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일상/book 2021. 3. 26. 23:50
짜증나고 열받고 가슴 답답한 날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가 필요하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별 고민 없지 집어들기도 했지만, 에 실렸던 길고 짧은 글들을 읽다 보면 유쾌하기도 하고 예리한 에코의 통찰력에 놀라기도 한다. 챕터에서는 처세술을 풍자하고, 에서는 미디어의 과잉—또는 테크놀러지의 과잉—이 가져온 새로운 아노미 현상들에 대해 얘기한다. 90년대까지 새로이 등장했던 미디어로 컴퓨터와 팩스를 움베르토 에코는 이야기하지만, 여기에 스마트폰을 끼워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우리가 혁신적이라고 일컫는 기술들이 사실은 인간을 또 다른 우매함으로 이끈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에 적극(x1000) 공감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챕터는 부분이었다. 에서는 아이러니에 가득한 세계를 가..
-
겨울 산책일상/book 2021. 3. 22. 20:16
무덤에서 평온하게 쉬기 전까지 낙엽은 얼마나 많이 팔랑거리는가! 그토록 높이 솟아 있다가 얼마나 만족스러워하며 다시 흙으로 돌아와 나무 밑동에 누워 썩어가며 새로운 세대가 자신처럼 높은 곳에서 팔랑거릴 수 있도록 영양을 제공하는가! 낙엽은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불멸에 대한 믿음을 자랑하는 우리 인간에게 낙엽처럼 우아하고 원숙하게 눕게 될 날이 과연 올까? 화창하고 고요한 가을날, 평온하게 손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자르듯 육신을 버릴 수 있을까?—p. 42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우리 시선이 닿는 곳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눈이 그쪽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젤리처럼 눈 자체는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넓고 멀리 보는..
-
몸젠의 로마사 V: 혁명: 농지개혁부터 드루수스의 개혁 시도까지일상/book 2021. 3. 15. 02:59
멀리서는 이렇게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사태는 전혀 달랐다. 귀족정 정부는 스스로의 업적을 망가뜨린 모든 일을 행하고 있었다. 칸나이 패자와 자마 승자의 아들과 손자가 아버지와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원로원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다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확고한 부와 물려받은 정치적 지위를 가진 소수의 폐쇄적 가문들이 정부를 이끄는 곳에서, 이들은 위기의 시대에는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끈질긴 일관성과 영웅적 희생정신을 발휘했고, 평화의 시기에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이고 느슨하게 국가를 운영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세습과 동료제에 있었다. 병원 물질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이것을 키우는 데는 우연이라는 태양이 필요했다..
-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일상/book 2021. 3. 4. 05:50
......이 세상은 사랑과 이별이 멸종된 이후의 세계 같았다. 사랑 없는 세대의 연애와 이별 없는 세대의 무감만이 횡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애에 대해 무감한 청춘들에게서 다른 면모에서의 삶의 방식을 정비하는 듯한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커다래진 시대.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 시대. 쉽게 변질되는 사랑과 쉽게 인성을 망가뜨리는 이별을 겪는 일을 이 시대의 청춘들은 굳이 하려 하지 않는다. 연민도 시혜도 자기 자신에게 우선권을 주고, 물질적・정서적 풍요도 자기 자신에게 가장 우선권을 준다. 배려도 스스로에게 하고, 돌봄과 아낌도 희생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행한다. 식당에서 물만 셀프로 따라 먹는 게 아니라, 주유소에서 주유만 셀프로..
-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일상/book 2021. 3. 3. 11:07
One of the great drawbacks to self-centered passions is that they afford so little variety in life. The man who loves only himself cannot, it is true, be accused of promiscuity in his affection, but he is bound in the end to suffer intolerable boredom from the invariable sameness of the object of his devotion. The man who suffers from a sense of sin is suffering from a particular kind of self-lo..
-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일상/book 2021. 2. 12. 18:11
이 무렵 그녀가 산보하는 시간은 어둠이 깔린 다음이었다. 이런 시간에 숲으로 들어가면 그녀는 조금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빛과 어둠이 너무나 고르게 평형을 이루어, 낮의 압박과 밤의 긴장이 서로 중화되고 그래서 절대적 정신의 자유가 허용되는 정확한 저녁 순간을 그녀는 간발의 차이로 알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불운이 최소한의 차원으로 축소되는 순간이 바로 이런 시각이었다. 그녀에게 어둠은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오직 한 가지 생각은 인간을—집단으로 뭉치면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하나의 단위 속에서는 그렇게 보잘것없고 불쌍하기까지 한, 세상이라 불리는 냉랭한 집합체를—어떻게 피하는가 하는 것 같았다. 이 고독한 언덕과 골짜기에서 그녀의 조용한 발걸음은 그녀가 움직여 가는 자연과 하나..
-
몸젠의 로마사 IV: 희랍 도시국가들의 복속일상/book 2021. 2. 4. 00:02
로마인들은 항상 자신들이 정복 정책을 추구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자신들이 공격받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상투적인 언명이 아니었다. 시킬리아와의 전쟁은 예외로, 모든 위대한 전쟁들, 즉 한니발이나 안티오코스와의 전쟁, 또 중요성에서 덜 하지 않은 필립포스와 페르세우스와의 전쟁 속으로 로마는 사실상—직접적 공격 또는 기존 정치 상황에 대한 전대미문의 교란에 의해—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리하여 통장 기습적인 전쟁 발발에 경악했다. 로마가 승전 후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의 자기 이익을 위한 절제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 예컨대 히스파니아의 보유, 아프리카에 대한 후견 책임의 인수, 특히 전체 희랍인에게 자유를 부여한다는 이상적인 계획 모두가 이탈리아 정책에 반하는 심각한 오류였다는 사실은 명백하기 그지없..
-
길을 걸으며(Chemin faisant)일상/book 2021. 1. 27. 21:59
나는 음울한 날에 울타리 하나 없이 벌거벗은 경작지의 지평선을 바라본다. 이따금 걷다 보면 불쑥 권태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육체적인 피로가 아니라, 혼란, 권태, 거의 절망에 가까운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다. 갈아엎은 밭 앞에서 잡아 뽑힌 식물들의 무질서, 울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땅의 부스러기들을 쪼아 먹는 슬픈 새들을 보면서 돌연한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고독, 끝없는 도로, 너무도 짧고 지극히 피상적인 만남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느껴보지 못했던 온갖 절망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나는 쓸모없고 비생산적인 여행에 화가 나서 배낭을 옆으로 내던진다. 걷기, 방랑자처럼 살기, 매일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는 본능적인 불신을 극복하느라 시간의 일부를 허비하기, 관심 혹은 가능하다면 연민 일으키기..