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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작가 展 : 이상원(Lee Sang Won)주제 있는 글/Arte。 2017. 10. 16. 00:03
오전에 공부를 마치고 오후에 예정된 일정까지 기다리려니 3~4시간 정도가 비었다. 점심시간이 끼어 있어서 뭘 하기에는 애매하겠다 싶던 중, 날씨가 너무 좋아 무턱대고 광화문으로 향했고, 카페에 앉아 책이나 읽을까 했더니 카페가 닫혀 있어, 그렇게 표류하듯이 즉흥적으로 들어간 전시회에서 이상원 작가를 만났다. (결론은 날씨가 좋아서 나왔다가 실내에서 놀았다는 얘기..+_+;;)
첫 전시실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군중(群衆)'을 모티브로 한 연작들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좋았는데, 그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유채색(有彩色)들 사이를 오밀조밀하게 메우고 있는 흰색, 회색, 흑색 따위의 무채색(無彩色)들이었다. 존재를 과시하는 유채색들에 가려져 있지만, 무채색들이 적절히 배합되지 않았다면 유채색은 그저 그런 색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연등 사이를 메우고 있는 흰색, 돗자리 사이를 메우고 있는 어두운 회색 따위를 천천히 눈으로 따라갔다.
군중의 얼굴에서는 일체의 표정이 표백되어 있었는데, 마치 입을 그려넣지 않아 보는 이의 기분에 따라 감정이 다르게 읽히는 헬로 키티 같았다. 간단한 동작이나 위치를 통해 저 사람이 짓고 있을 표정을 떠올려 보았다.
한국적인 주제를 활용한 작품이 많았던 것이 참 좋았다. 가령 '군중'이라는 모티브를 2002년 월드컵 응원, 전국노래자랑, 광안리 불꽃축제에서 따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작품으로 올 수록 최근의 시국을 반영한 작품들도 여럿 보였다. (참고로 포스팅에 게재된 이미지들은 이번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의 이미지다)
작가는 현대미술의 큰 두 축을 이뤄온 회화(會畵)와 사진(寫眞) 사이에 접점을 찾는 데에서 작품세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전시 설명은 소개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회화 작업 뿐만 아니라 영상미술 작업 또한 수행하고 있다. (전시회에도 소개되어 있다) 때문에 사진이나 영상에서 오는 현실감과 회화 고유의 질감이 엮여 재미있는 이미지가 연출된다. 특히 유화나 아크릴화일 수록 붓의 위치나 강약이 전달되어서 더욱 회화의 특성이 돋보이는 것 같다.
그렇지만 유화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재미있게 봤던 것이 수채화다. 수정이 용이하고 비교적 물감을 통제할 수 있는 유화나 아크릴화와 달리, 수채화는 '물의 퍼짐'이라는 우연성을 활용해서 선과 형태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내게는 유화보다는 수채화를 그리는 일이 훨씬 어려워 보인다. 수족관, 스키장, 미술관 등 다양한 장소를 수채 물감으로 그려낸 그림들을 쭈욱 둘러보았다. 수채화가 전시된 구역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작품은 수송기에서 빠져나오는 낙하산 횡대를 담고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저만큼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낙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관람했던 게 기억에 난다.
그밖에 먹으로 그린 작품도 있어서, 전시된 회화의 종류가 제법 다양하다. 비록 고전적 의미의 동양화를 그리진 않았어도, 그림의 매체가 먹이라 그 자체로 동양미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시간에 쫓겨서 전시동 하나를 놓치기는 했지만, 둘러본 작품만으로도 시각적으로 충분히 유쾌한 자극을 받고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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