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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사이에서 건설적인 관계를 모색하다일상/film 2018. 1. 15. 00:03
<수면의 과학(La science des rêves)/드라마, 판타지/미셸 공드리/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스테파니(샤를로뜨 걍스부흐)/106>
Distraction is an obstruction for the construction.
―Stephanie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이 꾸준히 사랑 받으면서, 덩달아 그의 이전 작품들도 재조명되는 모양이다. 최근 2006년에 제작된 <수면의 과학>이라는 영화가 재개봉을 했길래 안 보고 배길 수 없었다. 나 역시 <이터널 선샤인>을 매우 좋아하는 고로*-* 그렇기는 해도 미셸 공드리의 작품을 많이 본 것은 아닌지라, <이터널 선샤인> 이외에 봤던 영화는 <무드 인디고>와 <마이크롭 앤 가솔린> 뿐인데, 영상을 참 예쁘게도 만든다는 생각은 들었어도 다른 두 작품이 인상적이라는 느낌은 못 받았다;;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 역시 미셸 공드리의 작품이라는 타이틀도 컸지만, <아모레스 페로스(Amores Perros)>와 <네루다>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출연한다는 점이 더 관심을 끌었다.
You have a serious problem of distorting reality.
You could sleep with the entire planet and still feel rejected.
미셸 공드리가 <이터널 선샤인>에서 다룬 것이 연약한 인간의 심리와 기억의 왜곡이라면, <수면의 과학>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 무의식에 내재된 본성, 제어할 수 없는 강박관념과 같은 것들인데, 미셸 공드리가 다루는 주제가 대개 그러하듯 이야기의 범주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주인공 '스테판 미루'는 성숙한 어른이라기엔 정신적으로 매우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로,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놓인 망상에 해석을 덧붙이고 덧붙여 스스로를 갉아먹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그와 동명이인이기도 한) 스테파니를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보여주는 행동들은 유치하고 가히 난해하기까지 하다. 스테판 본인 역시 자신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가 찾는 해법은 늘 꿈속으로 도망치는 것 뿐이다.
Things'll turn out the way you want, if you could just stop doubting that I love you.
스테판이 보이는 감정표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스테파니는 혼란을 느끼지만, 동시에 스테판이 올바르게 감정을 제어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어루만져준다. 따라서 그녀와 관계를 진전시킬 수록 스테판이 뿌리내리고 있던 망상의 세계는 점점 그 기반의 취약함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그의 허술한 세계는 '골판지'로 묘사되기에 이른다. 골판지 세계(?)에서 살아가는 스테판은 심지어 경찰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종이로 된 차를 타고 도망가다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지기도 하는데, 골판지라는 소재 자체가 그가 쌓아올린 망상의 세계가 얼마나 사상누각에 불과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A heart that sighs has not what it desires.
시종일관 스테파니가 스테판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료하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 자기 기만을 하지 말라는 것. 어찌 보면 현실을 외면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괴로워 하는 스테판이야말로 인간적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스테파니가 스테판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일 수도.. 영어 대사에다 불어, 스페인어가 섞여 나와서 듣는 재미(?)가 있기는 했어도, 이런 느낌의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만으로도 족하고 또 <이터널 선샤인>이 미셸 공드리의 세계관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미셸 공드리 특유의 섬세하고 창의적인 연출기법 덕에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던 점―가령 엉뚱하고 기괴한 장면들을 저 장면에서 배우는 도대체 무슨 감정에 몰입하며 연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 들었던 것이 그렇다―에서 그 나름의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단 영화였다.
꿈에 그리던 행복의 나라로오~~~^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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