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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판즈(曾梵志: zeng fan zhi)주제 있는 글/Arte。 2016. 9. 18. 22:37
<풍경>
소더비(Sotherby's)와 크리스티(Christie's)가 양분하고 있는 미술 경매시장에서, 미술작품의 최고가 경쟁이 요새는 좀 잠잠한 것 같다. 사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어떤 작품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한들, 그 작품의 미적 가치를 알기도 어렵고 비평가들과 컬렉터들이 빚어낸 과열 현상쯤으로 생각하고 넘어가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관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와 사진 등 접근성이 뛰어난 대체재가 넘쳐나는 오늘날, 미술시장은 나름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이슈 메이커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와중에 눈에 띄는 점은 단연 아시아 미술의 약진이다. 일본 미술은 오래 전부터 서방세계에 소개되어 왔지만, 그밖의 아시아 미술은 그 동안 현대예술계의 변방에 머물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신흥국의 현대작가들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수요의 측면에서, 신흥국의 슈퍼리치들이 미술품 수집에 뛰어들면서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고, 그 결과 그들의 미적 기호가 미술품의 가격에 크게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둘째, 공급의 측면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서구권 작가의 미술품은 기본이요, 이보다 색다른 것, 좀 더 튀는 것, 남다른 것이 필요해진 것이다.
양측이 지향하는 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미술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아 졸업학기에 <예술경영>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중국의 예술시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발표자료를 준비할 당시, 마치 프로 골프선수의 한 해 상금 순위를 매긴 것처럼 현대작가들의 수입 순위가 나열된 데이터를 발견했는데, 상위권에 중국작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놀랐었다. 그냥 상위권도 아니고 당시 기점으로 판매순위 탑10에 드는 중국작가들만 여러 명이었다. 주제를 중국 예술시장으로 고른 것은 순전히 다른 주제와 겹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중국미술은 내게도 낯선 주제였는데, 중국의 현대미술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여러 자료들은 내심 좀 의외였다.
중국의 현대미술을 논할 때 이른바 아방가르드라 일컬어지는 4대 천왕;;이 있다. 장샤오강(张晓刚), 위에민쥰(岳敏君), 쩡판즈(曾梵志), 팡리쥔(方力钧)이 바로 그들이다. 이 글에 실은 작품들은 모두 쩡판즈의 것들이다. 쩡판즈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상설전시관 내에서도 시선을 끌어모으는 위치에 그의 대형작품이 걸려 있다. (크게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전시를 보러간지 오래 돼서 교체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첫 사진과 같은 조금은 난해한 풍경화가 걸려 있는데, 그때 함께 갔던 대학동기와 함께 입을 모아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던 작품이다. 어지러운 선(線)과 음영, 어두운 색채가 교차되는 와중에 어떠한 형상이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느낌 때문에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쩡판즈라는 작가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그의 <가면> 시리즈들이다. 앞서 언급한 중국 현대미술작가들이 아방가르드라 칭해질 수 있었던 것은,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비롯해 순탄치 않았던 중국 현대사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들의 노력에 기인한다. 그에 비해 쩡판즈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모티브에 천착하지는 않지만, '가면'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를 관조할 것을 유도한다. 때로 '고기'라는 소재를 모티브로 활용하기도 했던 그의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영국의 미술작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을 떠올리게도 한다.
여하간 (특히 회화(유화) 분야에서) 아방가르드 세대의 뒤를 잇는 중국의 신진 아티스트들이 어떠한 역량을 보여주느냐가 앞으로 중요하겠지만, 현재로써 중국미술이 미술시장에 이미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작년에 잠시 주춤해서 국가별 시장점유율로는 중국이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에 위치했지만, 수량 면에서는 여전히 가장 많은 미술품이 거래되고 있다. 참고로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0번째로 커다란 미술시장을 가진 국가에 진입했는데, 이는 일본보다도 앞선 순위이다. (※작년 경매를 통한 판매수익이 가장 컸던 작가는 다시 한 번 피카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대단한 저력인듯..)
축구선수의 이적료를 매기는 것만큼이나, 미술품의 가격 역시 인기의 변동이나 세계경제의 부침에 따라 크게 바뀌기 때문에, 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이 명료하고 투명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미술작품은 감상자가 수용할 때 좋은 느낌을 전달받았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인 것이지, 액면가가 그 작품의 가치를 전부 증명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 작가의 등장과 천문학적인 경매가가 회자되면서,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미술품의 미적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미술품 가격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미술품이 비자금 세탁의 수단에 이용되거나, 위작을 통해 쉽게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돈이 흥하는 곳에는 예술이 흥하는 법. 오늘날 중국이 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 방문이 흔해진 요즘 세상에서, 한번쯤은 자신의 미적 취향이 무엇인지,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때 마음 속으로 울림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최후의 만찬, 낙찰 당시 아시아 미술작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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