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 행사처럼 꼭 챙기는 문화생활 중 하나가 10~11월경이 되면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다. 원래는 폴란드 연극 <더 임플로이>를 얼리버드로 예매해 두었지만, 당일 장거리 출장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공연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올해는 별 수 없나보다 하던 중, 특가로 풀린 <네안데르탈>이라는 프랑스 연극을 발견했고 고민 없이 예매했다. 오랜만에 찾은 마로니에 공원은 적갈색 건물들 사이로 샛노란 은행들이 한껏 가을 정취를 발산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배운 세계사 속에는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을 다루고 이에 앞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니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명칭이 나오는데, 이 연극의 제목은 여기서 말하는 '네안데르탈'을 가리킨다. 네안데르탈인들의 뼈에서 DNA를 추출해낸 스웨덴 연구자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의 일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한 시점이 약 20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한 시점이 30만 년 전,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시점이 20만 년 전이라고 하니 다시 봐도 이해 범주를 넘어서는 시간이다.
감독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과도기적으로 짧게 출현하고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가 편의상 부르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존재가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니기에 종(種) 수준에서 우리를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고 있겠지만, 이는 이전에 사라져간 인류의 직계조상들 역시 그들이 살던 순간 그들 앞에 펼쳐진 풍경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Festival d'Avignon
물론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건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서의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가 독선(獨善)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느 한 인터뷰에서 다비드 쥐젤송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연극은 피의 순수성(jus sanguinis)이나 출생지 권리(jus soli)에 기반한 모든 국가적·인종적·종교적 분쟁을 해체하기 위한 작업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는 네안데르탈인과 교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다른 누군가에게 우월성을 주장할 만큼 순수하지도 무결하지도 않다.
1995년 스레브레니차-제파 집단학살, 2001년 9·11 테러, 202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이미지 또는 글, 말―이 극은 텍스트를 포함해 매우 다양한 소통수단을 동원한다―로써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우리가 앞선 인류보다 진일보한 존재라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허상이라는 것, 500만 년을 통과하는 거다란 시간적 서사 안에서 발생하는 개개의 역사적 순간들이 어쩌면 우리의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관철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껏해야 가장 최근에 활동하고 있는 침입종(l'espèce invasive)에 지나지 않는다.
DNA라는 소재로 개인적·국가적·지구적·우주적 차원에서 우리의 역사인식을 재점검하자는 메시지를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극의 중간중간 막을 내린 후 루카(Luca)와 로사(Rosa), 뤼도(Ludo)가 강연하듯이 내레이션을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다비드 쥐젤송 감독 본인이 직접 연기한 루카와 로사는 복고풍의 청바지 차림에 우렁찬 발성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대학 극회에서 볼 법한 풋풋하면서도 생기 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무대의 수직면에 전사(轉寫)되어 시시각각 바뀌는 모래로 빚은 형상들, 또 한켠에서 추임새를 넣듯 등장하는 첼로의 연주, 정교하게 설계된 무대미술 또한 기억에 남는다. 150분 안에 시청각적으로 체험할 거리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할 거리도 가득히 선사한 멋진 공연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