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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세 개의 도시여행/2015 미국 북서부 2016. 9. 14. 18:52
<여행 마지막날 아침녘, 엘리엇 만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포스팅 간격이 뜸해진 미국여행기..마지막으로 매듭은 지어야 할 것 같아 에필로그를 남긴다. 프롤로그에서 잠시 언급하긴 했지만, 10일째의 기록은 여행이 끝난 반 년도 더 되어서,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남긴 것이다. 아무래도 여행 마지막날이었던 10일째 밤에는 짐을 정리하느라 일지를 제대로 남길 수 없었다. 그래도 여행기를 새로 정리하다보니 여행의 잔상이 떠올라 기분이 유쾌해졌다. 당시의 쌀쌀했던 날씨도 떠올랐고...;;
내가 돌아다녔던 세 도시에 관한 인상과 느낀 점은 여러 포스팅에 걸쳐 적어놓았다. 특히 10일째 포스팅에 많이 남겼던 것 같다. 글쎄... 운이 좋게도 나와 동생은 10박 11일간의 일정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살기 좋다고 손꼽히는 도시들만 들러본 것 같다. 샌 프란시스코나 샌 디에이고처럼 사시사철 기후가 화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뉴욕처럼 수많은 박물관과 금융가가 모여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세 도시 모두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었다.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라는 게 반드시 빼곡하게 들어선 각종 시설라든가 하는 거창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온화한 사람들, 톡톡 튀는 아이디어, 도시를 가꾸기 위한 노력..지금 생각해봤을 때 세 도시에 붙여볼 수 있을 것 같은 키워드다.
미국의 다문화주의가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용광로(Meilting Pot) 이론'에서 구성원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샐러드 접시(Salad Bowl) 이론'으로 논의를 옮겨온지도 벌써 십수 년이 넘었다. 세 도시를 구경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동등하게 각각의 고유성을 평가하기에는 아직까지 인종에 따른 경제적 격차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구성원이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지역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도 경직된 표정보다는 편안한 표정이 더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너무 대담하게 돌아다닌 건지도 모르겠지만, 애당초 치안에 대해 걱정했던 것만큼 밤거리에서도 위험한 기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경영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각종 글로벌기업의 본고장인 시애틀은 물론 매력이 넘치는 곳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미국에 도착한 첫날 잠을 설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출국을 앞둔 마지막날 밤에도 잠을 설쳤다. 창가 너머로 눈에 들어오는 <BUILDING>이라는 어느 건물의 표지판에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고 잠을 못 이룬 채 넋놓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도착 첫날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잠을 청하지 못했다면, 마지막날은 한국에 귀국했을 때 전개될 일들을 떠올리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져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구상(構想)은 넘쳐나는데, 선뜻 어느 것에 손을 대야 할지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을 떠올리며, 그리고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며 밑도 끝도 없는 각성상태에 있었다. 그로부터 9개월 여가 흐른 지금 되돌아봤을 때, 나는 과연 그 이후 반보(半步)라도 앞으로 내딛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원대했던 미국 일주의 일부만을 충족시켰던 10박 11일간의 여행이었지만, 정말로 즐거웠다. 동생과 함께한 여행이라 더욱 뜻깊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봉사활동을 가는 길. 그렇지 않아도 이미 약속시간을 넘겼는데,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귀향을 재촉하는 차량들로 인해 거북이걸음으로 도로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예정시각보다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러고는 하릴없이 택시기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데, 어쩌다 나온 얘기에서 아저씨가 추석을 쇠고 아내와 함께 시애틀~밴쿠버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었다. 밴쿠버에서의 트래킹 여행으로 포틀랜드가 빠진 것을 제외한다면, 10박 11일의 일정까지 나와 동생이 했던 여행과 똑같았다. 어쩐지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들떠서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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