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의 모순은 몇 가지 아주 단순한 형태로 정리해서 나타낼 수 있다. 욕망과 욕구, 본능의 감각인 그것은 동물성과 관련이 있었다. 킁킁거리는 것은 동물과 같은 짓이었다. 만약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감각이었다면, 후각적 감각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언어의 무능은 인간을 외부 세계에 얽매인 존재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후각은 그것이 지닌 덧없는 속성 때문에 지속적인 사고를 끌어내지 못하고, 후각의 예민함은 지성과 반비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p.15~16
지역이나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공기는 조직의 팽창이나 수축을 지배하는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공기의 질량이 과학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공기가 인체에 어떤 종류의 압력을 끼친다는 사실도 인정되었다. 이러한 압력 때문에 몸 밖에 있는 공기와 안에 있는 공기가 균형을 잃게 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그리고 균형은 항상적인 것이 아니라, 트림이나 방귀, 소화나 흡입과 같은 작동원리로 끊임없이 조정된다. —p.22
부패한 물질에 대한 후각적 주의력은 (이것이 핵심이었는데) 자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요소, 곧 앞선 존재로부터 물려받았고 새로운 존재의 조합을 가능케도 하는 그 구성요소를 '고정'할 수 없다는 인간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었다. 부패는 시간을 계산하는 기준이었다. 부패에 관한 연구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되었다. 그 뒤 후각적 경계심의 목적은 단지 위협이나 오염의 위험을 탐지하는 데 한정되지 않게 되었다. —p.38
화학자에게 '고정 공기'가 육체의 시멘트로 여겨지게 된 뒤로 죽음은 대기 중에 사체의 냄새와 함께 떠다니는 것이 되었다. 생명체 내부에는 장기의 부패와 생명의 원리가 공존하는데, 장기의 부패는 죽음이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체에서 발산되는 가스와 썩은 냄새는 대기의 구성 안에 죽음이 침투하는 것이 되었다. 계통적인 오염은 단지 지하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 결합할 대상을 열렬히 찾고 있는 '고정 공기'는 산 자들을 둘러싼 채로 생명의 균형을 무너뜨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무덤이라는 전통적인 방벽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p.52
체취가 대인관계에 끼치는 영향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측면에서 나타난다. 하나는 호감과 반감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전염과 감염의 측면이다. —p.74
한 가지 확실히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영역에 속해 있다. 다시 말해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냄새가 그 전보다 민감하게 맡아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후각적인 허용의 한도가 갑작스럽게 엄격해진 것처럼 일이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산업폐기물이 도시 공간에 쌓이기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실 확실히 이러한 변화에는 과학이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우리는 진리만을 중시하고, 오류로부터 생겨난 역사적 결과는 무시한 과학사만을 신봉해왔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놓쳐왔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요컨대 지금까지 서술해온 것은 모두 어떤 제한된 세계, 다시 말해 의사, 화학자, 정치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후각적 환경이 뚜렷하게 의식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p.94~95
내가 보기에 이러한 후각혁명은 18세기 중반 무렵 이후에 결정적인 단계를 맞이했는데, 그것을 예비한 역사적 과정은 언어에서도 확인된다. 이 무렵에 고전 프랑스어에서 악취에 관한 어휘들이 사라지고 순화가 진행되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프랑스어를 부패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악취에 관한 어휘의 첫 음절이 굴절되거나, 배설물에 관한 것을 화제로 삼는 경우에는 "문장을 외설적으로 돌려서 표현하거나“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p.102
여기에서 우리는 후각혁명의 핵심적인 면을 마주하게 된다. 향수가 비판을 받게 된 것이 부르주아적 심성이 떠오르고 확산된 것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향기(parfum)'란 어원학적으로 보면 연기(fumie)'가 되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무산되는 것, '기화되는 것'은 낭비를 상징한다. 곧바로 사라져서 축적할 수 없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도 없다. 폐기물이나 분뇨조차도 되살려 다시 쓰거나 그것으로 이익을 얻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에서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 노동으로 쌓은 성과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산되듯이 느껴지는 것이 부르주아한테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약함, 무질서, 쾌락에 대한 애착을 반영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은 향수는 노동과 양립할 수 없었다. —p.115~116
18세기 말에 일어난 동물성 향수의 쇠퇴는 성적인 냄새들의 '근본적 가치'가 하락된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엘리스는 보르되가 주뼛거리며 행했던 분석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유럽의 남녀는 이때부터 무례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체취를 더욱 교묘하게 숨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후각의 성적인 역할을 아예 부정해버리거나, 아니면 후각적인 흥분과 암시의 영역을 이동시켰다. 그래서 그 뒤로는 분비액의 강렬한 냄새가 아니라 피부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냄새가 은밀한 관계를 예고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p.123
감각론의 도덕이 명령하는 첫째 계율은 개방성 (disponibilité)이다. 그래야 세련된 감각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감각이 떠올리게 하는 쾌락이나 감정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소는 일찍이 대상의 선택과 배치를 기초로 하는 이러한 감각의 예술을 행복추구 기술의 첫 번째로 꼽았다. 이런 복잡한 계산의 이면에는 번잡한 감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끊임없는 관심이 놓여 있었다. 번잡한 감각은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도, 방심을 빚어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각의 진정한 쾌락을 맛보려는 행위는 진흙구덩이나 퇴비, 생체의 부패, 골짜기의 답답한 경작지나 도시의 비좁은 공간 등과 같은 것들로부터 아주 멀리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했다. ......이렇게 '사회적 발산물'에 대한 혐오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직 모호한 상태였지만, 점차 분명히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p.129~130
하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요소도 있었다. 정서적 기억을 높이는 힘이 그것이다. 루소의 방식대로 말하면, '기억의 징표‘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후각으로 식별된 냄새로 과거와 현재가 극적으로 서로 겹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결합은 시간성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로 하여금 스스로의 역사를 실감하거나 깨닫게 해준다. —p.136
시각은 이성적인 확신의 근원이지만, 청각은 사회조직에 관한 감각이라는 점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근대가 되자 시각의 역할이 갑자기 커졌다. 그러한 사실은 소송 절차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법정에서 청각으로 전해들은 말은 시각으로 확실히 인지한 것에 점차 종속되었다. 그렇지만 이것과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더 있었다. 이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는데, 실은 감각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중엽부터 하나의 미학적인 움직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후각을 영혼의 위대한 움직임을 만들어낸 감각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었다. 향기는 시각보다 내적인 감각으로, 더 직접적으로 정신으로부터 독립된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우리는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면 그 최초의 인상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이에 비해 시각의 쾌락은 지각된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이나 성찰, 그러한 사물이 만들어낸 희망 등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다. —p.137
서로의 육체가 지닌 공간성은 호흡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앞서 보았듯이 감각적 불관용이 개인들 사이에 필요한 거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놓이게 되었고, 10년이 나 20년 뒤에는 장소에 관한 새로운 할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적 공간에서든 사적 공간에서든 지배적이었던 후각적 혼재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물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분뇨 냄새를 폐쇄적인 변소 안에 가둬두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리고 냄새의 강렬함을 무시하면 병원과 교도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엌 냄새가 사적 공간의 냄새와 뒤섞이는 일도 서서히 없어졌다. —p.163
18세기 말에 확인했던 것과는 달리, 그 뒤로 배설물에 관한 담론에서 가장 빈번히 나타난 것은 '이익'이라는 말이었다. 구역질을 일으킬 듯한 역겨운 발산물은 독기와 손실을 동시에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아돌프오귀스트 밀(1812~1894)은 이를 "모든 악취는 도시에서는 공중위생에 대한 침해를 뜻하고, 농촌에서는 비료의 손실을 나타내고 있다"고 조금은 도식적으로 요약했다. —p.184
교육으로 감각의 허용한계가 평준화되지 않는 한 정화에 대한 욕구는 당연히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때 부르주아지를 위한 공간이 소독된 것은 그곳의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사실 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장소에서는 오물과 악취가 줄어들면 그만큼 화폐가치가 커진다. 그렇지만 다양한 노동자가 북적대는 임대주택의 경우에 그것을 위생적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거꾸로 집주인의 부담을 터무니없이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윤의 추구가 냄새의 사회적 분화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다. —p.212
오염된 공기에 밤낮 둘러싸여 있고, 기름으로 얼룩진 냄새에 휩싸인 육체노동에 종사하며, 몸에서 후터분한 체취를 짙게 내뿜는 노동자는 후각이 마비된다. 여러 기관들의 발달을 관장하는 보상의 법칙에 따라, 완력이 강하게 되는 대신에 코가 막혀 은은한 향기를 구분하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섬세한 후각은 육체노동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만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곧 여러 기관들 사이에 발견되는 불평등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p.217~218
담배의 승리는 자유주의의 승리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담배는 남자끼리의 교제가 이루어지게 된 것의 증거였으며, 머지 않아 그것을 위한 소도구가 되었다. 담배의 보급에는 징병제의 영향도 컸다. 징병제와 마찬가지로 담배는 평등주의적이고 애국적'인 미덕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 세계에서 담배는 귀족의 칭호를 획득했다. "담배를 피우는 남자끼리는 서로 평등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사이좋게 늘어서서 마주한 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담배를 팔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말이다." —p.232
역사적 사실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것은 거의 변화를 겪지 않았을 어떤 현실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어진 그 현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지각의 방식과 새로운 불관용이다. 지배계층 내부에서 일어난 이러한 감각의 변화와, 그러한 변화가 가져온 말들의 물결이 마침내 위생혁명을 명령하고, 근대로의 길을 만들 어냈던 것이다. —p.242
아돌프오귀스트 밀은 영국식 전략을 다음과 같은 3개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요약했다. 부엌과 수세식 변소에 가장 먼저 "수압이 높고, 자유롭게 수도꼭지를 돌리는 수돗물을 공급할 것", 하수도 청소부를 없앨 것, 새롭고 편리한 설비를 채용할 것, 이 세 가지가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p.267~268
그 대신 이미 알고 있듯이, 여성이 남성의 깃발이 되었고, "남편이 생산한 재물의 의례적 소비의 담당자"가 되었으며, 아버지나 배우자의 지위나 재산을 상징하는 사명을 지니게 되었다. 그 뒤로는 공들여 만든 옷감이나 현란한 색감, 과시하는 듯한 화려한 아름다움은 여성만의 것이 되었다. 그것들은 낭비의 징표였고, 그러한 낭비야말로 노동과는 무관한 여성의 높은 지위를 뽐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p.282
"부르주아는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부를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것만 놓고 보더라도 낭비의 상징인 향수가 왜 적대시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덧없이 사라지는 향수는 수량을 중시하는 정신을 경시하는, 용납할 수 없는 손실의 징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돌아보면, 19세기의 부르주아들에게는 이러한 논의가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좀바르트(833-191)가 지적했듯이, 19세기의 부르주아는 이미 쾌락과 감각적인 모든 것을 적대시한 채로 단순히 의무만 완수하려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혈통을 동경했고, 귀족적인 방탕함을 부러워 하면서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부르주아들은 사회 안에서 본능을 억제하는 인간을 대표하지 않게 되었다. —p.287
이러한 커다란 전략 안에서 후각은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사랑스런 향기의 유혹은 노골적인 도발보다 수줍으면서도 느낌이 더 풍부했다. 그래서 나체의 매력보다도 더 마음을 흔들었다. 그야말로 모호함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었다. 향기의 유혹은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은 슬며시 몸의 굴곡을 숨기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강조했다. 이에 비하면 향기로운 몸에서 은은하게 발산되는 사랑의 메시지는 그나마 수줍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p.290~291
전염성 병원균이 병을 퍼뜨리는 것이라고 학자들이 확신하게 되면서 악취와 병원체의 위협은 서로 구분해서 다루어지게 되었다. —p.351
이렇게 도시에서 악취를 제거하는 일이 늦추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서로 대립하는 위생학자들의 생각은 사회적 표상과 정확히 부합해 있었다. 정체라는 전략과 배수, 분해라는 전략이 충돌하고 있었던 것과 똑같은 대립이 사회적 표상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뒤처진 선전가는 어떤 경우에서든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점에 기초해 밀봉과 단속을 강조했다. ......배수와 분해를 지지하는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제시한 방안에는 평등주의의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분명히 이들이 제시한 방안에는 ‘모두를 위한 물'이라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었다. —p.355~356
다양한 분열과 대립의 바탕이 되었던 것은 공기, 더러움, 배설물의 이해를 둘러싼 서로 다른 두 가지 인식태도였다. 여기에서 욕망의 리듬과, 욕망과 관련된 향기를 다루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관리방법이 나타 났다. 그리고 이런 분열과 대립의 종착점, 그것이 바로 개인들이 독립해 살고, 악취가 제거되어 냄새가 나지 않는 생활환경이었다. —p.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