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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천단(天坛, tiántān)여행/2018 중국 北京 2018. 5. 20. 23:45
오늘의 첫 행선지는 천단!
숙소를 나서자 간밤에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던 후퉁이 모습을 드러냈다
숙소가 동쓰(东四)역과 덩스커우(灯市口)역의 중간에 있었는데 주로 덩스커우역을 이용했다
베이징의 하늘은 무표정했다. 흐리지도 않고 맑지도 않은, 미세먼지가 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청명하지도 않은 하늘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여행하는 입장에서 햇빛이 지나치게 쨍쨍 내리쬐는 날씨보다 이런 날씨가 더 낫긴 했지만, 내심 베이징란(北京蓝)을 기대했던 건 너무 사치였나 싶다.
이번 여행은 아버지와 동행한 여행이었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여행을 한 적은 없어도 아버지와 해외를 가본적은 없어 노동절 연휴를 이용해 베이징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3박 4일로 장거리 여행을 하기는 어렵고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을 택한 것은 중국을 알 필요가 있겠다는 내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오랫동안 일본어를 공부하긴 했어도 존재감이 더 클 법도 한 중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실크로드 여행은 중국을 접한 첫 계기였지만, G2며 불공정한 경쟁자이며 실제 중국의 존재감을 느낀 건 아무래도 회사에 다니면서부터인 것 같다.
각설하고, 우리의 첫 행선지는 천단이었다. 여행 전 날씨와 숙소, 식사 세 가지에 가장 신경을 쓰다보니, 가고 싶은 관광지는 정해두었지만 정작 일정이 허술했다. 시간과 비용, 체력을 아낄 수 있는 최적의 관광지가 어디일까 고민하다가, 덩스커우역에서 환승없이 곧장 지하철로 연결되고 자금성보다는 면적이 작은 천단이 낫겠다 싶었다. 그러나 고려하지 않은 돌발변수가 있었으니, 중국사람들이나 한국사람들이나 노동절 날짜는 같았다는 점이다'~' 어딜 가나 인파가 대단했는데, 이 변수가 이날 오후 일정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기년단(祈年壇) #1
기년단(祈年壇) #2
기년단(祈年壇) 빠져나오는 길
천단에 가는 방법은 지하철로 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베이징의 지하철은 시설이 오래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노선이 잘 짜여 있어서 편리한데, 가장 큰 장점은 승강장이 섬식으로 되어 있어서 열차를 잘못 타도 반대방향 열차를 간편히 탈 수 있다. 그리고 주요 노선의 경우에는 배차 시간이 2~4분 정도로 짧아서 대기시간이 짧다. 반면 단점이라 한다면 주요 관광지가 여러 노선에 분산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환승할 일이 꽤 있었다. (서울의 2호선 같은 순환노선만 두 개나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차를 타기 전에 반드시 공안의 물품 검색을 거쳐야 한다는 점! 델리를 여행할 때도 지하철이나 열차를 오를 때마다 똑같이 검문을 거쳤었는데 베이징 여행 때는 유달리 이 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여간 천단에 가기 위해 가장 편한 방법은 천단동문역에 내려 입장하는 방법이다. 전문(前門; 정문)과 서문(西門)으로도 입장할 수 있지만 열의 다섯은 동문으로 입장하는 듯하다. (정문으로 입장하는 인원도 꽤 있었다) 우리는 천단동문역이 숙소가 자리한 덩스커우역과 마찬가지로 같은 5호선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 매우 간편히 천단에 이르렀다. 입장시간이 오전 8시 30분인 것으로 알고 좀 서둘러 갔는데도 매표소가 사람들로 붐볐는데, 이는 전조에 불과했으니 오후에 간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은 가관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금성은 인파 때문에 입장 실패-_-;;)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 천단. 이 천단은 중학교 때부터 언젠가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장소였다. 일반적으로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사각형의 구조를 갖추는 동양의 옛 건물들과 달리 이 건물은 원형이라는 점이 신기해서 사회 시간에 과제물로 작성했던 기억도 있다ㅎㅎ. 옛 로마인들은 세상이 멸망할 때 하늘이 사각형으로 바뀐다고 생각했다는데,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하늘을 둥근 이미지로 그렸다고 한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이 공간에 원형의 모티브가 자주 활용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하늘이 둥글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지구밖 세상을 그려본 적 없던 고대의 중국인들이 되어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쉬웠던 점은 사람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꽤 무질서해서 천단의 내부를 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나는 기년단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본 뒤, 남은 유적지가 위치한 서쪽 방면으로 향했다.
인공림이 꽤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나무들 이외에 엄청 커다란 향나무나 소나무도 시선을 끌었다
쌍환만수정(雙環万壽亭)
아름드리 나무와 정자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본 정자
워낙 공원이 커서 공원에만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을 별도로 파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천단공원에는 유적지에 걸맞지 않은 풍경도 더러 보였는데
중장년층이 모여 여기저기서 마작을 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지도를 못 읽는 편은 아닌데, 보통 지도를 읽을 때 축척까지는 보지 않다보니 각 유적지 간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천단공원을 이루는 주요 유적들은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간의 거리가 상당하다. 제법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는데도 천단공원의 모든 구역을 돌아보는 데 오전 반나절을 온전히 할애했다. 구역간의 거리가 멀기는 멀었어도 산책로가 시원시원하게 잘 조성이 되어 있어서 오래된 나무들을 둘러보며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베이징은 서울보다 위도가 높기 때문에 서울보다는 봄이 늦을 거라 생각했는데, 베이징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날씨예보를 확인해본 바 이곳은 이미 완연한 봄날씨였고 그만큼 수목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녹음이 짙고 그늘도 넓었다.
서문 방향으로 향한 뒤 마주한 유적은 쌍환만수정. 천단만큼 규모로 압도하는 건물은 아니지만 주변 조경과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중국의 건물은 화려한 경향이 있는데 장식적인 건축양식이 많아서인 것 같다. 란저우에 있을 때도 똑같은 모양의 정자를 포개놓은 모양의 정자들을 어렵지 않게 봤었는데,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지닌 우리 정자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여하간 이 쌍환만수정이라는 정자는 청나라의 건륭제가 모친의 50세를 기념하여 난하이(南海)에 지었던 것을 1977년 천단공원으로 옮겨온 것이라 한다. 푸른 나무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꽃들이 흐드러지는 이 곳에서 아버지와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이제는 남쪽 방면으로 향했다.
재궁의 해자
재궁(齋宮)
재궁 내부
눈에 띄는 자리에 놓여 있던 입상인데 정체는 잘 모르겠다;;
나무 껍데기가 인상적이었던 이름모를 나무
쌍환만수정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려오면 재궁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천단에 제사를 지내던 황제가 삼일간 묵으며 재계(齋戒)하며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던 공간이다. '재(齋)'라는 한자의 쓰임이 흔치 않은데 유적지 내부에 떡하니 '재궁(齋宮)'이라는 건물이 있는 것을 보면서, 한중일 삼국이 같은 한자문화권에 묶여 있으면서도 한자의 활용방식이 꽤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재궁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사를 행하는 곳에 걸맞지 않게 네모난 해자가 둘러져 있었는데, 물은 흐르지 않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재궁의 정문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청록색 지붕의 비교적 단아한 건물이 나타났다. 중국의 건물은 워낙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보니 재궁을 보고도 수수하다는 느낌이 든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개인적으로 중국건물에서 가장 중국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은 기와의 색깔인 것 같다. 약간 불순물이 섞인 녹색인 것 같으면서도 토파즈 빛깔이 섞인..'~'
재궁 외벽의 색을 다시 칠하는 사람들
원구(圓丘)
황궁우(皇穹宇)
재궁에서 곧장 동쪽으로 향하면 기년단의 정남방(正南方)이 되는데 이곳이 바로 실제 황제가 제사를 행했던 원구라는 곳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의 천단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으니 바로 환구단이라는 곳이다. 지금은 호텔조선에 둘러싸여 초라한 장식품처럼 되어버린 공간이지만, 근대말 청과 일본이라는 열강에 에워싸여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여 있던 대한제국의 고종이 국가의 위신을 높이고자 지어올린 것이다. 천자를 자처한 중국, 천황을 옹립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왕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적인 정치체제를 지니면서도 중국이나 일본처럼 대외적인 세력 행사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었으니, 한창 강대국들 사이에서 종횡무진 외교를 펼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외교를 떠올려 보았다.
한편 이 천단이라는 공간은 1406년 명의 영락제에 지어져 청에 이르기까지 기우제를 비롯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건물의 용도에서 알 수 있듯 천단은 도교사상에 기반한 건물이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이 원구는 기우제며 풍년을 기원하던 곳인데,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비던 이곳 천단공원에서도 가장 무질서햔 편에 속했다;; 다들 원구의 정중앙에 위치한 돌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어 했는데, 우리도 여기서 사진을 남기려다 호되게 당했다;; 나름 줄로 보이는 곳에 줄을 서서 계속 기다리는데 다른 곳에 새로운 줄이 또 생기고 새치기도 너무 심했던 데다, 정작 순번이 돌아왔는데도 다른 사람이 버럭 소리지르며 끼어들어서 당황..=_= 아무리 앞으로 볼일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관광객들의 시민의식이 영..
다시 동문으로 되돌아가는 길
재생정(宰牲亭)
원구와 황궁우를 거쳐 돌아나오는 길에는 꽤 진귀한 광경을 봤는데, TV로만 보아오던 중국의 거리 결혼시장(?)이었다. 요새 베이징에서는 공원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혼인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혼기가 된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식들의 프로필을 공유하는 장소다. 이게 화제가 되었던 것이 매우 경쟁적인 중국의 결혼시장 때문인데, 중국에서는 호적의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교육의 여건이 훌륭한 베이징에 호적을 지닌 배우자를 찾기 위해 베이징 호적을 사고 파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자녀들의 프로필이 적힌 A4 용지 크기의 종이의 가장 윗줄에 적혀 있는 것은 '北京人(북경사람)'. 북경사람인 배우자를 찾는 경쟁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니, 부모들까지 두 팔 걷어붙이고 흥정에 나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호기심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봤더니 인산인해 중에서도 인산인해였다. 바닥에는 꼬깃꼬깃한 A4 용지가 줄을 이어 산책로 몇 개를 메우고 있는데, 출신, 학교, 직업, 키, 나이에 이르기까지 자녀를 어필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실려 있다. 결혼정보업체가 성업중인 우리나라라고 뭐가 다르겠냐마는 이렇게까지 흥정이 이뤄지는 것을 보니 결혼이 사실상 금전거래가 된 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천단을 꼼꼼히 둘러보다 보니 오전을 꽉 채워서 썼다. 이제는 (드디어) 카오야를 맛보기 위해 동문을 통해 밖으로 다시 나왔다.
칠성석(七星石)
뒤의 인파가 자녀들의 혼인을 주선하기 위해 나온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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