거리가 되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도로를 오랫동안 따라가면 결국 거리가 되지만 반대로 거리가 반드시 도로가 되지는 않는다. (거리는 거리에서 끝날 수도 있다.) 거리는 그 옆에 집이 있어야 거리라 할 수 있다. 좋은 거리는 당신을 머물게 하지만, 도로는 끝없이 떠나게 한다. —p.324~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