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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현대미술관과 다바(現代美術館と駄馬)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9. 10. 00:01
현대 미술관 앞 조각상
히지야마 공원으로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
꼭 부산 용두산 공원의 에스컬레이터 같다
에타지마(江田島) 행이 무산되면서 일정이 꼬인 게 영 탐탁지 않은 상황. 내가 도쿄에 있었다면 일정 하나에 구멍이 생겨도 다른 옵션이 많았겠지만, 히로시마는 도쿄나 오사카만한 대도시가 아니다. 원래 내가 꿈꾸던 일본여행 중의 하나가 조용한 카페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하는 것이 있었는데, 정보를 잘 못 찾는 건지 히로시마에는 내 희망사항에 들어맞는 카페가 검색되지 않았다.
그나마 '히지야마 공원 인근에 조용하고 근사한 카페가 많다', '일본식 정원이 잘 가꿔진 공원이다'라는 트립어드바이저의 어느 댓글을 읽고 히지야마 공원에 내린 것인데, 이내 카페를 가는 건 포기하고 공원 안의 현대미술관이라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정보를 잘못 찾았거나 급한 나머지 정보를 잘못 읽은 것 같다) 못마땅한 상황에 날씨도 더 꿉꿉하게 느껴지고, 히로시마 현립미술관의 컬렉션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다.
미술관 앞에 전시된 또 다른 설치미술
철로 된 조각상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던 중 발견한 길냥이
길을 잃어서 이 주위만 몇 번을 맴돌았던지..
공원 곳곳에 주차된 차량은 많은데 인적은 거의 없는 희한한 공원이었다. 지도상으로 분명 현대미술관에 도착한 상황이었는데, 현대미술관의 입구는 보이지가 않아서 주변을 두 번이나 크게 도느라 진이 빠질 대로 빠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 정면의 오른편에 눈에 띄지 않게 입구가 있었다. 출입하는 사람들이라도 있었으면 입구를 어렵지 않게 찾았을 텐데, 내가 미술관―규모가 꽤 되는데도 입장객이 없었다;;―에 들어갔을 때 사람은 나뿐이었다. 상설전시는 따로 없고 특별전시만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폐관시각이 5시라고 했다. 내가 도착한 시각이 오후 4시를 좀 넘긴 시각이었기 때문에 곧장 전시실로 향했다.
특별전시의 주제는 광경(光景). "빛과 그림자"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지니는 주제다. 또한 일본어로 '경(景)'을 풀이하면 '그림자'라는 의미 외에 '풍경(landscape)'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전시실 하나는 '빛'을 주제로 하고, 다른 전시실 하나는 '그림자'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전시의 테마에 급!! 호감이 생겼다.
생각보다 일본작가들로 이루어진 컬렉션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고 별 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 작품도 있었다. 이 '광경'이라는 주제를 좀 더 좁히면 '히로시마의 광경'이라는 사실을 전시를 둘러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가령 '빛 전시관'에는 자연광을 스펙트럼으로 분광한 컨셉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던 '섬광'을 묘사한 작품이 있었다. 또한 '그림자 전시관'에는 필름에 조작을 가해서 번개가 퍼지는 흑백 장면을 담은 히로시 스기모토(博司杉本)―우리나라 리움 미술관에서도 특별전이 진행되었을 때 찾아간 적이 있다―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히로시마에 원폭 '리틀 보이'를 투하한 비행기―에놀라 게이―를 사진으로 담은 어느 외국작가의 작품도 있었다.
현대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단바라(段原) 지역으로 빠지는 길
카페 찾아 뒷골목 삼만리~
폐관시각을 꽉 채워서 (그래봤자 한 시간이 채 안 되었지만..) 미술관을 나서니 여전히 오후 다섯 시. 수중에 현금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여기 와서 체크카드를 써본 일이 거의 없었다) 출금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딘지 미술관 직원에게 물었다. 공원 내에 ATM기는 없고, 인근 쇼핑몰에서 얼마간의 현금을 찾았다.
해바라기!!
난을 취급하는 어느 꽃집의 고즈넉한 인테리어
구글맵에 표시된 지점 도착
카페 발견 실패
건물을 뒤돌아 카페 발견
카페 문닫음ㅠ
카페에 대한 집념을 접지 못하고 새로운 카페를 찾아 단바라 대로를 걷는 중
단바라를 방황하는 내내 이정표가 되어준 높다란 빌딩
저녁을 먹자니 딱히 시장한 느낌도 없고, 더운 날씨에 갈증이나 달래고 싶어서 근처 카페를 검색했다. 구글맵에서 평점이 괜찮은 곳이 두세 군데 정도 떴는데, 그 중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다. 오로지 GPS 지도에 의지해서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 주택가에 들어와 있었다. 부동산 가게, 꽃가게, 놀이터 등등을 지나치며 계속 카페가 있는 위치로 향했는데, 카페에 도착했을 때 카페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일본도 지금은 휴가철인지 미야지마든 여기든 휴점상태의 가게들이 많다..=_=
나올 때는 한 블록 건너 주택가를 벗어나 대로를 따라 걸었다. 주택가 맞은편 대로로는 좀 더 다른 건물들과 가게들이 보였다. 커다란 빵집, 피트니스 클럽, 은행지점들, 그리고 그 놈의 파칭코 가게들.. 히지야마 공원을 빠져나온 뒤 더 이상 오늘의 일정은 남아 있지 않았으니, 두 번째 카페로 가보기로 했다. 두 번째 카페에게도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역시나 문이 닫혀 있던 것이다Y_Y
와...두 번째 찜해둔 카페 역시 문닫음
내적 갈등
육교를 건너며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들러보기로 결심
이쯤되니 체력도 고갈되고 결정을 내려야겠다 싶었다. 단바라 대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히로시마 역 가까이에 와 있었기 때문에, 곧장 히로시마 역으로 가서 숙소로 가는 교통편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서는 마지막 세 번째로 한 번 더 카페를 찾아 보았으니, 그곳이 '다바(駄馬)'라는 카페였다. 마침 히로시마 역으로 가는 길 위에 위치해 있었다. 어째 리뷰수도 너무 적고 검색했던 세 곳 가운데 가장 협소해 보이는 카페라 별 기대를 갖지 않고 갔는데, 다행히도 영업중이었다'ㅁ'(와..........)
엔코가와(猿猴川)를 건너면..
마지막으로 찾던 카페 발견!!
그 이름하여 다바!!
카페라기보다는 아침에 들른 찻집(喫茶店) 같은 곳이다
요코즈나(横綱)를 가리는 경기가 한창인듯
어릴 땐 집 텔레비전에 bs 채널이 나와서 가끔 스모 경기도 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채널이 끊겼다
원래 우리 나라에서 bs 채널이 잡히면 안 된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들었던 기억이..
이국적인 느낌
일드에서나 보던 스낵(スナック)과 카페를 뒤섞어 놓은 듯한 묘한 분위기다. 좋다!!! 테이블이라고는 많아 봐야 네 테이블. 그 중 두 테이블은 사람이 있었다. 한 테이블은 주인과 친분이 있는 듯한 주부와 아이들이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에는 중년의 남자가 조용히 앉아 신문을 바스락 넘기고 있었다. 늦은 오후부터 가벼운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식사 메뉴를 주문하지 않으면 민폐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아서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매우 친근하게 주문을 받는다.
오늘 일정이 나름 고단했던지라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멍하니 앉아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오후 햇살을 즐겼다. 주방 위에 달린 텔레비전으로 스모 경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마도 요코즈나―우리나라 씨름으로 치자면 천하장사―를 가르는 경기인 듯했다. 언뜻 봐도 스모 경기장이 만석이었다. 언젠가 요즘 스모판에서 몽골인들이 요코즈나를 장악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은 것도 벌써 수 년 전 일이라 지금도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요코즈나가 결정된 모양이었다. TV 화면의 사방에서 푸른 색 방석이 스모판 위로 날아든다.
이참에 히로시마 역까지 걸어가기로~하핫
히로시마 역 전차 종착역
석양을 받은 정류소
그렇게 카페를 찾아 헤맸건만, '다바'에서 머무른 시간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커피만 마시고 곧장 카페를 나섰다. 이제는 정말 숙소에 돌아가 쉬었다가 배가 고파질 때쯤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첫날에 먹었던 장어덮밥을 빼고, 일본다운 음식을 먹어보질 못했다. 히로시마 역의 종착역에서 혼카와로 향하는 전차에 몸을 실었다. 전차가 핫쵸보리(八丁堀)―서울로 보자면 명동 일대―를 지날 때, 거대한 빌딩 사이의 현란한 이면도로들이 한창 저녁 약속에 때맞춰 나온 인파를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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