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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야일상/film 2018. 3. 7. 23:31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기예르모 델 토로/드라마, 판타지/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리차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123>
본지가 좀 되어서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번에 이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만큼 생각도 정리할 겸 리뷰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냥 보고 마는 것과 달리 막상 글로 정리하다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기도 하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판의 미로>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기예르모 델 토로라는 인물은 몰라도 <판의 미로>를 아는 사람은 많았고, 나 역시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본지라 스페인어 공부에 한창 열을 올리던 시절 스크립트까지 구해서볼 정도였다. <퍼시픽 림> 이후 기예르모 델 토로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지만, 막상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 다가오니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 마음먹었다. 기왕이면 상영 후 리뷰를 진행하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고 싶었지만, 평일에 영화를 보는 것이 사치가 된 지금은 주말에 영화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워낙 우화(寓話) 같은 이야기라서 해석의 여지가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뽑아낸 한 갈래의 맥락은 '소외받은 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제작기간 3년의 공을 들인만큼 영화의 미쟝센이 엄청 근사하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영화 속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이 '소외받은 이'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A. Elisa Esposito
If we do nothing, neither are we!
가장 먼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일라이자. 영화의 도입부에서 "목소리 잃은 공주(a princess without a voice)"로 묘사되는 일라이자는 말 그대로 수화로 대화를 하는 농아(聾啞)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미소간 냉전 대치가 한창이던 1960년대, 공간적 배경은 볼티모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녀가 사는 곳은 허름한 극장 위의 아파트이고, 그녀는 이웃집에 사는 나이든 화가를 벗삼아 지낸다.
토파즈 빛깔의 물 속에서 부유하는 형상으로 처음 실루엣을 비추는 그녀는, 뒤이어 관능적인 씬과 함께 자신의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낸다. 비록 말 못하는 그녀는 침묵의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도입부에 묘사되는 그녀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은 곧 그녀의 내면적인 따뜻함, 그리고 그녀가 그리는 따뜻한 세계관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소통능력을 보여주고 참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침묵으로서 보여주는 멋진 캐릭터다.
B. Amphibian Man
When he looks at me, the way he looks at me.
He does not know what I lack or how I am incomplete.
He sees me for what I am, as I am.
수륙(水陸)을 넘나들며 사람처럼 직립보행이 가능한 정체불명의 양서류. 남미에서 잡아올려진 이 생물체가 낼 수 있는 소리라곤 아가미를 바짝 세워 굉음을 내는 정도지만, 나름대로 학습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그는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어설프게 사람을 닮았다는 거북함 때문에) 연구소의 외딴 공간에 결박되어 실험대상이 된다.
호기심 많은 이 생명체는 일라이자가 청소를 위해 출입을 할 때마다 일라이자를 관찰하는데, 이 생명체의 순진무구함에 흥미를 느낀 일라이자는 이내 그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또한 곤경에 처한 그를 돕기 위해 한 발짝씩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이 생명체 또한 그녀의 순수함과 따뜻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런 스토리가 대사 없는 장면들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다.
C. Zelda
She, she is sayin' "Thank you"!
일라이자가 농아,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소외받는다면, 일라이자의 절친 젤다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눈에 띄는 인물이다. 거친 언행으로 스토리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는 이 인물은, 일라이자가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기지를 발휘해 어려운 상황을 풀어나가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또한 극중 남성중심주의에 가장 앞장서 말대꾸(?)를 하는 당찬 여성이기도 하다. 어느날 연구소 보안을 위해 정부에서 파견된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은 매우 마초적이고 강압적인데다, 폭력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틈틈이 등장하는 젤다의 대사들은 바늘로 찔러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스트릭랜드를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멍청해 보이게까지 만든다. 이런 '비꼼'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이다.
D. Giles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일라이자의 이웃으로 사는 나이든 화가라 소개했던 자일스. 그는 영화에 빠져서는 안 될 공기같은 인물이다. 영화를 액자형 스토리로 완결시켜주는 도입부와 엔딩씬에서 내래이션을 바로 자일스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사가 참 명대사다. (위에 적어놓은 대사가 영화의 엔딩에 나오는 대사다)
일라이자와 마찬가지로 쓸쓸히 혼자 살아가는 그는 성소수자다. 1960년대 볼티모어에서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일반시민들에게 어떤 식으로도 허용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상업용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그는 이미 사진을 활용한 광고가 활약하기 시작한 시대에 도태되어 가는 그림꾼이기도 하다. 어쩐지 변변치 않아보이는 머리 희끗한 이 노년의 남성은 그러나, 이웃 일라이자를 묵묵히 응원하는 인물이다. 비록 생의 끝자락에 있을 지언정 그의 마음씨만큼은 때타지 않은 소년의 그것과 같다.
E. Dr. Hoffstetler
I'm not competitive, I don't want an intricate, beautiful thing destroyed!
또 한 명의 요주인물, 바로 호프스테틀러 박사다. 소련에서 파견된 스파이지만 그의 역할이 악역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미국 정부를 대변하는 스트릭랜드야말로 미운 캐릭터다. 미국의 입장에서 반드시 처치해야만 하는 호프스테틀러라는 캐릭터는, '적(敵)'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불필요하게 또는 무의미하게 수많은 적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쟁이라는 단어로 위장한 반목과 대립이 우리 사회를 퇴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무조건 흑백논리를 내세우거나 '노(No!)'라고 대답하는 것만큼 쉬운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뒤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예스'의 관점에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답이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다시 되짚어 볼 때, '인간'이라는 위치에서 사회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싫어하는 표현들은 가령 이런 것들이다. 어차피..(안돼), 일단..(이번엔 넘어가고~), 근데..(싫어), 등등. 말이란 참 무서운 것이 사람을 길들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레토릭애 약하고 이에 능한 사람들은 세치 혀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곤 한다.
그런 그들에게 말없는 일라이자가 날리는 소리없는 일침..'~'
F**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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