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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드라마/스티븐 스필버그/캐서린(메릴 스트립), 벤(톰 행크스)/116>
News is the first rough draft of history.
요즘은 주말 조조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작품들 중에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작품이 몇 개 있었는데, <더 포스트>의 상영시간이 우연히 맞다보니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이젠하워에서 닉슨 대통령 재임기에 이르기까지 60년대부터 줄곧 베트남전 전황(戰況)을 조작해 온 정부와 관료를 고발하는 워싱턴 포트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일전에 보았던 <스포트라이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담백한 느낌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캐릭터들을 조금씩 영웅화한다거나 감동요소를 넣기 위해 약간 부자연스러운 대사나 장면을 넣었다는 것인데, 거슬리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냥 담담하게 진술했어도 이들이 행했던 조용하지만 담대한 행보에 감동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뽑아낼 수 있었던 커다란 의의가 있었는데 크게 세 가지로 추렸다.
1. 언론의 기업화
조금은 생소한 경영·법 용어들과 셈법으로 첫 씬을 여는 이 영화는, 당시 지방의 군소 일간지에 불과했던 워싱턴 포스트가 가족경영을 고수해오던 기존의 경영방식에서 탈피하여 주식을 공개적으로 매매함으로써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상장기업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영방식의 커다란 변화는 영화에 일관된 장애요소로 등장하는데, 워싱턴 포스트의 의사결정권을 지닌 케이트가 투자처를 잃을까 고민하는 모습, 가까운 재계·관계인사들이 자신으로부터 등돌릴까 우려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특히 그녀는 맥나마라 국방장관―그녀의 가까운 조언자이자 베트남전 진척상황을 은폐한 장본인으로 등장한다―의 관계설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할 때 언론사가 얼마나 쉽게 독립성을 훼손당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트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 소신있는 결단을 내리고 또한 좋은 결과로 귀결된 것은, 물론 그녀―그리고 편집국장인 벤―의 용기도 큰 몫을 했지만 타이밍―너무 오랜 기간 국민을 기만해온 정부―과 운이 따라주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2. 알 권리와 안보
사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항에 명시되어 있는 언론의 자유는 차치하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안보 가운데 어느 것을 우위에 둘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대단히 미묘한 문제이다. 맥나마라가 작성을 지시한 문제의 펜타곤 페이퍼는 엄연히 국가의 기밀로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내부인에 의해 외부에 유출된다. 실제로 기사 작성을 진두지휘한 편집국장 벤은 법적 책임에 결부될 상황까지 처하지만, 연방대법원의 다음 다수의견은 꽤 명쾌하게 알 권리와 국가안보의 충돌지점을 돌파한다: In the First Amendment the Founding Fathers gave the free press the protection it must have to fulfill its essential role in our democracy. The press was to serve the governed, not the governors.
영화의 대사로도 나오지만 요(要)는 정부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단독으로 은폐한 사실이 안보라는 미명하에 비밀에 부쳐질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사실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 명쾌한 논리라 생각한다.
3. 여권(女權)
주인공 케이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언론인이자 기업의 운영자로서가 아닌 여성으로서 케이트가 읊었던 대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가 두 발로 걸으면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생각하지.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여자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해.' 정확한 멘트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여성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에 대한 진저리 같은 것이었다.
40대에 뒤늦게 언론사 경영에 나선 그녀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주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엄청 심각한 표정에 남자 넥타이 부대들. 회의실 내부의 안건을 궁금해 하며 문밖에 서서 자기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여성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를 잘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참 담대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물론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녀 역시 용기를 낼 수 없었겠지만, 성별이나 젠더와 무관하게 '누구나'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케이트는 몸소 보여준다.
Quality improves profitability.
사실 종이신문이 거의 멸종하다시피한 요즘 같은 시대에 지난 날의 언론을 반추하는 것이 시의성이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보다 정확하게는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개인이 원하는 언론을 엄지손가락 하나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위와 같은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질(質)이 수익성을 결정한다'는 그녀의 소신이 대변하듯, 오늘날 언론의 수준이 60년대의 언론의 수준보다 더 나아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오늘날 정보의 양은 방대해졌지만, 그만큼 어떤 언론을 택할 것인지 갈피를 잡기는 힘들어졌고 교묘하게 쓰여진 광고성 기사, 또는 마찬가지로 교묘하게 각종 프레임을 덧씌운 기사를 분별하기가 무척 곤란해졌다. 게다가 디즈니의 폭스 인수가 보여주듯, 언론사의 인수, 피인수, 합병, 피합병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특정 언론사의 논조(論調)란 것이 있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보지 않는 한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떠한 사실이 묻힐 수는 있어도, 조작된 사실이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뷰를 하다보니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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