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10/ 두 번째 캐피톨 힐(Capitol Hill Again)여행/2015 미국 북서부 2016. 8. 22. 20:57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앞에서, 입구를 지키는 돼지 동상 옆으로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돼지 발자국이 길 위에 박혀 있다>
프레몬트에서 캐피톨 힐로 가기 위해 가장 빠른 길을 검색하니, 웨스트 레이크 역 앞에서 환승하라는 정보가 떴다. 겸사겸사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다시 한 번 지나치게 됐는데, 잠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입구를 지키는 돼지 동상 근처에 서서 동상의 바로 뒷편에 위치한 연어 가게를 구경했다. 연어를 사는 사람은 없었어도 가게 앞에 사람들이 인파를 이루어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가게의 점원들이 힘찬 구호를 붙여가며 연어를 옮기고 손질하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잠시 스타벅스 1호점에 들러, 기념품으로 머그컵을 하나 샀다. 여기는 언제 와도 사람들로 문전성시여서, 커피를 마시려고 해도 그냥 다른 카페를 이용했었는데, 마지막날인 만큼 일부러 들렀다. 간단히 용무를 마치고 다시 캐피톨 힐로 걸음을 서둘렀다.
<목적지 도착, 무지개 색깔의 횡단보도, Blick은 화방용품을 취급하는 가게인데 전국적으로 지점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처음으로 들렀던 캐피톨 힐은 캐피톨 힐의 북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캐피톨 힐에 오면 가장 들르고 싶었던 The Elliot Bay Books Company는 첫 방문지였던 Volunteer Park로부터 꽤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마지막 날의 남은 일정으로 캐피톨 힐의 남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굳이 이 미국 땅까지 와서 서점을 구경하는 것, 그것도 포틀랜드에서 Powell's City of Books를 두 차례나 들르고서 또 서점을 들른다는 것, 어찌 보면 유별나기는 해도 꼭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ㅠ 본인도 캐피톨 힐 일대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했지만, 동생 입장에서는 서점이 전혀 본인 취향이 아니었을 텐데 묵묵히 따라와줘서 고마웠다.
<The Elliot Bay Book Company, 동네에 이런 서점 하나 있으면 매일같이 올 텐데>
사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입장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막연한 지식밖에는 갖고 있지 않았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북동부와 LA/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캘리포니아를 축으로, 시카고, 마이애미, 휴스턴 같은 굵직굵직한 도시들이 있다는 것 정도...그리고 수도 워싱턴 DC, 대학의 도시 보스턴,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 등등.. 미국에 51개 주가 있다는 걸 알아도, 각각의 주가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지는 알 리 없었고, "미국은 주(州) 하나가 우리나라 영토보다 크단다"와 같은 귀에 익은 말들로 익숙한 곳이었다.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대학을 공부하는 게 꿈이라 한때 관심을 갖고 미국대학에 대한 정보를 이것저것 찾아봤던 적은 있었지만 이 역시 인터넷에서 건져올린 막연한 정보조각일 뿐. 각설하고, 이런 맥락에서 이번 여행을 통해 들렀던 미국 서북부도 내 관념 속에서는 그냥 미국 서부로 퉁치던 지역이었다. 그냥 캘리포니아와 함께 얼버무려진 곳이었다. 물론 캘리포니아의 작렬하는 태양과 야자수, 시원한 파도 따위는 없었지만;;
본론에 앞서 서두가 너무 길었는데, 요컨대 하고 싶은 말은 시애틀과 포틀랜드를 비롯한 워싱턴 주, 오레건 주 일대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서부의 다른 곳을 방문해보지 않은 나로서 너무 섣부른 결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터잡고 사는 곳에 대한 분명한 자부심과 긍지가 있었다. 일례로 The Elliot Bay Book Company에만 해도 워싱턴 주의 아마추어 작가를 발굴하는 문예평론지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게 진열돼 있었는데, 불과 한두 개 주에서 자체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지식이 유통되고 소비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심지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알래스카 지역의 문예지까지 함께 취급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고장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꾸준히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멋있었다.
<서점을 빠져나오며 E Pine St.를 내려오는 길, 강렬한 도심의 그래피티>
조금은 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시애틀과 포틀랜드로부터 받은 또 한 가지 인상은 겉보기보다 진보적(?)인 동네라는 사실이다. 이것도 미국의 다른 지역을 다녀보지 않았으니 조심스러운 의견이기는 하지만, 캐피톨 힐 어디를 가나 길에 내걸린 LGBT 깃발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그렇다. 이런 이슈가 이만큼 공공의 영역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내가 알기로, '오락용'으로 마리화나 사용이 합법인 지역은 미국 전역에서 워싱턴 주와 오레건 주 외에 콜로라도 주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리화나에 대한 현지인들의 일반적 인식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미국에서 살다온 사람의 얘기를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 의료용이 아닌 오락용으로까지 마리화나를 허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개방적인 정책이라 생각한다. 플러스, 뭔가 사람들도 외지인들에게 마인드가 오픈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실제로 너도 나도 다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삶이 해이하느냐 하면 그건 내가 11일간의 짧은 일정 동안 이 사람들의 일상까지 파고 들어가보진 않았으니 알 수 없다. 다만 절제와 무절제를 조정하는 매커니즘이 나름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출출해서 일식 라멘을 먹고 나왔더니 벌써 이만큼 어둑해져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리 늦은 시각은 아니었을 거다>
<슝슝 도로를 달리는 퇴근차량들~*ㅡ*>
서점 구경을 마치고 캐피톨 길의 언덕길을 따라 터벅터벅 내려갔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중간에 시애틀의 명물이라 할 만한 스타벅스에 들를 생각이었다. 건물마다 색색의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어서 길을 걷는 재미가 있었다. 길가로부터 안이 훤히 비치는 피트니스 클럽에서는, 퇴근 후 운동을 하러 온 듯한 남성이 열심히 아령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시설이 좋은 곳이라면 운동할 맛 나겠다 싶었다. 운동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런 클럽을 운영하면서 마진은 남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과 함께;;
동생이 갑자기 출출하다고 해서 근처에 보이는 일식점에 들어가서 라멘 하나에 타코야끼 하나를 주문했다. 어느새부턴가 '여기 음식은 어떤가'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파는 거랑 맛이 비슷한가'가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 있었다;; 가게를 나서니 이미 해가 넘어간지 오래돼 보였다. 얼마나 더 걸어내려 갔을까 드디어 목적지인 스타벅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스타벅스 입장, 목재를 활용한 따듯한 느낌의 인테리어>
<스타벅스에서, 탐나는 커피용품, 컵, 텀블러, 원두 등등>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우리의 관심을 사로 잡은 건 보기 좋게 전시된 머그컵들과 텀블러 등의 물건들이었다. 음료를 주문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산스럽게 진열대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디자인의 컵들과 커피용품들을 구경했다. 잠시 물욕에 마비(?)되어, 이 매장에 있는 컵들을 모조리 쓸어담는 행복한 상상을 했지만, 옆에서 동생이 제지해준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지름신을 물리칠 수 있었다=_= 나름 타협을 해서 텀블러 하나와 머그컵 두 개를 샀으니, 하루동안 컵만 벌써 몇 개를 산 건지...;; 사실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컵을 하나 정도 사오기는 하는데, 이날은 좀 과했다. 결국 쓰는 컵만 계속 쓰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많이 살 필요는 없었던 것을.
마실 것을 주문하고 푹신한 의자에 앉으니, 점차로 주위가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관광객들이 많았고, 카페 내의 거대한 기구들이 때에 맞춰 작동하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 코끝으로 커피의 향을 들이키며 새로운 커피를 개발하는 듯한 직원, 포트의 뜨거운 물로 드립커피를 내리는 직원, 나처럼 컵을 구매한 손님을 위해 물건을 포장하는 직원, 로스팅하는 직원, 주문을 받는 직원들이 보였다. 과연 다국적 기업이라 일컬어질 만한 규모와 서비스였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편안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곧장 숙소로 돌아갈지 아니면 간단히 시내구경이라도 더 할지 저울질했다. 마지막날이니 뭐든 아쉬운 순간이었다.
'여행 > 2015 미국 북서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ilogue. 세 개의 도시 (0) 2016.09.14 DAY10/ 한밤중 쏘다니기(Sleepless in Seattle) (0) 2016.08.29 DAY10/ 프레몬트(Fremont, Seattle) (0) 2016.07.31 DAY9/ 다시 미국으로!(Heading to Seattle) (0) 2016.07.25 DAY9/ 예일타운(Yaletown, Vancouver) (0) 201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