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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두려움이었으니일상/film 2017. 9. 9. 00:22
<그것/안드레스 무시에티/공포, 스릴러/빌(제이든 리버허), 페니와이즈(빌 스카르스고르드), 비벌리(소피아 릴리스)/135>
"FEAR. FEAR. FEAR."
공포물을 찾아보지는 않는 편인데, IMDB에 평점도 괜찮고 흥행순위도 괜찮은 것 같아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평면 스크린을 통해 공포라는 감정을 전달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이 영화는 분명한 주제의식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포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일산 IMAX까지 찾아가 본지라, 영화가 연출하고자 한 효과도 비교적 잘 전달되고 좋았다. (음향도 굳굳:p)
1. KIDS
호러물의 주인공을 굳이 어린 아이들로 설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마치 만화 <20세기 소년>의 겁없는 소년단처럼 마을을 엄습하는 공포에 용감하게 맞서는 어린이들.
개인적으로 어린이들을 등장시킨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타고나는 공포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기 위함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연상되었던 것이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어둠의 마법을 가르치는 루핀 교수가 '보거트 레슨'을 하는 장면이다. 닫혀 있던 옷장의 문이 열리면 보거트라는 괴물은 상대방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변신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법사는 'Ridiculous(조롱)!!'이라는 주문과 함께 괴물을 무력화시킨다.
극중에서 빌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은 동생(조지)의 분신이었고, 에디에게는 불결한 거렁뱅이, 리치에게는 광대, 스탠리에게는 모딜리아니의 여인상을 닮은 기괴한 여인, 마이크에게는 화재, 그리고 비벌리에게는 그녀의 아버지가 가장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리고 데리(Derry)라는 마을에서 27년 주기로 벌어지는 흉흉한 사건들에 관심을 지닌 전학생 벤까지. 어린이들을 집어삼키는 광대는 이런저런 형태로 모습을 바꾸며 이들 소년단을 능수능란하게 농락하지만, 이내 이 소년단들은 두려움에 초연해지는 법을 터득한다.
2. ADULTS
어린이들에 비해 어른들은 두려움에 일상화된 존재로 묘사된다. 아니, 느낀 바를 좀 더 솔직하게 묘사하자면 영화 속 어른들은 이미 '두려움 그 자체'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벌리가 피로 범벅이 된 화장실에 갇혔을 때, 화장실로 들어온 그녀의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어떠한 이상함도 발견하지 못한다. 어린이가 보는 것을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비벌리의 아버지는 평소 그녀가 친자가 아닐 거라는 의심에 사로잡힌 인간이다. 그런가 하면 에디의 어머니는 분명하지도 않은 원인을 들먹이며 에디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한다. 빌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조지를 찾으려는 빌의 노력을 묵살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두려움에 만성화되어 있거나, 오히려 두려움의 원인 제공자들이다.
3. LOSER'S CLUB
의외로 흥미로운 인물은 '헨리'라는 소년이다.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의 이 소년은 예의 소년단을 '루저 모임'이라 낙인찍고, 온갖 정신착란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소설의 원작자가 '헨리'라는 문제의 청소년을 왜 등장시켰는지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스토리에 더 사이코패스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헨리가, 인간이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성인식이 공포심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헨리'라는 소년은 루저 모임이라고 일컫던 소년단에게 골탕을 먹기도 하지만, 가장 극단의 흉악함을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는 인간이 두려움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첫째, 인간 자체가 타고난 의심으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상상의 공포를 지어낸다. 둘째, 마침내 인간 자신이 타인에게 위력을 행사하여 공포를 불어넣는 존재로 전락한다.
공포에 집어먹히는 자, 공포로 집어삼키는 자. 그러한 본성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그러한 본성들이 모인 집합체로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탁월하게 보여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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