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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도이그(Peter Doig)주제 있는 글/Arte。 2016. 9. 21. 00:36
<Grande Riviere>
지금도 교보문고에 가면 여러 분야의 외국어서적이 많지만, 리모델링 이전에는 <Le Musée>라고 해서 외국의 예술서적만을 따로 모아놓은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 가끔 교보문고를 방문할 때면,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화집을 들여다보는 것이 꽤 기분전환이 되었다. 순수미술 서적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일러스트레이션집, 사진집, 건축서적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금도 외국의 예술서적 코너가 따로 있지만, 움푹 파인 공간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던 당시의 예술코너가 종종 떠오른다. 코너 이름대로 서점 안에 작은 박물관이 둥지를 튼 듯한 곳이었다.
피터 도이그(Peter Doig)는 그렇게 예술서적 코너를 드나들던 시기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작가였다. 비닐로 포장되어 화집의 내용물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떤 화집인지는 몰라도 표지의 그림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직원에게 부탁하면 비닐을 뜯어 내용을 확인할 수는 있기는 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었다. 피터 도이그의 그림을 실은 두 종류의 화집이 있었는데, 하나는 꽤 커다란 양장본에 가격만 해도 20만 원을 호가했다. 그런 데다가 그런 양장본이 총 두 권으로 분권돼 있었다. 그럼 벌써 가격이 얼마인지..;;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타입의 평범한 화집이었는데, 사실은 이게 탐났었다. 어쨌든 실용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 급한 책도 아니었는데, 결국 몇 개월 뒤에 일반적인 타입의 화집을 구매했다. 그리고 나중에 잠시 대전으로 거처를 옮길 때도 이 책을 챙겨갔었으니, 나도 참 유별났던 것 같다.
어떤 그림을 좋아할 때, 사실 어떤 부분에 꽂혀서 좋아하게 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대개는 어떻게 하면 색을 저렇게 쓸 수 있을까 놀라며 작품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피터 도이그의 그림도 그런 면이 있었다. 예술코너에서도 눈에 잘 띄는 자리에 화집이 진열되어 있던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이 작가 역시 오늘날 영국에서 상당히 촉망받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흔히 생각하듯 전통적인 예술의 도시가 파리 그리고 뉴욕이라면, 현대예술로 넘어 오면서부터는 런던과 베를린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영국에서 실험적인 추상회화로 런던 미술의 전면에 등장한 YBA(Young British Artist) 세대는 예술의 중심지로서 런던이라는 도시도 있다!라고 하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피터 도이그의 경우, YBA 세대의 작가들이 활약을 펼치던 시기보다는 늦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 자신도 YBA의 미적 태도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그래서 그가 직업화가로서 발을 내딛던 시기에 주류에서 빗겨나 있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화단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흔히 그의 작품을 한 단어로 압축할 때 쓰이는 '몽환적'이라는 형용사가 말해주듯, 그의 작품은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보편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포스팅을 하던 중에 찾아보니..2011년부터 2015년 사이에 7번 째로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로 집계되었다고..;;; 자꾸 금액적인 부분을 언급해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어찌 됐든 이단아적인 특성이 오히려 그의 성공요인이 된 셈이다.
누군가는 피터 도이그를 'a painter of elsewhere'이라 묘사했다고 하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작가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출신이지만 청년이 되어 미술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캐나다의 트리니다드라는 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의 그림 속에 광활한 자연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이질적인 공간에서의 경험들을 하나의 캔버스에 풀어내는 그의 탁월한 능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에 대해 생경함을 느끼게 한다. 첫눈에 그의 그림을 보면, 우선 그가 그린 풍경이 어떤 장면인지 한 눈에 들어오기는 한다. 그렇지만 부분부분들을 뜯어보다 보면 전체적인 풍경과는 다룬 새로운 형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그게 아마 피터 도이그의 그림을 읽어내는 재미가 아닐까.
<Blo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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