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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없다주제 있는 글/Second Tongue 2016. 7. 28. 21:36
여러 가지 외국어를 배우고 서로 다른 말들을 비교하다 보면,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라마다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연히 우리말을 다른 나라 말과 비교할 때가 있는데, 우리말에서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이 '없다'라는 표현이다.
'있다'라는 말의 정반대에 있는 '없다'라는 표현은 많은 문장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표현인데, 다른 나라 말에서는 보통 '있지 아니하다(않다)'로 표현된다.
영어 (be / not be)
중국어 (在 / 不在)
스페인어 (ser / no ser)
독일어 (sein / nicht sein)
일본어 (いる / いない)
한국어 (있다 / 없다)
유달리 우리만큼은 사물이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대해서 '없다'라는 별도의 어휘를 사용한다.
한국인은 '무엇인가 없는 상태'를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 비해 각별히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없음에 대해 불안해 하거나 과잉의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있음'과 '없음'의 문제를 나라별로 들여다 보면 좀 더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일본어의 경우, '있다'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일본어
いる[iru] 생물의 존재(있음)을 표현
ある[aru] 무생물(일반적으로 사물)의 존재(있음)을 표현
"猫がいる(고양이가 있다)"
"そばにおもちゃがある(옆에 장난감이 있다)"
구분에 따르면 '고양이(생물)'는 いる, '장난감(무생물)'은 ある를 쓰는 것이 옳다.
이쯤에서 끝난다면 참 좋으련만, 모든 생물이 いる를 사용할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처럼 움직임이 있는 생물은 いる를 쓰지만, '풀'처럼 움직임이 없는 생물(물론 과학적으로 땅에서 자라나 다시 땅 속으로 썩기까지 엄밀한 의미에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은 いる를 쓸 수 없다. 이 때에는 ある를 써야 한다. 만약 누군가 '풀이 있다(いる)'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대상을 의인화한 것이 된다.
"問題がある(문제가 있어)”
참고로 추상적인 관념에는 ある를 쓴다. 이처럼 생물과 무생물, 때로는 자연까지 정밀하게 구분하는 일본어를 접하다보면, 자연을 도구로 간주했던 서구문명을 일본인들이 금방 흡수한 것도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에스빠뇰~
이에 비해 스페인사람들이 존재방식을 나누는 방식은 다소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이들은 '일시적이냐 영구적이냐'를 기준으로 쓰이는 동사를 달리 한다. 실존주의 철학을 이끌었던 독일과 프랑스도 자국의 언어에 이만큼 미묘한 표현을 갖고 있지는 않다.
ser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essential, permanent)
estar 일시적이고 사건적인 것(accidental, temporary)
"나는 지금 영화관에 있는데(Ahora estoy en cine), 영화가 엄청 재미있다(y la película es muy divertida)"
여기서 estoy는 estar의 1인칭 형태이고 es는 ser의 3인칭 형태인데, '내 현 위치'는 일시적인 반면 '영화의 재미'는 영화 자체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a. "Él es muy orgulloso(그는 정말 오만하다)"
b. "Estoy orgulloso de ti(나는 너가 자랑스럽다)"
영어로는 단순히 be 동사에 해당하는 ser/estar의 쓰임새가 서로 다른 까닭에, 같은 형용사라도 ser를 쓰느냐 estar를 쓰느냐에 따라서 의미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똑같은 orgulloso를 두고 앞의 예문(a)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뒤의 예문(b)은 긍정적인 뉘앙스를 갖기 때문에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a는 개인에게 내재된 기본적인 성향/성격을 나타내고, b는 현재의 감정상태를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일본어의 ある/いる에 비해 스페인어의 ser/estar 구분은 좀 더 까다롭긴 하지만, 계속 쓰다보면 곧 익숙해진다.
그밖에 중국어도 있음을 나타낼 때 경우에 따라 在와 有가 함께 쓰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내공부족으로 자세한 설명은 어렵다^^;; 왠지 아랍어처럼 문화권이 아예 다른 지역의 언어에서는 존재에 관해 또 다른 구분방식을 갖고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이것도 잘 모르겠다... 영어나 독일어에서도 아직까지 뚜렷한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ㅋㅋ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건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다:D jaj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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