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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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소돔과 고모라 II일상/book 2021. 7. 22. 17:19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만연체가 많다. 이 부분은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데, 우선 프랑스어의 운율을 모른 채 번역본을 읽을 때는 만연체가 함축한 리듬을 파악하기 어렵다. 각주에 프랑스어로 어떤 언어유희가 활용되고 있는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아무래도 유머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다 만연체로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밀도있게 이뤄지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한 권을 다 읽어도 며칠에 걸친 스토리이거나 기껏해야 한 계절에 걸친 스토리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달리 말하면 프루스트는 '시간'을 귀중한 물건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듯 아주 치밀하게 써내려간다. 한참 몰입해서 읽고 있는데 문득 아직 한 장면이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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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일상/book 2021. 7. 20. 03:04
『인생사용법』도 읽어봐야겠다!! 요컨대 이 작품과 관련해 거의 병적이라 할 만한 매혹을 일으키는 요인은, 화가의 기술적 능력보다 공간적이면서도 시간적인 투시법의 실현에 있었다. 그러나 레스터 노박은 결론에서 결코 이러한 전망의 의미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품은 예술의 죽음을 나타내는 이미지이며, 자신의 고유한 표본을 무한히 반복하도록 운명지어진 이 세계에 대한 거울과 같은 반영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박은 관람객을 극도로 격앙시킨 모사화와 모사화 사이의 미세한 차이들이야말로, 예술가의 우울한 운명에 대한 최후의 표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작품에 나타난 이야기에 의해서만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가 이러한 차이를 통해 한순간이나마 예술의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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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일상/book 2021. 7. 19. 15:14
어느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생태철학과 관련해서 아르네 네스의 이름이 인용된 글귀를 보고 그의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주 막연하게 알고 있던 생태주의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아르네 네스의 글은 이 책이 거의 유일한 듯하다. 아르네 네스가 저술한 책은 아니고, 데이비드 로텐버그라는 철학자와의 대담을 통해 그의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전반부에는 아르네 네스 자신의 생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여기에는 '거리두기'처럼 어떤 사안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그의 성격이 언급되기도 하고, 젊은 시절 그가 관심을 가졌던 정신분석학이나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아르네 네스 본인은 젊은 시절 비엔나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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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역학일상/book 2021. 7. 17. 16:08
'14년도 한 대학에서 토마 피케티의 초청강연이 있었을 때 그의 강연을 직접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의 책 『21세기 자본』이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아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호기심만으로 강연 참석을 신청했다. 그리고 운좋게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프랑스어 발음이 섞인 토마 피케티의 영어를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자막으로 동시통역이 진행되었지만 영화도 아닌 강연에서 강연자와 자막을 함께 봐야 하는 상황은 산만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의 연구주제에 관한 흥미는 흐지부지되고 구매했던 책은 7년 가까이 책장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7년이 지나서 『21세기 자본』을 집어든 건 근래 '불평등' 또는 '양극화'라는 주제로 여러 텍스트를 읽으면서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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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갈무리]일상/book 2021. 7. 15. 00:36
국민소득을 계산하려면, 먼저 GDP에서 이 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본의 소모분을 빼야 한다. 다시 말해 해당 연도에 소모되는 건물, 사회기반시설, 기계, 운송수단, 컴퓨터 및 기타 품목을 빼야 한다. 이 소모분은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GDP의 약 1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소득과는 관련이 없다. 노동자와 주주에게 각각 임금이나 배당금이 지불되기 전에 그리고 순수하게 새로운 투자가 이뤄지기 전에 소모된 자본은 대체되거나 보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 될 경우 부는 사라지고, 부의 소유자들은 마이너스 소득을 올리게 된다. GDP에서 자본 소모를 뺀 것이 ‘국내순생산Net Domestic Product’이다. 나는 이것을 좀더 간단히 ‘국내산출’ 또는 ‘국내생산’이라고 부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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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일상/book 2021. 6. 28. 02:33
때때로 때에 알맞는 작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읽기 전 접했던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전부인데, 그 책을 읽었던 스무살 무렵에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마냥 난해하기만 했다. 대단한 의미도 없는 내용들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거창한 허울 안에 욱여넣은 작품으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정도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봐도 처음 접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 다시 마주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는 스무살 무렵에 느꼈던 위화감이나 어색함이 없다. 야로밀이라는 청년의 이야기를 쫓아가면서 나의 지난날들을 반추하는 게 어렵지가 않다. 달리 말해서 이제 와 보니 밀란 쿤데라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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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현대사: 후견과 저항의 줄다리기일상/book 2021. 6. 24. 15:35
고대와 중세에 유럽사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는 근현대사에 접어들면 그 존재감이 미약해진다.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최근에 가까워져 올 수록 이탈리아라는 예전의 영광을 유지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사실 근대국가로서 오늘날 이탈리아는 19세기에 뒤늦게 형성된 것이다. 이탈리아는 남북이 통일된 이후에도 두 지역은 사회경제적으로 제각기 서로 다른 발전궤적을 그렸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양차 대전 시기에 국왕은 파시즘이 득세하는 것을 막는 데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따라서 전후 이탈리아의 역사는 반파시즘과 함께 태동하지만 동시에 민족해방위원회의 소멸이라는 굴절도 함께 경험한다. 레지스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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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현대사 [갈무리]일상/book 2021. 6. 23. 23:29
공동체 의식은 그토록 강했지만 수그러들 수도 있었다. 젊은 세대에게 부모들(특히 아버지들)의 사회주의 규범이란 해방 못지않게 종종 억압으로 경험되었다. 파시즘 시기는 앞서 묘사한 사회적인 유형들과 구조들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들을 훨씬 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파시즘은 곤봉으로 그리고 [대대적인 광고나 홍보물 같은] 은밀한 설득자로 노동계급 동네에 들어왔다. 사회주의 네트워크와 조직들이 파괴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가족 속으로 침잠했다. 구술 증언들은 한결같이 노동계급 구역에 내려앉은 침묵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저항운동은 일부 상징적인 제스처에 국한되었다. 노동절에 붉은 타이나 멜빵을 메는 것, 일터의 화장실에 슬로건을 낙서하는 것 정도로 말이다. —p. 33 독일이 버티고 있음에도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