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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유골(言中有骨)일상/film 2018. 4. 1. 16:23
<쓰리 빌보드/범죄/마틴 맥도나/밀프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 월러비(우디 해럴슨), 딕슨(샘 록웰)/115>
종잡을 수 없는 제목 때문에 별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영화인데, 안 봤으면 후회할 뻔 했다. 원제 <Three Billboard Outside Ebbing, Missouri>인 이 영화는, 인종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딸에게 저질러진 불의를 앙갚음하기 위해 두 발 벗고 나선 어느 여성(밀프레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들(특히 밀프레드와 딕슨)의 행동이 막무가내인데다 거침없이 대사를 읊기 때문에 이거 너무 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표현이 거칠 뿐 따지고 보면 틀린 얘기는 없다는 게 이 영화를 보는 묘미다.
가해자를 찾아나선 밀프레드는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성들의 잔인함에 맞서는 인물인 한편, 딕슨은 유색인종에게 폭력을 일삼는 경찰관으로 공권력의 부패와 인종차별을 스스로 폭로하는 인물이다. (영화 중간에는 밀프레드가 종교의 권위를 조롱하는 장면도 잠시 등장하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에 구태의연한 종교에 관한 비판도 영화에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하겠다) 여하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딕슨을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밀프레드와 함께 문제의 가해자를 찾아나서는 인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초반까지만 해도 밀프레드가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던 이 영화에서 딕슨이라는 인물은 존재감의 비중을 점점 늘려나간다. (인종주의에 가득찬 딕슨이라는 인물이 급격히 교화되는 장면에 대해 이견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감독 본인이 아일랜드계인 만큼, 19세기 초반 미국으로 넘어온 아일랜드 이주노동자의 거친 대사를 클리셰로 차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호불호가 꽤 갈린다고는 하지만 이걸 클리셰로 알아듣지 못했던 나는 마냥 재밌게 봤다. 여하간 <파고(Fargo)> 이후 인상깊게 본 범죄/스릴러물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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