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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낮에서 밤으로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9. 16. 22:34
매직 아워!!
혼카와쵸 역에서 곧바로 숙소로 들어가질 못하고 기어이 사진 한 장 더 찍겠다고 원폭돔 행
아침에 봤던 강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원폭돔의 석양 풍경을 보기 위해 원폭돔앞 역에서 내릴지, 숙소로 곧장 들어가기 위해 혼카와쵸 역에서 내릴지 고민하다 원폭돔앞 역을 지나쳤다. 그리고 혼카와쵸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원폭돔앞 역으로 걸어서 되돌아갔다.
50년간 무방비로 비바람에 노출되었을 구시청사의 콘크리트 골조는 어쩐지 아름다운 저녁놀을 쬐도 을씨년스러운 구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조금만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도 깔끔하게 지어진 새 건물들이 해말갛게 빛을 반사한다. 히로시마의 어두운 역사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불과 이틀 왔다갔다 했을 뿐인 거리가 벌써 낯설지가 않다
숙소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정류소에서 한 번 더 사진을 남겼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여행의 마지막날이 되면 아쉬움도 크고..마음이 허전해지는 것 같다
숙소에 돌아온 뒤 짧게 잠을 청했다. 일본처럼 편하게 여행할 만한 장소에 와서도 불편함을 자처하며 고단하게 돌아다녔더니 저녁은 꼭(..?!..꼭!!)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_= 에타지마에 가지 않아서 굳은 비용을 밥먹는 데 써야겠다는 합리화와 함께. 그래서 히로시마 역에서 혼카와쵸 역으로 이동하는 전차 안에서 재빨리 스시집을 검색해 두었다.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온 뒤에도 해가 완전히 저물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미리 봐둔 장소는 쥬덴마에(中電前) 역 옆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도 고급 스시가게인 것 같아 망설였는데...
막상 들어오고 나니 메뉴 주문하기도 전부터 생맥주부터 지출이 생겼다~_~;;
그것이 바로 '히토시(ひと志)'! 무엇보다 구글에서 현지인들에게 평가가 좋은 게 마음에 들었다. 쥬덴마에 역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간 골목에 자리잡은 스시집이었는데, 전차에서 내리고 보니 일대가 죄다 고급 호텔이 들어서 있는 지역이었다. 맞은편 블록으로 드문드문 자리잡은 가게들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레스토랑들이어서, 어째 너무 가격대가 있는 지역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미리 검색을 했을 때에는 코스 요리가 3만 원이라고 나왔는데, 그 정도 사치는 해보자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조그마한 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작게 일본식 정원이 가꿔져 있다. 문지방 너머로 안을 드려다보니 기모노 차림의 여성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혼자서 식사를 하기에는 딱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직진!!
바로 눈앞에서 스시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진을 남기기가 좀 민망했는데,
사진에 남기지는 못했지만 맨 처음에 먹었던 오징어 스시가 비주얼도 대단하고 맛도 좋았다
사진으로 안 남길 수가 없어서 한 장 두 장 찍다보니 어느새 스시가 나오는 족족 찍고 있었던...;;
이 가게의 특이한 점은 와사비가 섞인 간장 소스가 따로 없다는 점,
밥 자체에 간이 골고루 베여서 따로 찍어먹을 필요가 없단다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다보니 어느새 모든 코스가 종료되어 있었다@..@
연분홍빛 민무늬 기모노를 입은 아주머니가 엄청 반갑게 내게 인사를 건넨다. 안내하는 자리로 가니―1인 손님이니 방으로 안내할 리는 없고, 테이블로 안내했는데 대충 요리사 정면으로 네 자리 정도가 있었다― 오른편으로 중년 직장인 두 명이 거나하게 취해서 왁자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본분은 아니시죠..?'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버릇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건네온다. 나는 가장 기본 코스를 주문하고서는, 생맥주를 주문했다'a'
정면으로는 두꺼운 유리진열대 안에 스시 재료들이 정돈되어 있었고, 바로 너머로 과묵한 인상의 요리사가 스시를 빚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간장을 따로 찍어 먹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지시켜 준다. 또한 스시가 하나씩 올라올 때마다, 재료를 설명해주고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일부 고유명사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미식에 문외한이기는 해도 우리나라에서 먹던 스시와는 확실히 달랐다!! 걸신 들린 사람처럼 먹어치우기 시작~ 종종 아주머니가 와서 재료에 대한 부연설명을 더해준다.
스시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유달리 나가사키 산이 많아서 더 자세히 물으니, 심지어 쓰시마에서 온 해산물이란다. 전날의 요리사 아저씨가 츄고쿠의 해물 요리가 워낙 뛰어나다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재료도 세토내해에서 잡아들인 걸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쓰시마라면 대한해협에 자리잡고 있으니 사실상 우리나라 해역에서 잡힌 물고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따지려는 건 아니지만, 일본사람들이 일본의 동쪽 해안에서 잡아올려지는 해산물―특히 도쿄 이북지역의 해산물―을 사용하긴 할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헤이와 도오리(平和通り)를 거슬러 다시 강변으로 향했다
원폭돔의 야경은 또 다를 것이기에..
낮의 인적이 사라진 밤의 평화기념 공원은 매우 적적하다
낮에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파스타집에 이르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끝으로 귤 샤베트를 먹고 계산을 마쳤다. 호화로운 저녁이었다. 최종 도합 1인에 세금 포함 5만 원이 넘는 식사였다.(막상 식당에 들어가서 메뉴를 확인하니 예상을 웃도는 가격이었다.)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낼 때 조마조마하더라X-(ㅎㅎㅎㅎㅎㅎㅎㅎㅎ뭐..지금껏 먹어본 스시 중에 가장 훌륭했으니 된 것 아니겠는가!^ㅠ^
헤이와 대로를 통해 다시 원폭돔 방면으로 걸어나왔다. 밤인데도 덥고 습한 걸 보면 한여름은 한여름이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아저씨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또 다른 아저씨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주민들도,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강아지도 모두 더워 보인다.
잠시 원폭돔 맞은 편 강둑에 앉아보았다. 고요한 풍경을 앞에 두고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내가 갑자기 청승맞게도 느껴졌다. 여행은 끝을 향해 가는데, 아직 여행을 끝내고 싶지가 않았다. 이날만 여행이겠냐마는 영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원폭돔
강변 둑방에 누군가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잠깐 <비포 선셋>의 에단 호크가 된 느낌..."ㅁ"
물론 여기는 비엔나도 아니고 나는 에단 호크도 아니다
이날따라 여행의 끝이 영 아쉬웠다
오후 일정이 틀어져서일까, 본격적인 현업을 앞두고 떠나온 여행이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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