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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의 역사일상/book 2025. 11. 10. 05:12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메리 보이스/공원국 옮김/민음사 르타는 (해가 뜨고 지며 계절이 바뀌는) 자연계를 지배하고 인간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질서와 공정함의 원칙으로 이해되었는데, 그래서 인간은 생전과 사후에 행복하기 위해, 또 자신의 삶을 점잖게 조절하기 위해 반드시 르타의 작동에 따라야 한다.
・・・초원 시기 인도・이란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이 크게 세 집단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이다." 조로아스터의 찬가에 따르면 이들은 다음의 이름으로 불렸다. 나르(nar)는 문자 그대로 "남자(man), 다시 말해 싸우는 남자, 즉 전사이다. 자오타르(zaotar)는 "사제(성직자)'로서 "제물을 드리는 이" 혹은 "기원하는 이"이다. 바스타르(vastar)는 "목부”로서 목초지(vastra-)에서 가축을 돌보는 이이다.
—p.31~32
수백 년 동안 조로아스터교도와 브라만들의 모든 기도문과 찬가의 어휘는 고착된 채 변하지 않았으며 기억을 통해 정확하게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성스러운 문학의 전통을 보존해 온 암송 방식과 함께 확립된 전통의 틀 안에서일지언정 이를 재구성할 자유가 명백히 있었다. 세 가지 정형화 된 발화 범주가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만트라(mantra), 즉 아베스타어로는 만트라(mathra)이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생각한다" 라는 어기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표현된(정형화된) 생각, 즉 "생각의 수단"인 발화 방식으로 정의되었다.
・・・두 번째 영역은 찬가(hymn)로, 음유 시인이 조물주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부르는 찬가에 비견된다.
・・・셋째, 이란에서는 자오타르, 즉 조로아스터가 지은 가타에서만 표현되고 인도에서는 호타르(hotar)가 지은 "지혜'의 시로 제시되는 시가이다. 이 시가는 11음절이 특징인 운문이다.
—p.34~35
인도・이란의 신앙을 복원하기 위한 재료들은 "대체로 아베스타 안에는 파편적이고 빈약하며, 베다 안에는 풍부하지만 혼란스럽다." 풍부함은 오랫 동안 강력한 강점으로 인식되어, 베다의 증언이 더 우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심화 연구를 통해 어떤 면에서는 빈약한 아베스타의 자료들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베다의 증거는 풍부함 때문에 귀중하고, 아베스타의 증거는 신빙성 때문에 귀중하다."
—p.46
인도인과 이란인들은 신적 존재들에 대해 다양한 집단 지칭어(collective term)를 사용했다. 하나는 베다의 데바(dera), 즉 아베스타의 다에바(daeva)인데, 라틴어 데우스(deus)와 어근이 같은 단어로, "빛나다, 찬란하다"라는 뜻이다. "빛나는 이들(Shining One)"은 "불사의 존재(immortals)"(베다의 아므르타(amrta)와 아베스타의 아메샤(amasa)로도 불렸다. 그리고 이란인들은 일반적으로 바가(baga), 즉 "나눠 주는 이" 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좋은 물건을 남에게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역사의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표현은 베다의 아수라(sura)와 아베스타의 아후라(ahura)로, "주(lord, 호)'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신은 물론 인간에게도 쓰였다." 베다에서 이 명칭은 대개 모든 신격에게 자유로이 주어지며, 이를 가장 많이 받은 이는 사실상 디아우스 피타르(Dyaus Picat), 즉 "하늘 아버지(Father Sky)" 로서 유피테르의 인도식 동격인데, 원래는 데바들 중 가장 강력한 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개 더 보수적인 이란 전승에서는 세 신에게만 아후라의 칭호가 붙었다. 그들은 대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며, 개념과 기능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타난다. 또한 이들 셋이 인도, 이란의 만신전에서 원래의 주들(Lords)이었고, 그저 이들 특유의 칭호가 기타 신을 칭하는 경구로 서서히 발전했을 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p.52
"추상적이라 불리는 신들의 기원이 무엇이든 이 중 다수는 대중들의 순수한 실제 신앙을 획득하기에 이르렀고, 대중들의 가슴속에서는 모든 면에서, 자연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신으로서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 발현을 감지할 수 있는 모든 힘들을 살아 있는 실재로 인식하는 것"이 실제로 인도·이란의 일반적 관습이라 말해진다. 이리하여 정의, 용기, 진실 등 지금은 하나의 추상으로 간주되는 것들이 고대에는 힘으로 여겨졌다. 이 힘이 신성시되고 개성과 육체적 특성을 획득하고, 이어 신화를 부여받는 과정은 역사 이전 시대에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최초 개념의 모래알에 신념과 관습이 한 층씩 덧씌워지는 것으로서, 진주 만들기와 유사했음이 틀림없다.
—p.53
인도와 이란에서 르타나 아샤를 가지는 것, 즉 르타반(rtavan) 혹은 아샤반(asavan)이 된다는 것은 공정하고 올바른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망자를 대상으로 쓰일 때 이 단어 들은 떠난 이가 내세에서 축복을 받고 합당한 천국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였다.
・・・불은 생명을 지속시키는 화로의 불꽃으로서든 시간과 계절을 주관하는 하늘의 태양으로서든 르타/아샤, 즉 사물의 정해진 질서를 표상했다. 더욱이 미트로.드루쥐의 거짓을 궁극적으로 확정하고 그에게 끔찍한 죽음을 내리는 사법적인 시죄 또한 불을 통해 이뤄졌다. 이리하여 불은 미트라의 대리인으로 간주될 수 있었고, 신과 불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는데, 하도 긴밀하여 이란과 인도에서 미트라는 점차 태양신으로 묘사되기에 이르렀다.
—p.57~58
왕은 권위 있는 지위을 가졌음에도 스스로의 약속과 의무의 구속을 받았고, 이 상황을 우주로 이전하면서 영원한 법(르타)이 거의 최우선의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위대한 도덕적 아수라들의 속성은 "불가피하게 해당 사회의 구조와 법이 더 이상 전적으로 원시적인 상태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그들에게 부여된 믿음은 물론 더 오래전의 사회 체계에 더 깊이 뿌리박고 있겠지만, 그 발전 과정에는 인도・이란 국가의 더 심화된 발전의 족적이 남아 있다." 이런 발전은 다음의 구절에 더 한층 명백하게 규정된다. "자연의 힘들에 대한 오랜, 가망 없는 의존의 감정을 대신하여 점점 더 인간적・사회적 정치적인 삶의 조건들이 더 높은 힘에 대한 의존 개념의 원형을 제공했다. 즉 왕, 강력한 전사, 지혜로운 사제, 부유한 이에 대한 의존 등이다・・・"
—p.86
심지어 베다에서도 인드라와 바루나는 우주의 왕으로서 함께 통치하지만 그들 사이의 대조점은 인지되며 둘의 성격은 전적으로 다르다. 둘 다 제왕이지만 바루나가 신들과 인간이 함께 지키기를 요구하는 법에 의해 통치한다면, 인드라는 권력의 기반을 그의 압도적인 힘에 둔다. 그는 싸움꾼이며, 벼락을 던지는 이이며, 취하게 하는 소마(soma)에 의해 고양되는, 수많은 신화의 영웅으로서, 폭력적이고 거칠고 호사스러우며 감각을 즐긴다. 그는 인도・이란 전사의 전형을 제현한 이로 여겨지는데, 싸움과 음주에서 강력하며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추종자들에게 후하게 나눠 준다. 인드라는 자신의 숭배자들에게 가장 후하다고 여겨질 때에도 대가로 충분한 제물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의 은총을 보장 받는 길은 도덕적 행동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p.87
인도 이란의 신들은 결코 홀로 호명되지 않으며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불렸다는 사실이다. 하위격 신들을 호출할 때 상위격 신을 함께 불러 상위격 신의 일부 특성을 표상하거나 그의 자질 안에 있는 어떤 특성이나 사물을 인격화한 하위격 신들을 지원하는 것을 고무한 것 또한 신들을 연결 지어 부르는 습관이었음이 분명하다.
—p.93
고대 이란인들은 위쪽 하늘의 신 아스만(asman)과 아래쪽 대지의 여신 잠(zam)을 경배했다. 아버지 하늘과 어머니 대지의 연결 관계는 확실히 오래되었다. … 하늘 자체를 뜻하는 이란어 아스만(asman)은 간단히 돌을 의미했는데, 하늘의 아치는 딱딱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그 자체가 지구를 둘러싸는 껍질을 이루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도・이란인들은 발아래 단단한 땅과 위에 있는 단단한 하늘로 여겼던 것 사이의 분명히 빈 공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이 빈 공간에서 때때로 감지할 수 있는 바람이 움직였다. 우리는 이미 바람을 의미하 는 아베스타어 바유(wayu)와 바타(vata)를 만났다. 이 둘은 모두 "불다" 라는 뜻의 어근 바(va)를 가지며 이음동의어로 쓰인 듯하다.
—p.116~117
대개 인도・이란인들은 희망적으로 자신들의 신을 천성적으로 인간에게 친절한 존재로 여긴 듯하다. 또한 주로 천성적으로 선한 큰 신들에 비해 더 작고 사악한 존재들, 이 세계 너머 하늘에 살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악마들과 마법사와 무서운 괴물들에게 악한 성격을 부여한 듯하다. 그러나 다신교 이란인들은 "땅 아래 산다고 알려진 신"이 다스리는 지하의 왕국을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 신은 죽어서 빛나는 아수라의 거소로 가는 길을 얻지 못한 영혼들을 자신의 피지배자로 선언한다. 이 두려운 신은 다신교 시절의 이마로 보이는데, 그의 인도 측 짝인 죽음의 신 야마는 죽음에 임박한 이들을 찾아 그들을 자신의 어두운 영토로 데려간다. 인도의 야마는 외경심과 두려움을 자아내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란에서도 죽은 이들의 왕국을 다스리는 이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전령들도 두렵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신교 시절 이미 신에 대한 이원론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윤리적 이원론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여기저기 번영과 행복을 나눠 주는 천상의 신들과 어둡고 기쁨이 없는 그들의 거소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인간들이 희생을 바치는 지하 세계의 신들이 대비되는 유신론이 그것이다
—p.122~123
인도・이란인들은 죽음과 내세에 관해 하나뿐인 절대적 믿음을 가지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상이한 개념들이 공존했다. 그러나 베다와 아베스타 텍스트의 가장 원시적 부분에 나오는 증거로 보아 죽음 후에도 삶이 연속된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너무 자명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믿음과 희망과 두려움은 내세의 성격과 장소에 관한 지점에서만 서로 갈라졌다.
인도・이란인의 오래전 장례 관습은 매장이었음이 지금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매장은 인도의 제의와 텍스트의 먼 배후에 놓여 있으며, 다신교 이란인들에게서 증명되는 일반적 관습이다. 심지어 조로아스터교 단어로서 훗날 시체가 노출되는 장소를 가리키는 다크마(dakhma) 역시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처럼) "태우다"라는 뜻의 어기 다그(dag)에서 온 것이 아니라 "묻다"라는 뜻의 인도・유럽어 어기 *드흠브흐(dhmbh)에서 출발해 *다프마(*dafma)를 거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고대의 매장 의식은 똑같이 고대의 개념인 지하에 있는, 죽은 자들의 영혼의 집이라는 개념과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헤로도토스의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은 죽은 자들이 거하는 지하 왕국에 대한 이란인들의 믿음이 아케메네스 왕조 때까지 이어졌음을 보여 준다.
—p.152~153
어두운 지하에 산다고 여겨지던 우르반에 대한 애초의 믿음은 단순히 그들이 불행하고 불우하게 어두운 지하에 살면서 편의와 살아갈 음식을 친족과 후손들에게 의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유령들에게 천상 낙원의 우아한 음식이나 "소원 소(wish cows)"는 준비되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지상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옷을 입혀 주기를 기대해야 한다. 이런 목적의 제물이 물질의 장벽을 뚫고 영혼들에 닿게 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의례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관습들은 너무나 오래되고 깊이 뿌리 내리고 있어서 사자들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변화했음에도 살아남았으며, 오늘날까지 조로아스터교도나 브라만들은 여전히 천상 낙원에 있는 영혼의 복지를 위해 선물과 음식과 의복을 만든다. 이러한 변형은 이미 고대에도 존재했는데, 베다 시절 인도인들과 다신교 시절 이란인들은 축복받은 이들은 "신의 선물로 이승에서 장수를 누릴 뿐 아니라 자신들이 바친 희생과 사제들에게 준 선물의 공덕을 되돌려 받는 동시에, 자신들 차례에 조상들에게 자양분을 바쳤던 것처럼 지상에 있는 친척들의 경건함(즉 제물)을 통해 자양분을 얻는다."라고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p.164
보기에 명백히 모순되는 두 상태의 공존이 프라바쉬라는 존재의 특징이다. 하나는 그들이 놓인 비참한 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이 가진 초인간적 힘이다. 죽은 이는 산 자의 베풂에 의존하고, 그들 중에도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허겁지겁 자기 제물을 먹고 마시러 오며, 추위를 막고 부끄러움을 가려 줄 의복이 필요하다. 왜 그들에게 제물을 올리는가? 지금은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러나 사랑과 애착이 유일한 동기는 아니며, 심지어 장례 관례 배후에 있는 항구적 동기도 아니다. 가족의 불어남, 밭의 관개, 식물의 자람, 가축과 인간의 번성 등 삶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의 힘은 무한하며, 자신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산 사람들에게 그들은 파괴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죽은 이들의 힘은, 그토록 큰 존경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만 부러운 것은 아니다. 누구도 이 힘을 갖고자 기꺼이 죽으려 하지 않는다. 이는 삶의 상실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없으며, 죽음을 덜 슬프거나 덜 두렵게 할 수도 없다." 비록 이 믿음의 복잡성이 부분적으로는 프라바쉬와 우르반 숭배의 뒤섞임 때문에 일어난 듯하지만 조로아스터교 예식에서 둘의 개념은 대개 구분되며, 신학적 이론의 도움 없이도 감지되는 듯하다. 즉 인간은 우르반을 위해, 그러나 프라바쉬에게 기도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후자는 적절하게 경배하면 그의 보호자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라바쉬들은, 어떤 개별 신에게 바치는 숭배 행위든 모든 숭배 행위에 호출되는데, 이는 매우 오래된 관례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p.175~176
분다히슨에 따르면 우주는, 비록 다신교 시절 창조의 주체가 누구였고 혹은 창조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섯 번의 창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아베스타에서 하늘과 물과 땅을 만들어 내는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 동사는 비다라야-(vidaraya )인데, 이는 "만들다"라는 뜻이라기보다 "배열하다, 규제하다"라는 뜻이다. 또한 베다 문헌들에서 역시 창조를 묘사할 때 종종 ('발생하다'보다는) '건설하다'라는 수사를 사용한다. 아베스타에서 동사 트와레스(thwaras-)와 타쉬(as-)는 생명이 있는 것들을 위해 쓰이며, "자르고, 깎고, 형태를 지어 만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 동사들의 경우에도 재료들은 이미 준비된 것으로 가정하는 듯하다.
—p.178~179
확립된 교리에 따르면 최초로 창조된 것은 "하늘"이었다. 하늘은 속이 비고 완벽하게 둥근, 돌로 된 껍질로 여겨졌는데,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 껍질은 땅 위의 우주 공간의 구조를 만들 뿐 아니라 땅 아래를 지났다.
・・・두 번째 창조물은 물인데," 공처럼 생긴 "하늘"의 아랫부분을 채우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세 번째는 땅이다. "그리고 물은 이 땅 아래 어느 곳이든 남아 있다."땅의 창조는 세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헤르텔(hertel)이 인도와 이란의 전승들을 비교하면서 땅을 넓히는 이마의 신화는 진흙 물에서 땅이 점차 만들어졌다는 더 오래된 창조 신화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애초에 땅의 표면은 둥근 평면으로서, 평평한 접시처럼 "하늘" 의 정중앙을 채우는 것으로 여겨졌다.
…두 민족이 공히 사람이 사는 지역의 바로 중심에 커다란 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인도인들은 그 산을 메루(Meru) 혹은 수메루(Sumeru)라고 불렀다. 이란에서는 그 산의 이름이 다양하다.
…넷째는 식물의 창조였다. 오랜 옛날 식물-생물 의 기원에 관한 다양한 신화들이 있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다히슨에 따르면 땅의 중심(산자락, 아마도 하라의 자락)에서 녹색의 물체가 처음 자라났다. 그것은 잔가지나 껍질이나 가시가 없는 가냘픈 줄기였는데, "축축하고 젖을 분비하는" 것이었고, "본성상 모든 식물 종의 힘을 내재하고 있었다.
…다섯째로 동물들이 창조되었는데, 그 원천은 유일하게 먼저 창조된 황소 가브 아에보.다타(Gavaevo.data, 파흘라비어가 이 에브-다드 (Gavier-dad)였다. 그 황소는 "희고, 달처럼 밝으며, 키가 측정용 막대기로 세 길이다. 그는 지상에서 살아간 첫 번째 동물이었지만, 살해되었다.
—p.179~187
고대 이란인들은 자신들이 수많은 신적 힘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기에, 자신들의 삶을 의지하는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분명히 많은 시간과 사색과 부와 정력을 바쳤다. 그들의 숭배의 목적은 실로 복잡하다. 그러나 크게 말해서 제물과 칭송을 바치는 주요 이유는 두 가지이다. 개인으로서 신의 은총을 입어 이생과 내세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한 것과 공공선을 위해 신들을 강화함으로써 그들이 현재 인간들의 집인 물질세계를 더 잘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희생제 일반에 관한 다음 진술은 고대 이란의 모든 예식에 전적으로 적용된다. 모든 희생제에서 기부 행위가 있는데, 희생을 올리는 이가 자신의 것을 털어서 주기 때문이다. 이 기부는 종종 심지어 그에게 의무로 부과된다. 희생제가 항상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신들이 그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기부와 복종에 이기적인 특성이 없지는 않다. 희생을 올리는 이는 ・・・・・・부분적으로는 반대급부를 받기 위해 준다. 그러므로 희생제는 이중적 관점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먼저 그것은 유용한 행동이며 하나의 의무이다. 사심 없음이 이기심과 뒤섞여 있다. 바로 이것이 희생제가 그토록 자주 계약의 한 형태로 인식되어 왔던 이유이다. 오늘날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예외 없이 제물 공여가 뒤따르는 모든 주요 숭배 행위를 미트라, 주 계약의 주의 가호 아래 둔다.
・・・피의 희생제가 항상 가장 희소하였으며 최상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숭배 행위의 커다란 장점들은 수많은 파흘라비 문헌에서 강조된다. 이는 물론 부분적으로는 희생을 올리는 이에게 드는 비용의 크기 때문이지만, 동물 희생을 특출하게 만들고 거기에 특별한 숙성을 부여한 것은 분명 비용과 그로 인한 자기 포기의 정도만은 아니다. 피를 흘리는 행위 자체는 희생물에 대한 범죄이므로 미리 정해진 의례 규칙을 가장 엄숙하게 적용해야 하는데, 그 목적은 희생으로 인한 파괴 행위가 희생되는 동물의 육체에 국한되고 그 영혼이 다른 세상으로 풀려나 거기에서 "그 종들의 영원한 삶을 살찌우게 하고자" 함이다.
・・・오래전 인도・이란인들이 목축민이던 시절, 그들이 가축 떼에 의지하고 살던 때, 정규적 희생 동물은 암소 혹은 황소였음이 명백한데, 이것들은 계속해서 최고의 제물로 간주되었다.
—p.198~202
그는 스피타마(Spitama) 가문에서, 아버지 포우르샤스파(PouruSaspa)와 어머니 두그도바(Dughdhov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더 가까운 선조 중에 하에차트 아스파(Haekhat.aspa)'가 있는데, 전승에 따르면 그는 조로아스터의 증조부이다. 이 인명들은 목축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합해 보인다. 아베스타어로 자라투쉬트라(Zarachuistra)인 예언자 자신의 이름은 '나타를 다를 수 있는 이'로 보이는데, 이는 유목민들 사이에서 그런 이름에 수반하는 존경을 받을 만한 기술이다. ・・・・・・예언자의 아버지의 이름 (증조부를 포함하여 그와 관련된 몇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은 아스파(aspa) 즉 말이 들어간 합성어인데, 포우루샤스파는 "회색 말을 가진" 이란 뜻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 두그도바는 "젖을 짜는 이"라는 뜻이다.
—p.238
조로아스터는 봄 축제(마이드요이자 레마)가 열리던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새벽에 (고대의 제의적 관행을 따라) 하오마 의식에 쓸 맑은 물을 걷기 위해 근처의 강으로 갔다. 가장 깨끗한 물을 걷고자 물결 깊숙이 들어갔다 둑으로 돌아왔을 때, 순결한 요소인 물에서 나왔으므로 그 자신도 필연적으로 의례상 순결한 바로 그때, 봄 새벽의 신선함 속에서 그는 예지를 느꼈다. 그는 둑 위에 서서 빛 자체처럼 빛나는 옷을 걸친 빛나는 존재를 보았는데, 전승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보후 마나(Vohu Manah), 선한 의지)라 밝혔다고 한다. 그에 의해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즈다의 현신과 다섯 불사신 앞으로 불려 갔으며, 그들 앞에 서자 그는 "그들의 엄청난 빛 때문에 땅 위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영적 깨달음이 찾아왔다.
—p.241
조로아스터의 새로운 가르침의 핵심은, 물질세계에 이미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원초적 단일성에 대응하는 짝으로서 신의 세계에도 원초적 단일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그가 가르치길 처음에는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는 단 하나의 선한 신만 있었으니 이름하여 아후라 마즈다, 즉 지혜의 주라는 한 명의 야자타였다. 애초에 모든 신적인 선은 그 신 안에 내포되어 있었고, 복수성과 다양성은 단지 악신의 존재 때문에 발생한다. 왜냐하면 처음에 아후라 마즈다와 함께 그와 마찬가지로 자존하는 존재로서 그에 대비되는 적대적인 영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는 예언자의 눈으로 이 둘의 첫 조우를 목도한다. "이제 두 영(靈), 즉 쌍둥이 영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두 방식의 생각과 말하기와 행동은 하나는 더 좋은 것이고 하나는 나쁜 것이다. 이 두 방식 중 지혜로운 이들은 바르게 선택하지만 어리석은 이들은 그러지 못한다.
—p.251
아샤, 즉 "올바름" 혹은 "공정함'은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자질이며, 아샤는 그 자질을 인격화한 신으로서,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달라는 호평을 듣고 기도를 받을 수 있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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