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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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하일상/book 2022. 1. 11. 23:21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에서부터 여호야긴이 바빌론으로부터 석방되는 내용까지를 다루고 있다. 솔로몬의 치세 이후 쇠락해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다뤄지고 있다. 또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등장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에서, 예루살렘을 여행하며 들렀던 엘리야의 동굴과 갈멜산, 그리고 보석 같은 지중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열왕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얼마나 지정학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서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앗시리아 또는 바빌론 등의 강대국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합종연횡이 많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나로 통치되던 이스라엘 왕국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두 국가로 나뉘는 등 복잡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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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일상/book 2022. 1. 9. 01:07
이제는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물의 뒤, 詩集과 커피 잔 뒤에도 막막히 누워 있는 그것만 바라봅니다. 정처 없던 것이 자리 잡고 머릿골 속에서 쓸쓸함이 중력을 갖고 쓸쓸함이 눈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볼 수 있습니다 꽃의 웃음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을 밤의 달빛이 무섭게 식은땀 흘리는 것을 굴뚝과 벽, 사람의 그림자 속에도 몰래몰래 내리는 누우런 황폐의 비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발바닥까지 어떻게 내 목구멍까지 적시는지를 눈 꼭 감아 뒤로 눈이 트일 때까지, 죽음을 향해 시야가 파고들 때까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에서 커가는 이 치명적인 꿈을. 그러면서 나의 늑골도 하염없이 깊어지구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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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일상/book 2022. 1. 8. 16:38
하루종일 어두침침하고 기분이 영 가라앉는 날씨다. 요 근래 무슨 생각에서인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집어들었다. 무거운 사회과학 서적이나 인문 서적은 좀처럼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한편 최근에는 자기 전에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끄적이면서 자주 접하지 않았던 시(詩)를 끄적이기도 했다. 늘 그렇듯 내 독서에는 대중이 없지만, 한국소설을, 그것도 근대 소설을 찾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처음에는 통영 사투리와 토속적인 어휘가 등장해서 눈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일단 문장이 익자 술술 계속 읽게 된다. 중학교 때 읽었던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로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며 몰두해 읽기는 오랜만인 것 같다. 『김약국의 딸들』은 내가 읽은 박경리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가 평소 어떤 세계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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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불(la luna e i falò)일상/book 2022. 1. 1. 12:56
일전에 읽은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에 언급된 작가의 이름을 보고 즉흥적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파베세의 글은 동시대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전후 문학과 비슷하다. (정확히는 칼비노는 파베세보다 이후에 활동하는 작가다.) 붉은 여단(공산주의)와 검은 여단(파시스트)의 혈투, 종교(가톨릭교)의 악취 나는 정치적 행위, 언덕과 언덕을 가득 뒤덮은 비참한 가난, 세대와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폭력적인 전통은 파베세와 칼비노가 소설 속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소재다. 다만 칼비노는 어린 아이를 화자로 빌려 좀 더 동화적인 서사를 통해 전후 시대를 서술한다면, 파베세는 주변부적 존재—안귈라라는 화자—을 통해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전자(칼비노의 소설)에서는 어린 아이의 때묻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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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일상/book 2021. 12. 22. 09:58
최승자 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게 아마 영양(英陽)에서 (명칭이 조금 거창하기는 하지만) 북스테이를 할 때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럽게도 한국문학에 관한 내 지식은 고등학교 때 배운 범위를 크게 넘지 않는데, 북스테이 당시 그녀의 짧은 시를 읽고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정확한 문구나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나 파격적이었던 인상이 남아 있다. 그녀 자신은 '가위눌림'과도 같은 세사(世事)에 저항하며 시작(詩作)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강인한 인상으로 남아 있던 시(詩)와 달리 산문집은 담백하고 또 담백하다. 일상적인 서사를 담고 있지만 죽음, 자연, 고독에 대한 직관적 인식이 담겨 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럽다기보다 맞아 그렇지.., 하면서 글을 읽게 된다. 멋지다, 진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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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1337~1453)일상/book 2021. 12. 20. 14:06
1. 민족(民族) 백년 전쟁은 그 이름과 달리, 정확히는 100년 하고도 20년 가까이 더 이어진 전쟁이다. 또한 크레시 전투와 아쟁쿠르 전투가 이뤄질 때까지만 해도 당시의 크고작은 전투들이 후일 백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될 거라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데즈먼드 수어드는 이 시기를 영국과 프랑스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민족 개념이 태동했던 시기라고 서두에 밝힌다. 그래서 ‘민족’의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었는데, 글을 다 읽고나서도 명쾌하진 않다. 백 년 넘게 두 나라가 치고박고 싸우는 과정에서 집단적인 자의식을 키워나갔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쟁에서 전개되었던 여러 국가와 공국들의 합종연횡은 이들에게 정말 ‘민족’ 개념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노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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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하일상/book 2021. 12. 16. 12:17
사무엘상・하 편에는 항상 비유로만 듣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등장한다. 성경 특성상 묘사는 많지 않고 서사가 빨리 전개되는 편인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정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뭔가 대단히 극적이고 처절한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이 매우 흔히 쓰이는 것에 비해, 이 에피소드가 아주 짤막하다는 것에 조금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이래서 원전을 자꾸 찾아봐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정확히 말하면 도 원전은 아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말해서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과 긴 맥락 안에서 내가 직접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아무래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윗이 다윗성에서 머무르며 오랜 세월 예루살렘을 다스렸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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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세대일상/book 2021. 12. 15. 13:25
제목을 봤을 때는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2021년에 쓰인 소설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후 독일에서 쓰인 소설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라는 작가도 전혀 몰랐던 작가였는데, 제목(Generation ohne Abschied)이 주는 독특한 인상 때문에 일단은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26세라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가 묻어난다. 단연 보르헤르트의 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는 전쟁에 관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그 자신이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었고, 자해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년도의 내가 그의 글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때문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