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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천안문광장(天安门广场, Tiān'ānmén Guǎngchǎng)여행/2018 중국 北京 2018. 5. 21. 23:23
인민영웅기념비(앞)와 마오주석기념당(뒤)
국가대극원 바로 옆 동중후통(东中胡同) 과 동쏭슈후통(东松树胡同) 일대
후통의 낡은 건물 #1
후통의 낡은 건물 #2
카오야로 포식을 한 후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천안문 광장! 원래는 쳰먼(前门)역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정차하지 않고 다음역인 화핑먼(花平门)역에 이르러서야 열차가 멈췄다. 연휴로 인한 인파를 수용하기 어려워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국가의 주요시설이 있는 곳이라 정차를 안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화핑먼 역은 원래 거쳐가려 했던 국가대극원과 멀지 않아서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쳰먼에 올라 바라보려 했던 베이징 시내의 풍경이 좀 아쉽기는 했다.
역에서 내리니 앞을 바라보며 열심히 걷는 푸른 눈동자의 외국인이 보였다. 딱 봐도 우리와 동선이 겹칠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천안문 광장으로 향하는 한동안 같은 길을 걸었다. 미세먼지를 의식해서인지 방독면 스타일(?)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지도로 보기에는 국가대극원이 코앞이고 천안문광장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화핑먼역 일대는 매우 수수한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개발의 손이 뻗치지 않은 후통도 여럿 남아 있었다. '소털보다 많은 후통'이라는 표현이 있다고는 하지만, 베이징 한복판에 이렇게 오래된 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 특색 있었다. 그리고 천안문 광장에서 다시 한 번 인파에 치이기 전까지 매우 한적한 시내풍경을 즐길 수 있었던 마지막 지역이기도 했다'~';;
란저우 역을 시작으로 실크로드 일대를 여행할 때에도 느낀 사실은 중국의 전통가옥은 폐쇄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묵었던 숙소 사합원만 해도 그렇다. 사합원은 이중의 사각형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집안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형태다. 창문도 많지 않고 그마저 있는 창문도 벽 높다란 곳에 놓여 있어서 최소한의 햇빛만 들일 수 있는 정도다. 일면 대단히 개인주의적인 중국인들의 모습을 가옥형태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
인민대회당 옆을 지나가는 공안? 군인? 행렬..
전국인대(全國人大) 옆
중앙은행 옛터
곧이어 천안문 광장
후통 일대를 지나 오른편으로 꺾으니 방금 전까지의 풍경과는 완전 딴판인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막 UFO가 내려앉은 듯한 형상의 국가대극원은 지극히 현대적이고 또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스케일도 어마어마했고 기하학적인 형태 또한 멋있었다. 그늘 하나 없는 이 일대 공원을 지나 관공서가 밀집한 거리로 접어들었다.
점점 더 경비가 삼엄해지는 것으로 보아 천안문 광장에 가까워지는 모양이었다. 국가대극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옥상으로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인민대회당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관공서들의 사잇길로 들어서니 공산국가 느낌의 칙칙한 건물들이 무미건조하게 정렬하고 있었다. 가로수마저 없었다면 거리의 풍경이 꽤나 심심했을 것 같았다. 국가대극원이며 인민대회당이며 건물의 규모가 워낙 커서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번지수를 제대로 짚었다. 관공서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바로 검문소가 자리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가 뜻하지 않은 고생의 시작이었으니..
전문(前門)
천안문 광장!
검문소 앞에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관광객만큼 공안도 많아서 그만큼 검문소의 줄도 빨리 줄어들었지만, 수많은 인파에 그냥 질려버렸던 것 같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에 해당하는 천안문 광장. 광화문 광장은 지금도 시민의 목소리가 활발하게 오고가는 공간인 반면, 천안문 광장은 시민들의 외침이 폭력에 의해 묵살되었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천안문을 보겠다고 구름처럼 모여든 이 중국인들은 과연 1989년 일어난 자국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글도 페이스북도 통하지 않는, 천안문 사건에 관해서라면 일체의 검색이 허용되지 않는 이곳에서 말이다.
중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천안문 사태는 1976년 1차 운동, 1989년의 2차 운동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공간적인 공통점만 있을 뿐 사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흔히 '천안문 사태'라고 할 때에는 1989년 4월부터 6월에 걸쳐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참고로 1차 천안문 사건은 저우언라이의 사후 그를 기리며 시민들이 추모의 목적으로 천안문에 모인 것을 말한다) 여하간 마오쩌둥에 의해 10년간 단행된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사회에 남은 커다란 후유증과 중국정부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불만이 폭발한 시민들은 천안문 거리로 나오지만, 6월 4일 중국정부는 학살에 가까운 폭력을 통해 시민들을 진압한다. 지금도 당시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군 진압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데, 용케도 중국정부는 그 일이 있은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당시의 일을 덮어두고는 있으나..여러 역사서가 말하건대 이러한 정보 통제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정부에서 6월 4일조차 금지 검색어에 포함시켜서, 이 날의 사건을 5월 35일이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해프닝도 있다고..=_=;;)
앞에서 바라본 인민대회당
인민영웅기념비와 그 앞 쑨원(孙文)의 얼굴
삼엄한 경비
그래서인지 몰라도 광장이라고는 하는데 도무지 광장으로서의 개방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광장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검문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광장에 들어섰다는 기분보다는 광장에 갇혔다는 역설적인 기분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는 공안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시민들도 어떤 소통의 공간에 들어섰다기보다 천안문 광장에 커다랗게 내걸린 마오쩌둥을 우상숭배하기 위해 모여든 유령 같아 보였다면 과장일까-/-;;(하하) 여하간 한 마디로 말해 마음놓이는 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사람이 워낙 많아서 잠시 아버지를 시야에서 놓쳤다. 당시 중국유심칩이 내 휴대폰에서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던 상황이라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천안문!
오문(牛门)
역이 폐쇄된 것은 쳰먼역뿐만이 아니었다. 천안문 서역과 천안문 동역도 폐쇄된 상태였는데, 어렵사리 지하도를 통해 다시 한 번 길을 건너니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검문소=_= 아니 천안문에 가려면 일단 광장을 거쳐야 하는데 광장에서 검문을 했으면 됐지 왜 또 검문인고.. 천안문에 오를 수가 있다길래 천안문에 오르려고 했더니 또 검문을 거쳐야 하길래 포기.
자금성이라도 제대로 보자 생각하고 자금성 매표소로 향했는데 자꾸만 직원이 입장을 못하게 했다. 중국어는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눈도 안 마주치며 귀찮다는 듯이 중얼거리니 뭐가 어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자금성(고궁박물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안문 다음 다음문인 오문을 통해야 하는데 천안문과 오문 사이만 해도 거리가 꽤 된다. 표를 구하려고 헤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천안문을 지나간 이상 다시 천안문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단다. 도대체 왜 가는 길마다 통제를 하는 거여...-_-
당황스러움도 당황스러움이지만 점점 짜증이 나는데 우여곡절 끝에 오늘의 표가 동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후 세 시경의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점은 표를 예매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고, 예매표는 하루에 8만장이 나오는데 이미 예매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예매를 해야 한다는 건 사전에 듣지 못한 일이었고―연휴로 인한 인파 때문에 일시적으로 입장표를 제한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매표를 운영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표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안내센터에서 꼬마는 담배를 피우고..또 다른 안내센터에서는 다리를 꼬고 앉아 거만하게 표 없으니 별 수 없다는 직원의 태도며...가로수에 쭈그리고 앉아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래도 유적지 안에 와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뻐끔뻐끔 담배를 피는 모습도 짜증스럽기만 했다.
여하간 표 판매에 관해 공지가 제대로 안 됐던 건 확실해 보였다. 나 같은 외국인들은 매표소 근처에서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었으니까. 반면 에이전시에서 예매를 대행한 게 분명한 단체 관광객들은 고궁박물원에 입장하기 위한 또 다른 검문소에 줄을 서고 있었다. 여하간 나중에 영어가 통하는 중국인 일행에게 물으니 본인들도 표가 없어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는 길이란다. 뭐..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 표를 8만씩이나 팔더라도 오전에 표가 동나는 건 시간문제인 듯 했다. 유적지를 관리하는 차원에서라면 이런 예매방식도 이해는 하겠는데, 문화재에서 보여준 시민과 직원들의 무질서함, 무례함은 실망스러웠다.
그나저나 자금성에 입장할 수 없게 된 건 어찌 할 수 없다고 해도 천안문으로 되돌아나갈 수 없다고 하면 도대체 오문을 어떻게 벗어나야 된단 말인가...좀 전까지는 남북으로 우왕좌왕 했는데 이번에는 오문 앞의 동문과 서문을 발바삐 오갔다. 동문으로나 서문으로나 눈에 들어오는 건 넓게 뻗은 해자와 가장자리의 산책로 뿐. 자금성을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서문을 나서 중산공원(中山公園)을 가로지르는 것이라 판단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중산공원을 입장하는데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으니 이게 무슨 요지경인가 싶었다'A' 나는 길이 있어서 천안문 안으로 흘러들어 왔고, 표가 없다길래 그저 빠져나가고 싶을 뿐인데, 그러한 까닭으로 통행료를 내야 하니 말이다'a' 어째 오후의 여행일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자금성의 해자(垓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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